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연구자으로서, 일전에 라넷의 작품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한 관객으로서,그리고 이른바 '밥꽃양 사태'를 둘러싼 논쟁을 줄곧 관심있게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사이버공간에서 여론이 밥꽃양측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주최측이 사퇴하든지 행사계획이 변경되든지 아니면 최소한 책임자 분들이 성의있는 답변과 해명이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는데,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네요. 주최측에서는 여전히 궁색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덮어버리려는 걸 보니, 이미 알맹이는 다 빠지고 쭉정이만 남은, 아수라장이 된 만신창이 행사를 그대로 강행하려고 하는 건가요? 정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요? 애초에 영화제로 장사를 하려는 것이었다면 모르되, '인권'이니 '평화'니 하는 거창한 말을 꺼낸 분들이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지도록 나몰라라 하고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실로 상식 이하의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지요?
게시판의 글들만 가지고 사태의 진실을 다 알았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여러가지 정황은 누가 보더라도 현자노조로부터의 외압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더우기 게시판 여기저기에 떠돌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체불명의 폭언들은 '현대공화국' 울산에 대한 외지인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더욱더 조장하는군요.
상식적으로 인권이란 말은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강자에 대하여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지요. 노동자운동, 여성운동, 흑인운동 등등은 모두 다 사회적 강자(자본가/남성/백인 등등) 대한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한 운동이지요. 노동자운동이 '진보적'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이 자본에 대해 사회적 약자이기에 그런 것이지요. 그러기에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약자인 여성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것 또한 동등하게 중요한 '진보적' 운동이며,다른 모든 (인권)운동도 마찬가지로 동동한 의미를 갖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약 그것이 자본가가 되었건 노동자가 되었건,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며 '진보의 대변인'이라는 허황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히는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이미 기성화된 '특권층'이 되며 다른 약자들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범하게 되겠지요. '역사'란 게, '진보'란 게 정해진 방향이나 신성한 주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서 강자의 횡포에 대하여 저항하고 약자의 목소리들을 모아 지배적인 제도와 질서와 관행을 고쳐나아가는 것, 그것이 정의라면 정의고 진보라면 진보가 아닌가요?
울산에서 현자 노조의 힘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울산이라는 특수한 도시에서, 그러한 노조의 힘도 특권이라면 굉장한 특권이랄 수 있겠죠. 울산에 인권단체가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특권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울산에서 인권영화제를 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품들에 대해서 더욱더 애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초청해서 울산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고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기폭제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운동이라는 것이 그 운동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역관계와 지배질서에 대하여 아무런 변화의 목소리도 문제제기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운동이겠지요. 인권운동이라는 것이 진정 그 지역에 시급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내팽개쳐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말뿐인 '인권'을 떠벌리는 약장사로 전락하는 꼴이겠지요. 가시밭 좁은 길이라 하여 진보 운동이 투쟁의 길을 회피하고 기득권 세력의 뜻에 따라 움직이며, 기성 질서가 용인하는 손쉬운 길만을 좇는다면 무슨 변화와 진보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온갖 인습과 구태에 저항하며 외로운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또 한번 상처받고 가슴아파하며 허무주의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우리들 모두, 제발 인권이니 평화니 하는 거창한 개념은 쓰지 않아도 좋으니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감만은 저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김백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