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날 : 2001-11-20 12:30:10
글쓴이 : 우리모두펌 조회 : 131
제목: 김영주ㅣ여성이여, 말하라! 그네들의 삶을
★☆ 어떤 이야기...☆★
열 아홉의, 겨울 같은 늦가을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오프부산국제영화제를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그래서 많이 생각하게 했던 지난 한 주를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오프부산국제영화제...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 엄밀히 말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들도 주류는 아니다. 영광스러운, 영화제란 이름표로 인해, 잠시잠깐 주류 흉내를 내어보는 것이라 할까... 그런데 잠시잠깐 반짝할 수 있는 그 이름표조차도 달 수 없는 영화들이 있었다. 그런 비주류 영화들을 위한 또 하나의 영화제... 바로 오프부산국제영화제였다. 그곳에서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양]을 볼 수 있었다.
'밥·꽃·양'... 이것은 현대자동차 식당아줌마들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기이다. 그 속에서 난 다시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를 되새겨야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이라는 비주류, 그들이 주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식당여성노동자 144명'이라는, 주류 흉내조차도 용납되지 않는 비주류... 그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어쩌면 그리도 오프부산국제영화제의 모습을 닮아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오프 영화제가 그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 내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모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보고서 속에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언제나 약자였고, 소외 받는 자였다.
현대 자동차라는 거대 세력과 맞서 싸우던 우리 아주머니들은, 결국 노동조합 지도부에 의해 희생양이 되고 만다. 노조 지도부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정리해고의 제물로 삼아 버린 것이다. 그들은 결국 이번엔, 노조 지도부를 상대로 단식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에 천막 하나 쳐 놓고, 주린 배를 움켜잡으며, 이런저런 먹을 것을 그리는 그 아주머니들의 모습에서 난 한없는 서글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랬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굶는 것뿐이었다. 굶으면서, 그렇게 몸을 학대하는 일 외에는, 자신들의 의사를 전할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어디 하소연 할 곳도, 해결해 달라 화를 낼 곳도 없이... 그들은 그렇게 몸을 상하게 하는 굶는 행위로라도 자신들의 언어를 전하려 했던 것이다.
영상을 보는 내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자만이 약자를 억압한다는 내 편견이 무참히 깨진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도 자신보다 약한 다른 약자를 충분히 억압할 수 있으며,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 끔찍한 그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내가 본 그것이 픽션의 영상이었다면, 난 틀림없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부라보! 배우들 정말 대단해! 완벽한 연기력이야!" 그러나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오기까지의 그 길에서 난 부지런히 최면을 걸었었다. '대단한 영화다. 잘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다. 영화다... 실화다.'
이제껏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누구도 내게 삶이 아닌 생존을 걱정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은 당연히 삶을 고민해야 하는 존재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난 기업체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내놓길 원하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보고야 말았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생존이 약자라는 이유로 강탈당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 는 윤리 교과서의 그 말을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만 했다. 모두가 그 말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 말이 나에게 해당된다는 사실만 알 뿐, 타인에게도 그 말이 해당된다는 의식이 부족해 보인다. 으리으리한 기업체의 사장님, 그리고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가 되어야 할 노조 지도부님, 식당 아주머니들의 삶을 돌려주세요.
'밥하는 꽃, 식당 아주머니들 결국 희생양이 되다'... 이것은 여성의 문제이자 노동의 문제이고, 크게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또한 소통의 문제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사람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한 식당 노동자, 아주머니의 절규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노동운동, 그런 거 아닙니다."
★☆ 또 하나의 이야기...☆★
영화제라는 주류에 편입해서도 그리 주류인, 즉 그리 주목받는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소수에 대한 호기심이라 해도 좋고, 큰 물결에 대한 반감이라 해도 좋다. 또는 그 무엇도 아니라 해도 좋다. 어찌했던 난,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달갑게 다녀왔다.
아프리카는 언제나 소외되고, 못 사는 곳으로만 그려진다. 직접 가 본 일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간간이 헐벗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만을 전해보고, 그러려니 할뿐이다. 어떠한 나라가 있는지 모른다. 그저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뭉뚱그려 아프리카다. 파리 떼가 얼굴을 덮어도 쫓을 기력조차도 없는, 바싹 마른 사람들의 동정을 구하는 모습, 그것이 아프리카다. 이제껏 매체가 가르쳐준 아프리카의 모습이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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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초점, 시각이 다른 각 이야기는 모두 아프리카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에 대해 도전장을 던진다. <마마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아름다움, 유머, 분노, 좌절, 친밀함, 그리고 그들의 영혼까지도 보여주는 최초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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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여인들]이란 영화의 소개 중 한 부분이다. 소개에서처럼 그 영화는 짧은 세 개의 단편영화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 영화는 남아공에서 차별 받던 흑인 여성이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아프리카로 이주해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뜻한 사람들 속에서 더 이상은 차별 받으며 살지 않아도 될 것이란 희망을 안고 건너온 아프리카.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무척이나 폐쇄적이어서(영화 속 주인공의 말 중)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방식만을 고집하며, 타지의 방식이나 타지인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편입시키기를 용납치 않는다. 타지인 뿐만이 아니다. 늙고 나약한, 거기다 정신이 어려진 할머니를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배척한다. 그것은 사람이 다를 수 없다며 인종차별에 열을 내는 그들이, 또 다른 모양으로 자신들도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는 감독의 비판인 것이다. 아파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녀는 할머니를 보살피고, 그 일로 인해 조금씩 그 마을에 소속되게 된다. 결국 그녀를 받아들이게 한 건 따뜻한 마음, 즉 인간애란 것이다.
두 번째 영화는 부유층의 한 흑인 여성이 결혼이란 의식으로 갈등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자신에게 펼쳐질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계속 불안해하고 도피하려는 여성이, 결혼식 도우미 노파로 인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였다.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모습이, 우리네 청소년의 이유 없는 반항, 그리고 삶에 대한 방황 정도로만 여겨져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노파의 주술적 행동에서 보이는 따뜻한 이미지는, 비과학적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삶의 고통에, 상당히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세 편 중 가장 익숙한 화면 구성을 보이던 이 영화는 그만큼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지는 않았다. 내용 전개에 있어서도 굳이 아프리카라 이름을 따로 붙일 필요가 없을 만큼 상당부분 서양식이었다.(주술적인 면은 동양식이라 해도 무방하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걸 감독이 알고 있었던 것일까... 별다른 생각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볼만한 영화.
세 번째 영화는 딸을 공부시키려는 아내가,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남편에게 맞서는 내용이었다. 서두는 그러했다. 아내는 자식의 학비를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수 찧는 일을 시작한다. 남편은 그것을 방해하려 하지만, 결국엔 부부가 사랑을 확인하고 잘 산다는 간단하고, 한편으론 황당한 스토리로, 중간 중간에 희극적 요소가 숨어 있어 재밌게 볼 수 있었다.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겠지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본다면,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극복한 부부의 소통이라고나 할까... 아프리카에서의 삶의 모습이 우리네의 삶과 별 다를 게 없다는 걸 결정적으로 보여 준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가면서 한 아주머니가 "이건 우리 엄마 얘기야."하고 말했다는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실제로 그랬다.
세 편 모두 깊이 생각할 것이 없는, 이미 드러나 있는,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로 인해 그들과 우리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삶의 구체적 모습이야 다를지언정 그들의 사고와 고민은 우리네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영화를 본 후의 가장 큰 성과(?)라면 내 속에 은근히 자리잡고 있던 편견을 한 대 쥐어박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내가 생각하는 뭉뚱그려진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나를 또한 노란 피부의 뭉뚱그려진 아시아인으로 볼뿐이란 사실.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진부해질 만큼 평범한 진리를 슬쩍 떠올려 보는 것이다.
★☆ 대하여...☆★
조선일보 반대 대자보를 몸에 두르고 일인 시위를 하던 영화인 명계남, 스크린 쿼터 사수를 외치던 영화인 문성근, 영화 [허쉬]의 감독과 주연배우들, 그리고 예술가처럼 익숙한 거리를 낯설게 보는 사람들... 과연 부산국제영화제는 볼거리와 즐길거리, 거기다 생각할거리까지 즐비한 행사였다. 그 한가운데 있어봤다는 사실은 과히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