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NET 게시판 아카이브
maybbs 백업 데이터로 복원한 읽기 전용 정적 게시판 (2018-09-23 백업 기준)
작품을 보고...
🏠 홈으로|전체 게시판 > 작품을 보고... > 게시글
인권영화제에서 사전 검열당한 영화 <밥꽃양>
연세대학교 대학원신문에 쓴 글입니다.
각종 검열에 맞서고 있는 라넷의 싸움에 지지를 보냅니다.


인권영화제에서 사전 검열당한 영화 <밥꽃양>


밥. 꽃. 양.

1998년 울산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36일 동안 공장 점거 파업을 벌였다. 사생 결단, 결사 항전이라는 말이 공장 곳곳에 넘쳐났지만 공권력과의 충돌 한 번 없이 파업은 끝이 났고 정리 해고는 수용되었다. 식당 여성 노동자 144명을 포함해서 277명이 잘려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 싸움은 2000년 1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단식 투쟁이라는 질긴 흔적을 남겼다. 그 싸움의 한가운데 혹은 언저리에 카메라가 있었다.

감독의 시선은 '파업'의 비밀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공포는 서서히 조작된 것은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은 싸움에 나서게 되는가? 지도부와 평조합원의 시선은 어떻게 일치하고 어떻게 갈라지는가? 파업에 각본이 있었던 건 아닐까? 투쟁의 꽃이었던 여성 노동자들이 희생양으로 거래된 것은 아닐까? 그 싸움을 끝으로 공장을 떠나버린 이들에게는 무엇이 남겨 졌을까? 그리고 무언가를 봉쇄하려는 우리 안의 검열은 없었을까?



금기가 된 싸움

얼굴도 마주보지 못하는 두 사람의 대화다. "정리 해고 받아들이자는 건데, 가서 부숴버리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을 한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잇는다. "이러고 있을 건가? 죽겠네." 그러나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만 찍으소, 다 끝난건데" 이번에는 카메라를 향해 말을 내뱉는다. 잠시 후 자막이 올라온다. '두 명의 사수대는 공장을 떠났다.'

<밥꽃양>은 실패한 싸움을 기록했다. 공장에 남겠다는 절박한 싸움을 공장을 부수면서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36일간의 '아름다운 투쟁'을 평가한 글에서는 공장을 떠난 사람들의 상처는 삭제되었다. 대신 1998년의 정세 속에서 자본과 노동의 대격돌이 갖는 의미와 정리 해고 저지 투쟁이 남긴 성과가 기록되었다. 구체적으로 진행된 싸움 속에서 구체적으로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그건 금기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과의 대립 속에서 그려져야 하며, 그 모습은 전투적이어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공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결의에 찬' 것이어야 한다는 공식 아닌 공식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다. "어떻게 할 건데"와 같은 실패를 예감한 목소리가 기록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36일간의 공장 점거 파업을 실패한 싸움이라고 이야기하는 <밥꽃양>은 그래서 봉쇄되었는지 모르겠다. 울산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기로 한 이 영화에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해 왔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검열이었다. 힘찬 전진을 위해서, 진보를 위해서 실패한 싸움은 삭제되어야 했을까?



봉쇄된 목소리

단 한 명의 정리 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던 노조 위원장이 정리 해고 수용 발표를 하는 날이었다. 순식간에 집회장이 점거되었다. 식당에서 일을 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정리 해고 대상 1순위로 거론되던 상황이었다. 누구는 그 진의가 의심되는 결사항전 유인물을 찢었고, 누구는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던졌고, 누구는 욕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식당 아줌마 한 명이 집회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게 누군가가 아줌마의 마이크를 빼앗는다. 말을 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는 아줌마와 말을 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빼앗으려는 사람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있었고 마이크는 남성 노동자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정리 해고 철폐를 위해서 끝까지 투쟁하자는 공허한 말을 남기고 단상을 내려갔고 아줌마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또한번의 방해가 있었다. "아줌마 크게 얘기 하세요" 목소리 큰 남성 노동자의 발언이었다. 두 번의 방해를 막고서야 아줌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위원장이란 사람이 아침 7시에 내려와서 아줌마들이 정리 해고 받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 나가야 된다고...."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중에도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밥짓는 노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강력한 요구를 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녀들에게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는다. 누군가에 대한 배제, 그 대상이 약자일 경우에 그 배제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수행된다. 아줌마의 마이크를 빼앗은 남성 노동자는 그다지 어색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아줌마의 이야기는 종종 봉쇄되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배제라고 예민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가 삭제되는 과정에 대한 고찰이라고도 한다.

이 장면은 <밥꽃양>의 문제적인 장면이다. 누군가 이 장면을 거론하며 영화에 문제 제기를 해왔다고 한다. 마이크를 빼앗은 남성 노동자는 얼마 전까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위원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오래 지속되는 상흔

노동조합은 아줌마들의 정리 해고에 합의했다. 1998년에서 1년이 훨씬 지난 2000년 1월, 정리 해고된 아줌마들은 노동조합 앞에 텐트를 치고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원직 복직 싸움을 노동조합의 방해없이 하고 싶다는 것이 아줌마들의 요구였다. 한겨울의 텐트를 찾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어느날 텐트를 방문했다. 노동조합과 아줌마들의 싸움을 중재하겠다고 나선 현장조직 대표들이었다. 아줌마들의 해고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은 그녀들의 단식을 끝내게 했고, 아줌마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아줌마들은 노동조합이 성차별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왜 그런 일을 했는가는 아직 모른다. 아줌마들을 정리 해고시키는 것에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들 모두가 동의했는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도 1998년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축한 장마비 맞으며 진행된 1998년 여름에 대한 이야기는 <밥꽃양>으로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수한 봉쇄와 배제를 담은 이야기는 또한번 저지당했다. 마이크를 빼앗았던 누군가인지, 실패한 목소리를 삭제하고 싶었던 누군가인지, 자신들의 협잡을 감추고 싶었던 누군가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여튼 <밥꽃양>은 검열당했고 영화를 제작한 라넷은 실패한 상흔을 위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운좋게도 영화를 몇번이나 봤지만 그녀들의, 그들의 상흔을 아직 모른다. 10월 23일 울산에서 <밥꽃양> 시사회가 있던 날,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0년 가까이 공장 담벼락 너머를 응시했 왔던 시선으로 우리 삶의 다양한 결을 드러내 보여주는 영화를 아무런 수고 없이 보겠다는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실패한 상흔은 계속되고 있었다.

파업 공간에서 주방 용품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식당 여성 노동자들. 시위 사진 속에서 포크를 들고 있던 아줌마에게 경찰이 질문한다. "아줌마가 사람들 끌고 다닌거냐?" "나는 맨 뒤에 서 있는데 어떻게 끌고 다니냐?" "그럼 몰고 간거다."
농담 수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객석은 조용했다.
"나는 착해서 그러지는 않는데, 사람들이 공장 부수고 나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요."
여전히 웃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갔고 눈가가 붉어진 사람들은 조용하게 자리를 떴다.
댓글 / 답글 (0)
등록된 댓글(답글)이 없습니다.
🏠 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