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인권영화제
[밥.꽃.양] 사전 검열 사태에 대한 [진보평론]의 입장
■ 인권장사치들의 몸부림
인권대통령으로 노벨상을 탄 사람이 민중을 탄압하는데 앞장서니까, 이제 인권대통령을 흉내내려는 사람들까지 대중의 표현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인가? 아래를 볼 줄 모르고 위만을 보려는 사람들. 대중의 역능을 무시하고 권력을 따라 해바라기 되는 사람들.
'인권영화제'(인권운동사랑방이 달리 표현하도록 요구했음에도 이미 장사가 될만한 '인권영화제'를 군대식 반복구호처럼 사용한다)를 한다는 사람들이 식당아줌마들의 외침을 숨기려고 하고 있으니! 인권이 장사가 되니까 인권을 단 행사들을 치르는 사람들. 식당아줌마들의 인권을 빌미로 대중을 진정시키려는 사람들.
식당아줌마들은 왜 옷까지 벗었는가? 남성노조원들까지 창피하게 생각하는 노조의 식당 아줌마 제1순위 해고작전. '우리가 희생할 테니 끝까지 싸우면서 힘을 키우라'고 했더니 '어절씨구 좋은 협상재료로다' 하면서 그들을 일착으로 희생시킨 사람들.
노조운동에서 숨기려해도 숨길 수 없는 치부는 비노조원이나 임시직(비정규직)에 대한 배제이다. 자본가하고는 얘기해도 임시직하고는 얘기하지 않으려는 노조의 자세야말로 서구의 노동운동사를 볼 때 스스로 망가지는 첩경이었다.
노동운동 내부의 주변성에 착목하고 노조운동의 지형도를 넓혀 가야할 마당에 제도화된 노조운동으로 좁혀가는 노조 상층부들의 행태. 더군다나 이런 사람들은 선거에 물들고 선거로 당선되면 무엇이든 해결될 것처럼 대표제에 의지한다. 모든 것이 선거를 준거로 하여 이루어진다. 모든 일이 무난하게 잡음 없이 평탄하게 진행되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얘기나 다른 노래가 들리거나 다른 그림이 그려지거나 다른 영화가 상영되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 왜 굳이 울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노동자 국회의원이 가능할 수도 있는 지역이니까... 몇만 명(가족을 포함하여)을 거느리는 노조위원장이 있는 곳이니까...
자본은 노동자들의 차이들을 이용하여 갈라치기 하면서도 차이가 만들어낸 성과들을 포획해 가고 있는 마당에, 진보인사들이나 노동운동가들이 자신의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배제하려는 처참한 모습이라니. 자신들의 내부의 차이를 진정으로 승인하고 그 차이들이 만들어 내는 색다른 공간을 확장시켜가도 자본의 제국화 경향에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는 판국에, 진보운동인사들은 청탁과 압력에 굴복하는 낡은 운동을 해 나가고 있다. 그것도 남이 해놓은 이름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자신의 색다름을 증식시켜 자신의 고유한 부를 만들어 가지 못한 채.
인권을 말하면 진보적인가? 인권이라는 말이 억압되어 있을 때는 그러하지만. 이제는 인권이라는 말을 편하게 쓰는 사람들은 진보적이기보다는 시장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사람들이다. 식당아줌마들은 생존권, 가장권, 모권, 사랑권, 감정권...등을 요구하는 것이지 장사치들이 생각하는 인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소수자들 자신이 제기하는 인권이 중요한 것이지, 추상적인 인권이 문제가 되진 않는다.
인권을 들먹이면서 행사를 벌이는 일들. 이러한 행태 속에서는 아무리 진보를 외쳐도 '울산인권영화제'를 하려는 사람들(집행위를 중심으로 한 일부를 지칭함)처럼 외압과 청탁에 물든 낡은 정치를 벗어날 수 없다. 저 멀리 권력의 억압이 아니라 내 옆에 붙어서 움직이는 권력 욕망을 떼어내지 못한 사람들.
'밥·꽃·양' 상영과 관련한 논란을 보면서 소수자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조금만 제도적 위치에 있으면 자신이 중심인양 행동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도 소수적이고 색다르고 이질적인 목소리를 계속 외쳐야 한다. '밥·꽃·양' 제작팀처럼!
2001년 9월 17일, [진보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