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NET 게시판 아카이브
maybbs 백업 데이터로 복원한 읽기 전용 정적 게시판 (2018-09-23 백업 기준)
작품을 보고...
🏠 홈으로|전체 게시판 > 작품을 보고... > 게시글
OPEN YOUR EYES
게시물 번호: 3647
글쓴날 : 2001-12-05 22:03:38
글쓴이 : 펌 조회 : 92
제목: [송화정] OPEN YOUR EYES


OPEN YOUR EYES
OPEN YOUR EYES.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복지관으로 왔다.
아이들의 세수만 간신히 봐주고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나 보다.
눈물 몇 방울 흘렸을 뿐인데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 나가버린 것처럼
축 늘어졌다.
겨우 두 시간 남짓의 영화를 보는 동안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렸다.

새벽 3시..잠에서 깼다.
가만히 앉아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순간 몸이 떨려왔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노동자로...여성으로...
어머니로 살아갈텐데 그때도 변하지 않은...<밥·꽃·양>의 현실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런 꽃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되면 어쩌나...아니겠지...
달라지겠지 하면서도 한숨만 내쉬었다.

이런 꽃 같은 세상에서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게 애쓰고 앞으로도
그렇게 힘듦을 감내하며 살아갈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회상#1-운동권의 파시즘

97년 겨울...한 사람이 있었다. (전에 다른 대학을 다닐 때의 일이지요.)
총학생회장이 같이 운동을 하던 여학우를 성추행한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학생운동 진영내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성차별, 성폭력에 대한
공식적인 문제제기에 운동이 대의만을 앵무새처럼 뱉어내던, 운동권 내부에서
그러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계급이 해방되면 여성해방의 날도 오는 것처럼
통일만 되면 사회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지게 될 것처럼 떠들어 대던 학생
운동권의 기수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소위 진보와 변화를 논하던 그네들의 기만적 행태가 <밥·꽃·양>속의
노조지도부와 닮아있다. 아줌마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감정조차 섞이지 않은
건조한 눈빛으로 그들의 입장만을, 당위을 늘어놓는 그들의 권위적인 모습이
97년 겨울의 그들과 꼭 닮아있어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노동운동 그런거 아닙니다"

학생운동 그런거 아닌데...회의가 밀려와 정치놀음의 축소판에서 발빼고
나와버렸다. 아니 도망쳤다. 그런데 아줌마들은 도망치지 않고 싸웠다.
할 줄 아는 것은 밥 짓는 일 뿐, 배운 것도 없고 유식한 문자 쓸 줄도 모르는
아줌마들은 목숨걸고 싸우고 있었다.
끊임없이 말하고 화내고..
아니 그것은 거의 울부짖음에 까까운 항변이었다.

무더운 여름..햇볕에 검게 그을린 사람들 가운데 우리들이 늘 먹는 밥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밥하는 아줌마들...투쟁의 현장에서 모두를 위해
시장을 돌며 야채를 주워다 매 끼니를 해결해 주며 제 몸 힘든줄도 모르고
투쟁의 최선에 있었던 꽃같은 아줌마들... 믿고 함께 했던 노조에 이용당해
희생양이 되어버린 아줌마들...을 보며 분노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드는 것은
나 역시 때로는 방관으로 때로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주머니들의 무거운
어깨에 더 큰 짐을 지우는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모두를 위한 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그럴듯한 미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다수를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할 때 그것은 희생의 미덕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일 뿐
이다. 정말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왜 그 소수의 희생양이 아줌마들이어야
하냐는 것이다. 왜 식당 아줌마들이 정리해고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지
누구도 합당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답은 하나다. 여자니까. 힘없는 아줌마니까.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여성노동자는 무시되어도 좋은 약자인 것이다.

여성노동자는 돌아갈 가정이 있으니까...남자들처럼 가장이 아니니까
(정말 얼척없는 말이다.)
우선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도 어쩔수 없다는 남성중심적 사고가
얼마나 잔인하게 아줌마들의 생존권을 박탈했는지 영화는 말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진보적 운동진영 내부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적 약자들이라 여겨지는 노동조합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단지 노조지도자들을 보고 "야∼이 꽃 같은 놈들아"한다고 속이
풀리지 않을 거란 걸 안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다.


회상#2-알고 속는 것과 모르고 속는 것?

나...눈 뜬 장님이었나? 98년 여름..
(영화를 보기전까진 이 연도조차 내 머리속에 의미없이 박혀있었지만,,)
난 이모집에 있었다...울산에 있었다.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이모부를 따라 그들이 만든 자동차에 편하게 몸을
기대고 그 치열한 싸움의 현장을 지나간 적도 있다.
그때 내가 본 것은 아니 내가 느낀 것은 어쭙잖은 혁명의 열기같은 것이었다.
셀 수 없이 모여 있는 노동자들..가족들..그들의 단결된 투쟁을 보며
묘한 흥분을 느꼈을 뿐이었 다.

<밥·꽃·양>은 몰랐다.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난 진실 바깥에 있었다.
진실을 보지 못할 때 그 진실을 가리려고 하는 세력(?)에 속게 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 뒤에는 또 다른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
옳다고 생각했던 것 뒤에 억압과 부조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고도 어쩔 수 없이 속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알아야 속지 않기 위해.
그 부조리에 대항하기 위해 작은 변화의 움직임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밥·꽃·양>을 보고 며칠동안 어지럽던 머리가 이제야 맑아지는 것 같다.

나...잊고 있었나보다.

댓글 / 답글 (0)
등록된 댓글(답글)이 없습니다.
🏠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