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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밥꽃양으로
글쓴날 : 2001-11-21 14:34:52
글쓴이 : 박세진 조회 : 127
제목: 가자 <밥.꽃.양>으로


신당야학이라는 곳은 잘 모르겠는데
한독협 다큐멘터리 분과마당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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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박세진- 신당야학이란곳에서 퍼왔습니다


<밥.꽃.양>이라는, 영화가 아닌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길 들려줍니다. 우리는 노동조합 내에서의 남녀차별이나 소위 노조 지도자라는 치들의 기만적 행태에 대해서, 즉 노동운동 자체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이라는 말은 아직 저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우리는 노와 사 사이에 평화란 없다는 어느 노조원의 말에 대해서, 결국 평화라는 말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지배를 가리는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저에게는 여전히 관념적 고민일 뿐입니다. 저는 이 고민에 대한 실존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현대자동차의 식당 아줌마들의 분노와 억울함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리한 단식으로 탈이 난 몸을 엠뷸란스로 옮기던 어느 아줌마의 소리없는 눈물. 끝까지 함께 있겠다고,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은 저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줬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습니까. 말의 정확한 의미에서, 우리의 '어머니'인 그들을 울부짖게 하는 자 그 누구입니까. 하지만, 이는 너무 선명한, 그래서 공허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너는 도대체 무어냐고. 분노와 억울함에 억장이 무너지고 있을 저들을 두고 너는 무얼하며 살았냐고 말입니다.

모든 인간의 가치는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청계천 8가의 청소부 김씨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식당 아줌마는, 종로3가의 금은방 주인이나 현대자동차의 정회장과 결코 동일한 가치를 가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식당 아줌마들의 가치는 현대자동차의 다른 노동자 아저씨들과도 같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현실을 깨뜨리기 위해서 싸워야합니다. '완전히 동일한 가치를 지닌 구체적인 인간'이라는 모토는 우리의 궁극적인 슬로건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마침표가 찍히는 그 순간 슬로건의 글자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밥꽃양을 다 본 그 순간, 윈도우미디어를 닫는 그 순간 영화를 보는 내내 아줌마들과 함께 나눴던 눈물이 휘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하는 것입니까. 언제나 관념 속에서만 진보주의자인, 단지 진보를, 맑스주의를 욕망할 뿐인 저는 어찌해야하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입니다. 잊고 지내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자명함을 각성한 후에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들을 두고서, 저들의 억울함을 모른채로 살아왔다는 죄책감, 저학력 여성 육체 노동자라는 굴레를 영영 떨치지 못할 저들에 대한 (저학력자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혹은 노동자로서, 그 무엇도 아니라면 인류로서 그들에게 결박되어 있는)우리의 부채의식은 세상의 어두운 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르고자하는 우리 욕망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균열의 틈을 보다 넓히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는 완전히 부숴버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세상의 진실에 눈을 돌릴 때, 세계의 비참함 속으로 무장해제된 우리를 던져넣을 때 우리는 차츰 <밥.꽃.양>의 아줌마들 곁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몸 속 깊숙히 새겨진 소부르주아적 습속,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소부르주아적 안온함에 대한 완강한 경향성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보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모든 반동적인 유혹에 오로지 침묵으로서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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