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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이 보여주는 것, 그리고
자유게시판 -
게시물 번호: 2280
글쓴날 : 2001-11-06 20:57:11
글쓴이 : 정성훈 조회 : 127
제목: 밥,꽃,양이 보여주는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 노동자 운동의 타락을 지적하고 운동권 내부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해왔습니다. 사회당에서 일하는 저도 민주노총 주류와 민주노동당에 대한 많은 비판을 해왔고요.

하지만 '밥,꽃,양'은 그 무수한 글과 말보다 뛰어난 영화, 가장 절박한 비판이자 특별한 선동 없이도 대안의 삶과 행동에 관한 고민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영화였습니다.

첫째, '밥,꽃,양'은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이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타락하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직권조인하거나 보수정당으로 들어간 노동 지도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민주노조 운동의 전통 속에선 제거되었습니다.
98년에 민주노총이 직권조인을 하는 순간, 지도부가 노동자 대중의 생존권을 정리해고제 수용으로 정권에 헌납한 순간, 민주노총의 최대 사업장에서 이 법의 힘이 그대로 관철된 순간 타락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타락의 주역들이 여전히 한국과 울산의 민주노조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을 좌지우지하는 지금, 그 타락은 진지한 반성은 커녕 끊임없이 자기 변명을 재생산하며 더 깊은 수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타락의 출발점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 새로운 혁명적 노동자 운동은 정리해고와 비타협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임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둘째, '밥,꽃,양'은 민주노조 운동을 포함한 한국의 사회운동 전반이 계속 무시하거나 은폐해왔던 문제,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운동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간 운동사회 내부의 성차별, 성폭력 등의 문제는 무수히 제기되어왔지만 운동의 대의에 비하면 사소할 수도 있는 문제, 문화적인 문제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자 여성 조합원의 우선 정리해고는 그런 남성중심적 사고가 얼마나 참혹한 생존권 박탈과 처절한 투쟁을 낳을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 노조 지도부가 나쁜 놈이네, 라는 정도의 생각만 하셨다면 시간낭비, 돈낭비입니다. 극적인 상황에서 드러난 엄청난 성차별 조치는 일상에서의 지속적인 성차별적 행동으로부터 기원합니다.
이 영화는 반성하면서 보는 영화입니다.

영화 '밥,꽃,양'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관한 제 생각은 또 시간이 나면 써보겠습니다.

'밥,꽃,양'이 보여주지 못한 것에 관한 이야기 하나만 보태지요.
어떤 동지가 이 영화에는 당시 정리해고 투쟁 이전에 짤려버린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에 관해선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더군요.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하청 노동자의 삶과 비애를 카메라에 담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들이 아직 스스로 싸움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하청 노동자로 살면서 얼마나 싸움을 만들어내기 힘든 조건인가를 절실히 느낀 바 있습니다. 하청 노동자가 싸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 하청 노동자의 분노를 담은 영상보고서가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임인애 감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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