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와 <밥꽃양>을 보면서 되풀이되는 것, 그것도 아이러니하게 되풀이되는 장면에 숨이 턱 막혔었다.
1998년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반대 싸움을 할 때, 정부중재단이라는 사람들이 울산에 내려왔다. 김광식 위원장을 에워싸고 연신 악수를 했다. 방송사 카메라를 대동하고 내려온 그들은 협상장에 둘러앉은 노동조합 간부들을 영락없는 배우로 만들어 버렸다.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돌릴 것과 정몽준과 악수할 것, 그리고 노무현 이기호와 악수하라고 부탁(?)했다. 위원장이 정몽준과 악수하는 장면, 정몽준과 김광식위원장이 손을 잡고 그 옆에서 노무현이 박수를 치는 장면은 그렇게 연출되어 텔레비전에 나왔고, 1998년에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울산의 싸움을 전해 들었다.
노사화합을 위해서 내려왔다는 높으신 분들, 중재단은 정리해고 반대 싸움이 아무런 폭력없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결론은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것으로 났지만 노/사의 동의하에 라는 애매하지만 사실인 문구로 정리해고는 받아들여졌다. 정부의 중재 속에는 30일 넘게 텐트를 치고 정리해고 반대를 외쳤던 조합원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없었고 오직 평화적인 해결(?)이라는 결론만 남았다. 그건 순전히 정부와 회사의 목소리였지 싸우는 사람들의 절박한 소리는 아니었다. 중재자를 가장한 심판관은 과정을 싸그리 없애버린 것이다.
그리고 2000년 1월, 추적한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 앞 단식 농성을 했다. 1998년의 상흔 끝자락에 놓여 있던 식당 아줌마들의 모습이었다. 정리해고된 아줌마들은 여전히 조합원이었지만 노동조합은 아줌마들의 복직을 위한 싸움을 외면했다. 노조 앞 단식 농성은 노노갈등이라는 말로 불리기도 했고, 여성 노동자들의 치열한 싸움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싸움이 잦아든 시절에 누군가를 각성(?)시키는 싸움이라고도 했다. 분명한 건 아줌마들은 현재진행형인 정리해고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1998년의 정부중재단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 아줌마들의 텐트 농성장을 찾는다. 현장조직 의장단들로 꾸려진 '중재단'이었다. 아줌마들과 노조의 갈등(?)을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노조와 텐트를 왔다갔다하면서 중재를 한다고 했고 아줌마들은 텐트를 접었다. 아줌마들이 조합원으로서 정당한 복직투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아니었고, 노동조합이 정리해고 싸움을 여전히 진행할 수 있도록 강제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단식만 끝내게 하는 것으로 중재단의 역할은 훌륭하게 수행되었다. 사건을 중재했던 이들은 1998년 정리해고 싸움과 수용의 당사자들이었다. 당연한 아줌마들의 싸움 앞에서 그들은 중재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2001년 인권운동사랑방이 움직인다. 식당 아줌마들의 싸움과 실패, 상처를 담은 영화가 발언되지 못하게 막은 사건 앞에서 인권의 이름으로 약자들의 소리에 귀기울여 왔던 인권운동사랑방은 중재단의 모습으로 움직인다.
1998년 정리해고 반대를 외치는 조합원들의 소리에 귀막고 본관과 노동조합 사무실을 왔다갔다 했던 정부의 중재단, 2000년 복직 투쟁을 방해하는 노조에 항의하는 아줌마들의 소리에 귀막고 노동조합 사무실과 텐트를 왔다갔다 했던 중재단, 2001년 사전 검열과 누군가의 외압으로 영화 하나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조사를 하러 전화를 돌리고 왔다갔다 하는 인권운동사랑방.
중재를 하겠다는/하는 그들은 다들 당사자였지만 당사자가 아닌 척한다.
그리고 분명한 진실 앞에서 굳이 그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은 다른 진실을 알고 있는 양 심판관의 어깨를 하고 움직인다. 인권운동사랑방은 그런 중재자의 위치에 이미 서버린 것일까?
반복은 무뎌지게도 만들지만, 진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