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번호: 3552
글쓴날 : 2001-12-02 21:00:43
글쓴이 : 천성협펌 조회 : 107
제목: 낮엔 밥하고 밤엔 꽃이 되고 모두에겐 양인 우리네 어머님...
<밥. 꽃. 양>을 접하고 나서
기뻐서, 너무도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 견딜 수 없어서 흐르는 눈물이 있다고 들었다. 여태껏 내가 접해온 눈물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혹은 주위에 제 것을 호소하기 위하여 흘리는 눈물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어떻다고, 그러니까 어서 봐달라고...... 바로 오늘 처절한 눈물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누구에게 기대고픈 마음도 얻기 위한 표현도 그 무엇도 아닌 공허 그 차체인 것만 같았다. 그 눈물은 여윈 가슴 한 켠 기대일 곳 없는 공장 아지매들만의 것이었다.
새벽 1시의 달음박질. 그 기세에 나는 폭동이라도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서 야참을 먹고 조금 더 자겠다는 단순한 동기에 기인한 것일 뿐이었다. 그들이 물소떼 마냥 치받고 간 자리는 아무 대꾸 없는 아지매들의 몫이었다. 언제나 그들은 뒷자리가 딱 이었다.
"정리해고" 이 단어만으로 그네들은 모두 한 뜻이 되어 일어났다. 높으신 양반들에게 한번 대들어 보자고 힘을 모으자고 했다. 웬일인지 무식쟁이 아지매들도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인제 그네들도 식순이가 아닌 같은 노동자로 "우리"에 포함된단다. 아지매들은 기뻤다. 모두가 자신들의 밥줄까지 이어주려는 것 같아 열심히 밥을 지었다. 아들 같은 사수대 청년들을 먹이고 나면 남편 같은 아저씨들 식사 올리고 혈기왕성한 대학생들 거쳐가고 나면 또 따라나선 자식들 밥 한술 더 떠 먹여야지. 아지매들은? "괜찮아요" 얼굴에 가득한 주름들이 곱게 자리잡는다. 이렇게 하루 하루가 희망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앞에서 고생하시는 노조분들 힘내세요. 저희는 당신들만 믿습니다. 그럼요. 정리해고가 말이나 되는 소리랍디까? 우리는 백번 만번 따라가구 말구요. 일자 무식쟁이 우릴랑은 밥이나 열심히 할 테니 여러분들은 그런 걱정일랑 마이소. 한뎃잠으로 밤을 지내고 새벽부터 쌀을 씻어내어 어둠이 가득할 때 그릇을 헹궈내면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녀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이런 아지매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끄트머리에선 그네들의 자리가 비어있지 않았다. 목이 쉬어 터져라 구호를 따라 외치고 어설픈 몸짓일지언정 열심히 따랐건만 그건 그저 눈먼 장님의 어눌한 손짓일 뿐 이젠 노조마저 그녀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래..... 다시 한번 싸워보자고 그녀들이 홀로 일어섰다. 이젠 길잡이 노릇을 해주던 노조집행부가 이젠 그네들의 걸림돌이 되어 앞을 막아선다. 사탕발림 같은 말만 늘어놓으며 이제 그만두라고 한다. 철석같이 믿었던 노조의 외면 앞에서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악, 악으로 버텨보자고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단식 농성을 하면서도 그녀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얀 쌀밥에 된장국, 아님 미역국......" 이런 저런 음식 얘기를 나누면서 아지매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아마 당장 내일이라도 자신들을 다시 봐줄지도 모른다는, 힘든 단식 그만두고 맛난 음식 먹자는 희망이었으리라. 단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실려나가는 아지매들이 속출했다. 그 아지매의 빈자리를 메꿔준 것은 노조 집행부의 냉랭한 거부 통보. 한 아지매가 오열한다. "그래 다 굶겨 직이라. 다 죽여봐라 이놈들아!"
아직도 이 아주머니들의 생계를 보장해줄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단지 진행형일 뿐 언제 완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직도 그녀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소외에 뒤따른 또 다른 소외. 약육강식의 잔혹한 논리 속에서 우리네 가엾은 어머니들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전경들이 막아서도 자식 같은 철부지들 차마 아프게 못하고 옷핀만 가슴팍에 꽂고 나서시던 어머니. 노조비 한푼 아껴보자고 시장통 쓰레기 배추를 주섬이시던 어머니. 다함께 땀흘리시고도 말씀 한 마디 제대로 내뱉지 못하시던 우리네 어머니에게 이제 눈물 한 방울 마음놓고 흘리실 곳이 과연 어디에 허락되어있는가?
영화가 끝나고 찹찹한 기분만이 맴돌 뿐이었다. 한 인격체이기 전에 어머니이길, 아내이길, 누이이길, 딸이기를 강요당하며 한평생을 보내셔야할 우리네 어머니들의 처절한 투쟁에 그저 눈시울이 붉혀질 따름이었다. 과연 현대가 무엇이기에 아니, 대한민국이 무엇이기에 우리네 어머니의 가슴속을 그리도 모질게 휘저어야만 하는가? 교과서에만 어머님에 대한 감사를 얹어 놓을 것이 아니라 모두의 가슴속에 특히 오욕으로 더렵혀진 이들의 가슴속에 단단히 얹어 놓아야만 할 것 같았다.
너무도 생생하고 감정적 동조를 이끄는 작품이라 감상문 역시 몹시도 감정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습니다. 너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거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힘을 가지고 있는가? 쥐뿔도 없습니다. 소위 대학생이라는 놈이, 제가 배워왔던 그 어떤 것도 그분들께 힘이 되어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몹시도 슬픕니다. 도대체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인터넷을 통한 언론이 힘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과연 얼마만한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 혼란스럽습니다. 과연 저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