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일년 반정도 힘든 포장일을 한 적이 있다.
5시 30분쯤 반장이 '오늘 야근 있습니다'란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친한 친구였는데도, 막 패주고 싶을만큼 포악해져 있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노동을 하고나서도 그담날 일어나 나왔던 것은 돈을 벌기위한, 살기위한 본능과 더불어 함께 일하는 친구들 얼굴때문이었다.
내가 빠지면 그녀들이 더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허리가 쑤시고 온몸이 아파도 휴가를 내기가 힘들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평행선'에서 사계란 노래에 맞춰 주방에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무거운 그릇을 옮기고... 그렇게 일하는 아줌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그녀들의 노동은 마치 쫙 벌어진 사자입에 머리를 넣는 것처럼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모두가 기계를 멈춘 공장에서 밥을 하는 아줌마들에게 누가 '왜 계속 일을 하시느냐'고 물어나 보았을지 궁금해진다. 아줌마들은 누가 시킨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알아서 사람들에게 삶을 먹여주고 있었는데 우리는 아무 의심없이 당연하다는 듯 그들을 뜯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아줌마들은 김광식 위원장이 잡혀가던 날 아침에도 '밥은 먹여서 보내야 한다'면서 밥을 지어 갖다주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들은 자신을 팔아먹은 노조 지도부에게조차 생명줄을 끊지는 않았던 것이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가장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해야할까?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지도부가 왜 존재하는지, 노동조합이 뭔지, 노동운동이 뭔지 아무것도 모른채 입만 나불대는, 공허한 구호만이 가득찬 세상속에서 그녀들만이 굳건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들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들을 짖밟고 서 있는 것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화면이 시작되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목울대가 뻐근해진다. 피시방 한귀퉁이에 앉아 담배를 죽이고 나서 다시 입만 나불대는 세상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과연 지금 내 존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알았던 아줌마들처럼 그렇게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고 싶었던, 그래서 20대의 시절을 기껍게 운동이란 강물에 온몸 담구고 살았던 한 삼십대 여자는 자꾸 도지는 허릿병과 갈수록 심해지는 두통을 껴안고 오늘도 잠 못 이루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