영화를 보러 내려갔었다.
1회 상영에 현대자동차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내심 놀랬다.
그 중에는 확인(!)하러 온 사람들이 절반은 될거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진심으로 느끼러 왔을거란 생각이었다.
그 사람들은 주로 영화시작 직전까지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며
삼삼오오 몰려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아주머니들이었다.
짐작컨데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들은 식당노동자들일거였고
젊은 애기엄마들은 가대위 사람들일 것이었다.
아기를 둘씩이나 데리고 온 분도 있었는데 영화를 제대로 보시기나 했는지
걱정이 됐다.
영화가 시작되고 빽빽히 메운 자리들 너머로 필름이 돌아가고
98년 당시 터질듯한 긴장과 분노가 화면을 채웠다.
공장안에 텐트가 들어서고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들어온 가족들,
그 와중에 밥하는 식당노동자들,
공권력의 위협,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의심하며 술로지샌 밤을 보내고
공장으로 들어온 사수대 및 정리해고 대상자들...
죽기살기로 싸우겠다는 의지를 모아 공장을 지키던 그들이
어느 한순간 부터 화면에서 사라지고
중재단과 악수하는 위원장의 웃는 얼굴이 화면을 메웠다.
영문을 모르는 또는 불길한 예감을 믿고싶지 않은 노동자들의 한숨과 고뇌는
때로는 시커멓게 타들어간 얼굴로
때로는 벌겋게 술취한 얼굴로 연신 지나갔다
싸움은 277의 희생양을 남기고 정리되고
99년 여름 새로운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다시 공장에 텐트가 세워지고
중재단이 등장하고
울부짖는 아주머니들이 있고....
투비 컨티뉴드...
이렇게 영화는 끝났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어떤 노동자가 '노노갈등이네...'했다.
그렇다 노조 집행부도 노동자고 평조합원도 노동자고
식당노동자들도 노동자니까
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니
노노갈등이 맞을거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나?
그리고 왜 '노노갈등'으로 정리되는 거지?
'노노갈등'이란 말은 이 영화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노노갈등'은 현상을 표현한 것이지만 우리가 쓸 단어는 아니다.
그건 '노노갈등'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안의 금기가 작동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당연히 사람이 둘 이상만 되면 갈등이 생긴다.
문제가 없을수가 없다.
수천의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모두 같은 생각이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런대도 '노노갈등이네...' 하는 말에서 나는
자본가들이나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노노갈등'이란 뉘앙스를 읽었다.
그것은 '갈등' 자체를 부정함으로서 진실을 은폐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국민간 혹은 정부와 국민, 자본가와 노동자 등의 갈등 자체를
반대한다. 자기네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이란
골치아픈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칼자루를 쥔 사람이 약자에게 행하는 해결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래 우리는 지금 갈등상황이다.
노동자들간에도 갈등이고
여자 남자간에도 갈등이고
평조합원과 간부간에도 갈등이고
며느리 시어머니도 갈등이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갈등이고
죽느냐 사느냐도 갈등이고
다 갈등이다.
원래 사는게 다 갈등 아니었나.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떻게 이 수많은 갈등과 차이의 지점을 서로 인정하면서도
함께 할것이냐 일것이다.
인간이 본래 혼자살 수 없는 존재이고
또한 인간에게 억압이 있다면
그 억압에 대항하고, 존재의 의미에 충실하기 위해
우리는 만나야 하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해소해야 하고
해소과정에서 또다른 억압이 발생하지 않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인간의 삶이고
지금까지의 인간의 역사란걸
일찌기 배운 우리가 아닌가 말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기껏해서 '봐라 노동자들간에 분열된다'는걸
보여주기 위한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본 영화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길 하고 있었다.
수십년동안 때로는 목숨까지 걸어가며 만들고 지켜온 운동의 역사가
지금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왜 이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었고,
다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우선은 성찰을 해야했고, 뜨겁게 눈물을 흘린 후에는
답답함을 느끼면서 머리를 쥐어뜯어야 했다
모든것이 해체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시 시작한다면
어떻게 어디서부터... 같은
해답을 만들어야 할 많은 질문들을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당연히 늘 해왔어야할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해야할 일은
'생각하는 것' 이 아닐까?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서
내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라넷에게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리고
최대한의 감사인사일 것이다.
왜곡된 오바된 책임감으로
남으면 안되지예..
훌훌털어내야 되는게 진짜로 뭔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정말 절실해집니더..
경기도민님의 글 담담하게 잘 읽었어예..
갈등없이 그냥 왔던..
그러한 갈등을 무마시키고 조작하고 포장해왔던..
내자신...우리들 스스로...정말 생각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