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번호: 3644
글쓴날 : 2001-12-05 21:43:15
글쓴이 : 펌 조회 : 88
제목: [오하근]머리와 감정의 분할...미완의 밥꽃양
머리와 감정의 분할...미완의 밥꽃양
밥·꽃·양
이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야한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 두서없이 이어
지는 생각의 모양들이 쉽게 결론지어지지 않는다. 뭔가 이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그럴싸한 결론을 내리려 해도 의문으로 가득한 물음표 투
성이 이다. 이 필름은 노동운동을 다룬 필름일까, 여성 인권을 다룬 필름일
까? 다들 입을 모아 말한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투쟁의 꽃에
서 결국 희생양으로 버려지고 마는 밥 짖는 아줌마들을 다룬 필름'이라고.
너무도 안타깝고 화가 난다고. 이 영화가 정말 흔히들 말하는 영화(픽션을
다루는)라면 나 역시 아주 쉽게 그렇게 말했으리라. 하지만 그런 식으로 결
론 짖기엔 이 필름은 너무도 사실적이다. 너무도 사실적이기에 오히려 난
쉽게 보이는 결론을 경계하며
이렇게 몇 일 밤을 밥,꽃,양의 감상문에 매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늦
었다는 걸 알지만 오늘 밤 안으로 어떤 식으로든 결론 짖고 싶다. 가식으
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르는 내 머릿속을 깨고 그 필름을 받아 들일지, 아니
면...아니면...
12월 1일 밤
의문
사람 하나 하나가 절대적으로 평등한 세상. 과연 이 '평등'이라는 말이 '절
대'를 가리킬 때 우리네 이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는 걸까... 영화를 보
고 발길을 돌려 빠져나온 '사건'의 밖은 이미 어둡다. 어두워진 교정을 찬
찬히 내려오며 머리 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단어...'삶', '자유', '평
등', '권리'등의 너무도 원론적인 것들...왜? 과연 왜? ...
다시 또 의문
영화가 끝나고 감독님은 고백한다. 픽션이 아닌 논픽션을 다룬 다큐멘터리
라 하더라도 그걸 다룬 사람의 생각에 따라 편집은 이루어지고 그 편집에
따라 보여지는 내용이 크게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같은 사건이
라 하더라도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빛이 될 수 있고 어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내가 경험한 바로도 그렇다. 몇 해 전인가 학생운동의 열기
가 그 마지막 힘을 쥐어짜고 있을 때, 그 열기에 휩쓸려있던 나는 TV미디어
를 통해 흘러나오는 각종 영상과 정보가 운동권에서 자체 제작한 기록 영상
과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경험했다.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을 두고 다른
영상을 보여주던 그 때의 기억. 하지만 결론은 양측 다 거짓이 있었다는 것
이다.
사람들은 왜...
솔직히 나는 지금 아주 당황스럽다.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반응에선
이미 다른 생각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필름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여성이라는 이
유로!!!'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나 또한
사실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나 역시도 분노라는 감정에 억눌렸고 식당 아
줌마들의 눈물앞에 가슴 뭉클해했다. 단식으로 쓰러져 가는 아줌마들,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한'이라고까지 표현될 수 있을법한 '악'에 받힌 절규.
그런 모습들을 쉽게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왜...
상대적으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를 이용
하고 무시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이 사회의(이 세상의) 풍조라고 하더라
도 소위 '좋은 세상을 만들자. 함께 잘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자'라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바쳐버렸다.
과연 왜... 좀 더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회사측에선 당초 목표로
했던 정리해고 인원을 정식적인 정리해고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 이런 저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미 그만큼의 감원인원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그러
면 회사측에서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노동 조합측에 지지 않았다는(정리
해고 반대 투쟁에) 명목상의 숫자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노동
조합 측에선 그 수를 가능한한 적게 하려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
고 이런 협상을 했겠지...'정리해고는 다만 형식상이다. 그렇다고 공장에
서 일하는 실무자들을 정리해고 한다고 하면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
니까, 저기 공장 식당을 노조측에서 관리하는 식으로 하면서 식당 아줌마들
을 정리 해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 식당을 노조가 관리하면 그 아줌마
들을 그대로 다시 고용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래, 결국
그런 식으로 협상이 진행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문제는 뭘까?
협상을 진행함에 있어서 아줌마들을 설득할 때 노조측에서 보다 명확한 설
명이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늘 하던 일을 계속하다가 경기가 회복되면 다
시 원직 복귀되리라 생각했던 아줌마들과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태에서 노
조가 관리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이라는(다시 말해서 이미 직장을 옮긴 것
이라는) 노조측의 입장 차이. 그 부분에서 이 필름의 후반부는 갈등을 거듭
하고 있는 것이다.
원점
정리해고 결사 반대 투쟁이 퇴색되었다. 아줌마들이 정리 해고 되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줌마들은 예전처럼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이 모순
된 상황을 어디에서 답을 찾을까...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아줌마들의 외침은 과연 무엇인가? 아줌마들의 투쟁의 대상은 과연 누구인
가?
어쩌면
어쩌면 나는 여성 인권 운동이라는 것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지
도 모르겠다.
12월 3일
분명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한다. 노조 집행부 사람과 노조 조합원. 그 둘간에
는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입장만 피력할 뿐. 언성이 높아지
고 감정이 격해진다. 결국 투쟁이다! 남녀는 중요치 않다!.
아줌마
그녀들은 계속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원수는 줄어든 상태에서 일은 그
대로다. 아니 오히려 관리자가 된 그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해오고
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
닌가 보다. 왜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그녀들은 더 이상 현대 자동차의 노동자가 아니라 현대 자동차 노조의 노동
자들이다.
결국...
필름상에서 당시 노조 위원장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현재 자신의 판단
이,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라고' 그는 결국 정리해
고를 통한 대규모의 혼란을 식당 아줌마들을 이용해서 진정시킨다. 하지만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완전 철회를 주장했었고 그의 결정은
이에 상반되는 배신 행위였을 수도 있다.
그녀들의 투쟁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어느날 문득 원직 복직하고 싶어서 였
을까? 어쩌면 그녀들은 사실 보다 나은 환경 개선과 처우 개선을 바랬을 지
도 모르겠다. 그렇게 격렬히 단식 투쟁을 벌이던 그녀들이 중재단의 간곡
한 부탁으로 단식을 철회하고 텐트를 걷는 결론을 지켜보면 묘한 쓴웃음이
나온다. 결국 to be continued라는 아주 큰 그릇 속에 이 문제를 담으므로
써 이 필름은 마지막에 한 걸음을 뺀 건지도 모르겠다.
파편들
사수대 아저씨의 이야기
흥분한 집행부 사람
회의장에서의 집행부의 말도 안되는 시간 제한 요구
절규하는 아줌마
단식
어쩌면 난 그냥 쉽게 얘기해 버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 나쁜 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