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꽃.양 저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제 울산 mbc 뉴스에 나온 인권영화제 파행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뉴스에서는 밥꽃양 여러 장면이 그림같이 나오더군요.
저는 뉴스에 나온 영화 장면을 보면서 옛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인권영화제 자유게시판에 여럿날 들락거리며 꼼꼼히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차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밥.꽃,양 영화의 시작,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의 현장에 저는 있었습니다.
한 노동자의 아내로 아이까지 데리고 공장에서 먹고 자며 35일 동안 지내며 싸워 왔습니다.
무더운 햇볕에 검게 그을린 여러 사람들, 그곳에 식당아줌마들은 중앙에 있었습니다.
식당아줌마들은 그 곳에 있는 여러 사람들의 먹거리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시장을 돌며 배추나 야채들을 주워 언제나 끼니를 해결해 주셨지요.
그리고 투쟁의 현장에 아줌마들은 늘 최선에 서 있었다고 저는 기억합니다.
위원장이 잠정합의 하고 보고 대회를 하던 그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슴이 멎을 것 같았어요.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리는 정리해고를 받아들이고 최소화시키려고 이때까지 싸워 온 것이 아니라고 그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 흥분한 조합원들과 가족, 위원장과의 대화를 했었죠.
무수히 많은 조합원들은 위원장이 잠정합의한 안을 폐기 시켜라.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싸워 나가자. 정리해고를 받아 들일수 없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노동조합 앞은 매쾌한 연기로 가득했습니다.
정리해고 철회 될 때 까지
죽을 각오로 투쟁하겠다고
죽기전 까지는 내려오지 않겠다고
노동조합 옥상위에 높이 쌓아 만든 고공노성장 위에 있던 위원장의 검은 관.
그 관은 그 곳에서 땅으로 내동댕이 쳐 지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깃발은 불타고
사수대 아저씨들은 초록색 사수대 옷을 불태웠죠.
공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저는 한 두달 바깥 출입을 삼가 하며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믿음에 대한 배신감, 그 상처는 오래 갔고 사람들을 만나기 싫었어요.
1년 6개월 무급을 받았던 남편은 다시 복직하고
그냥 지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노혜경씨의 글-<밥,꽃,양>을 보고 와서 잠못이루는 밥-을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까지 그냥 지내온 내가, 식당아줌마들의 처절한 투쟁을 몰랐다는 것이 슬펐습니다.
98년 투쟁에서 밥꽃양 제작진과 여타 다른 방송국과 몇차례 인터뷰도 했고
모르지만 제 얼굴도 영화에서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그 때 무슨 말들을 했는지 기억안나서 두려운 마음도 들지만
저는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습니다.
98년투쟁 부터 최근까지 기록된 영화 <밥.꽃.양>
98년 투쟁의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
7대, 8대, 9대집행부, 조합원들, 가족, 현장조직들,
그리고 그 때 같이 연대 했던 모든 단체들,
그리고 민주노총 지도부들.
모두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밥.꽃.양은 울산에서 꼭 상영되어야 될 것입니다.
상처는 오래 갑니다.
상처가 곪아 터졌다고 대충 땜질 할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는데 처음부터 하나하나 시작해야 하겠지요.
운동권의 파시즘을
노동조합 앞으로 몰려든 조합원들과 가족들
분노와 흥분과 패배감과 착찹함들...
우리는 술렁대고 있었고
갈팡질팡이었습니다.
때론 담대한 척...
때론 상황을 마치 예견한 식견가처럼...
운동의 대의 운운하면서
이 싸움의 버거움과 앞으로 향후 전망 따위를 점치는 짓꺼리를
했었지요...
그런데
올 봄 효성투쟁때
정리해고의 족쇄가 이제 우리 삶 곳곳을 너무도
내리 누르고 있다는 사실이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내 탓이 아니지 않냐고...
내가 지도부도 아니며
투쟁에 앞선 사람도 아닌
그저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 아니냐고...
마음 무겁게 짓누르던 내 자위가
더이상 이리 살아서는 안된다는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날 밤 웅성임을 잊고 살아왔는데...
자동차 앞을 지날때 늘 쳐져 있던 식당 아주머니들 천막도 외면해
왔는데
이제 더이상 외면이 안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게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