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번호: 3586
글쓴날 : 2001-12-04 00:26:13
글쓴이 : 전상욱 조회 : 57
제목: 펌-<밥.꽃.양>을 보고
전상욱 Access : 27 , Lines : 28
<밥.꽃.양>을 보고
<밥·꽃·양>을 다 보고 나니 홀로 이 아드님을 기다리고 계실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집에 가고 싶다. 근데 집에 간다면 이 찜찜한 기분이 다 달아날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몇 자 적는다.
한때 울엄마도 식당에서 일을 하신 적이 있다. 뭐 현대자동차 같은 대형 사업장의 회사 식당이 아니라 집 근처 은행의 식당, 아마 식수인원은 한 30∼40명 정도 되었을 거다. 그 때가 아마 내가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쯤 되었을거다. 엄마는 그 이전에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하셨었는데, 왠지 난 엄마가 식당에서 일을 하시는게 그렇게도 싫지는 않았다. 아마 어려서 그랬나보다. 왜냐하면 식당에서는 떡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사하기는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 때 나는 냉면과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었다. 그 때 나는 일명 '돌솥비빔밥'의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정체를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때까지 난 돌솥, 즉 돌로 만든 무진장한 솥에 밥을 비벼 먹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기타 등등... 새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쁨에 나는 엄마의 일에 그렇게 강력한 반대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으이구 인간아.....'
이제껏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봤다. 과외, 써빙, 시장선거 모니터링 요원, 주유소 총잡이, 설문조사 등등... 돈을 번다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내 아르바이트의 주목적은 '다양한 경험'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이렇나 이유에서 근무조건이 열악한 'part time job'에 뛰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 앞에서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다양한 경험'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당신은 바로 이것이 '생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영지는 없다. 노래가사처럼 '불을 찾아 헤메는 불나비'처럼 어머니는 생존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만다.
<밥·꽃·양>의 엄마들도 다양한 경험이 아니라 '생존의 수단'으로 식당일을 한다. 우리에겐 선택의 기회가 많다. 시간당 임금이 낮고, 근무시간이 맞이 않으면 꼭 그 업소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밥·꽃·양>의 엄마들은 다르다.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곧 '아사(餓死)를 뜻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온갖 착취를 당해 자본가의 배를 터지게 할 지언정 <밥·꽃·양>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식당일에 헌신한다. 돈 몇 푼 덜 받아도 좋으니 안정적인 직장을 원한다. 열 손가락/발가락 모두 습진이 생기고, 여름엔 땀띠, 겨울엔 동산과의 싸움을 계속하면서도 그처럼 든든한 우리의 노동조합비는 꼭 낸다.
IMF다. 드디어 정리해고 시기가 도래했다고 기업가는 환호를 지른다. 제기랄, 한보에 처넣은 돈, 서울·제일은행에 쑤셔박은 돈, 현대전자에 갖다 부은 돈, 등등... 밑 빠진 독에 꾹꾹 눌러담은 공적자금의 이자의 이자의 이자만 써도 <밥·꽃·양>언니들이 정리해고는 안 당했을꺼다.
조합을 믿었다. 철썩같이 믿었다. (사실 아버지도 연성보다는 강성조합에 은근히 지지를 보내신다. 거기다 조합도 정치랑 같다고 말씀하신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우리의 든든한 노동조합, 위원장님. 하지만 이미 조합은 '과두제의 철칙'이 지배하고 있다. '희생타'가 필요한 우리의 위원장님. <밥·꽃·양>을 선택한다. 머리핀으로 무장한 사수대이기에 희생양으로 삼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위원장님은 <밥·꽃·양>엄마들에게 적당히 둘러댄다. 원래 나쁜 버릇은 먼저 배우는 법, 혹시 위원장님은 이렇게 생각하셨던 것이 아닐까. '우하하, 당한만큼 갚아주마.....'
집행부의 저 뛰어난 연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완벽한 사내 언론 play, 접대용멘트로 무장한 중재단.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사용하는 모습들. 마치 회사측의 개인과외를 받은 것 같다. 예습·복습으로 철저히 체내화된 저들의 '배째라'정신이여... 정말 오 마이 갓이다. "우리는 죽어서 나갈 것"이라는 <밥·꽃·양>엄마들의 말은 처절하다 못해 섬뜩하다. 단식투쟁! 기상캐스터처럼 내일의 메뉴를 안내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나려한다. 만약 군대에서처럼 남자들이 밥을 했다면 저렇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여자라서. 밥순이라서 무시당하는 엄마들. 조합에 하소연을 해대니 집행부 한 사람이 혹시 '배후조종세력'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까지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들은 지쳐가고 결국 그렇게도 겹겹이 쌓아 올렸던 투쟁의 성과-천막-은 순식간에 갈갈이 찢겨버렸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운동에서도 지배계층과 소외계층이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솔직히 짜증난다. '중재'라는 말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중재만 되면, '극적 타결'만 이루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도를 해대니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중재는 문제의 본질을 은폐시킨다."...
감독님의 답변을 듣다가 나왔다. 손도 간지럽고, 가슴도 꽉 막혀버렸다. 감독님의 답변을 다 들으면 진정될까봐 그냥 나와버렸다. 학교는 조용했다. 계속 걸었다. 숲길을 따라 박물관 별관에서부터 사회대까지 열나게 뛰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어디로 가지' 하며 생각을 하는데 아뿔싸! 도서관으로 가고 있다. 아는만큼 실천해야되는데, 젠장 또 다시 이곳으로 와 버렸다. 믿고 싶진 않지만, 나는 소인배가 틀림없을 것이다.
<밥·꽃·양> to be continued...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엔 정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현장을 찍고 계시는 우리의 감독님들도 역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 영화를 볼 때 쯤이면 나는 적어도 소인배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면 더 좋겠다. 아니 극장에서 상영되는 날이 오면 이런 영화가 필요없을 지도 모르겠다.
<밥·꽃·양> 감독님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밥·꽃·양>엄마들에게 큰 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