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번호: 3551
글쓴날 : 2001-12-02 20:59:00
글쓴이 : 임준섭펌 조회 : 110
제목: [제3의시선 영화제 감상문]밥꽃양
밥 꽃 양
근로기준법 제31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
제1항 사용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사업의 양도 인수 합병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제2항 제1항의 경우에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하여야 한다. 이 경우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된다.
제3,4,5항 생략
밥하는 아줌마들이었다.
정리해고에 맞서서 남자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는 모습이 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희생양에 불과했다.
어릴 때에 노동조합은 국가나 기업에 대항하여 폭력만 쓰는 아저씨들의 단체로 비춰졌다. 폭력은 나쁜 거라 배웠고, 그런 폭력을 쓰는 조합원들을 TV에서 보고서는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전태일이 쓴 시를 일기장에 옮겨놓고 시간 날 때마다 읽어보곤 했다. 그 후로는 노동 운동하는 사람들만 보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이 다 전태일 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나이가 전태일보다 많아졌다.
오늘 <밥,꽃,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정말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할까... 허탈한 분노... 저것이 우리네 노동운동의 실체란 말인가... 결국엔 노동조합도 다를 바 없단 말인가...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그 희생을 기반으로 자기네 이익을 채우는 그런 이익단체에 불과했단 말인가... 물론 성급한 일반화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 다큐멘터리 속에서 울부짖는 아줌마, 아니 우리네 어머니들을 보면서 그 작은 예외 하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저것은 내가 생각해왔던 전태일의 노동운동이 아니었으니까...
<밥,꽃,양>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깊이 생각했던 것은 다수와 소수에 대한 관계였다. 언제 공권력이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죽도록 해보자"라는 각오로 쟁의행위를 한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일까? 노조 조합장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위해서? 아닐 것이다. 개인, 즉 자기 자신을 위한 투쟁이고 싸움이었다. 거기서 시작할 때 자식을 위한 투쟁, 남편을 위한 투쟁, 조합원을 위한 투쟁, 국가를 위한 투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수의 행복이라는 집단 이데올로기에 빠질 때 결국 힘없는 소수와 약자는 희생당하기 마련이다. 힘없는 소수가 되지 않기 위해 그 집단 속에서도 싸우고 배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형성된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조합에서도 식당아주머니들은 다른 집단과 확연히 구분되는 소수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여자의 신분(?)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미 있어왔던 구조적 문제점인 것이다. 진보적이라는 노동조합에서조차 그 낡은 틀을 벗지 못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와 비슷한 사건들을 주위에서 볼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합리와 차별들은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방관자였다. 과연 다큐멘터리 하나 보고서 우리가 참가자가 될 수 있을까? 나 자신마저도 위선을 감추기 위한 분노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꺼릴 수 있을지언정 행동할 수 없다. 지금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