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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언제쯤 세상에는 아픈 여성이 없을까
제목 : 언제쯤 세상에는 아픈 여성이 없을까 -전국 여성활동가 연수 참가기
[ 이름 : 정혜영 | 등록일 : 2002년 08월 10일 | 조회 : 160 ]


함께 하지 못한 친구에게 ,
어제 그제 이틀간 한 괴산 보람원에서 한 전국 여성 활동가 연수를 다녀왔어.

◀ 진취적 여교사, 세상을 바꾼다 6 ▶

벌써 전국여성활동가 연수가 여섯번째야.
일정연수 받는 것과 겹쳐서 참석하지 못한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다 참석했어.
여름 겨울로 한번씩 하기에 6개월을 단위로 만나는 사람들.
반갑다고 얼싸안고 악수하고...언제나 만남이 즐거운 사람들.
혹 보이던 얼굴이 안 보이면 그 안부가 궁금해져서 찾게 되는 인연들.

동반하는 아이들도 서로 반갑다고 껴안으며 안부챙기고.
우리 아이들 요번엔 안간다고 해서 혼자 갔는데 지난 겨울연수때
경상도에서 엄마따라 온 놈들과 진하게 친해졌나봐

그놈이 내게 와서 울 아들놈들 안부 챙기며 왜 안왔냐고 자꾸 물어봤어.
작년 겨울에 그 아이와 이박삼일간 동거에서 우리 아이가 배워온 건 경상도 사투리였어. 집에 와서도 근 열흘을 쓰며 그 우정을 과시했었는데...

사실 내가 지부활동가로 나서게 된 동기는 바로 이 연수를 통해서였어.
처음 99년에 전교조 합법화된 이후 처음으로 가진 이 연수에 난 그냥 개인자격으로 신청하여 참가하였고 그때 거기서 안효정샘을 만났지.
운명적인 만남이었어.
그 뒤 내가 이런 활동가가 될지 그녀는 알았을까 ?

원래 대학때 스터디그룹 만들어 여성학 공부를 하기도 했고
identity가 강하여 한국의 결혼제도와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도 못하고
자기는 없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얼마나 자괴감에 시달렸는지...

그렇게 혼자 냉가슴만 앓다가
나와 같은 부류들과 그 정열을 공유하였을때
우린 조직이 되었고
이젠 전교조내에서 그 어떤 세력보다 응집력과 활동력이 강한
무서운 파워를 자랑하고 있어.

요번 연수의 주제는 "여성의 정치세력화"
물론 그래서 여성할당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성균관대 정현백교수의
『노동조합내 여성의 대표성 제고를 위한 방안 : 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가 참 좋았어.
눈으로 보이는 수치가 막연한 우리의 생각에 확신을 주었고 , 선진사회의 선례가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으니까.

한가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독일의 통일이 동독과 서독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빼앗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야.

국가에서 무료로 탁아방 운영의 혜택을 받던 동독의 여성들이 통일후 임금의 배가 넘는 사설 탁아비를 감당하지 못해 차라리 취업을 포기하여야 했고 서독의 여성들 역시 통일후 동독의 값싼 남성 인력과의 경쟁에 져서 또 실직해야만 하였다는군.

우리가 여성해방을 외칠때 진보남성들은 항상 인간해방이 우선이지 왜 여성해방이냐고 반문하는데 여성해방이 되면 인간해방은 자연적으로 된다는 걸 왜 그들은 간과하는지.

둘째날 점심이후에 마지막 프로그램이 《밥.꽃.양》이라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어.
거기서도 확실히 윗 논제가 증명되더군.

IMF때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노조와 사측, 국가간의 한치 양보없는 팽팽한 싸움속에서 결국 회사가 요구한 정리해고자의 수를 최소한으로 낮추어 정리해고한다는 것에 노사정은 합의하였지.

합의한 노조지도부와 일반 노조원간의 갈등...그래서 해직된 사람들이 사수대라는 명칭으로 모여 복직투쟁을 하는 얘기..그런데 그 중 133명은 모두 식당아주머니들 100%로 채워졌고 힘없는 그들은 다 정리해고되고 결국 다시 노동조합내의 식당으로 계약되어 노동강도는 정규직일때보다 더 커졌지만 임금은 그 절반수준으로 내려가고.

그후 2000년에 IMF에서 벗어나자 다른 남성 근로자들은 모두 다 원직복직되었으나 여전히 그 식당아주머니133명은 노조지도부와 사측의 합의문에 얽매여 계약직으로 머무는 것에 대한 그 아주머니들의 처절한 투쟁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야.

2시간 1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진지함과 흐느낌속에 영화는 진행되었고 종영후 감독과의 시간에서 많은 질문이 쏟아져 결국 폐회식도 자꾸 뒤로 밀려야 되었어.

그 아주머니들은 노조내의 또 노조일수밖에 없는 현실을 단식이라는 극한 투쟁으로 20일이 넘게 전개하지만 나중에 후일담을 듣는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이 더 충격적이었어.

노조집행부는 그 모든 투쟁방법의 허와실을 이미 알기에 심지어는 이십일이 넘는 단식투쟁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기에 그 식당아주머니에게 돌아간 몫은 그들의 완전복직이 아니라 일부 정규직 환원과 약간의 위로금,
그리고 가장 한탄스러웠던 부분 -처음 정리해고때는 남성조합원 대신 희생양이 되더니 복직투쟁때는 아들을 현대기업에 입사시켜주는 조건으로 마무리된다는 것.

이래저래 남성들의 희생양일 수 밖에 없느 그녀들의 처지가 나의 처지처럼 느껴지는 건 단순히 동병상련으로만 볼 수 있을까?

영화의 시작은 그 식당아주머니들이 술마시고 넋두리하는 것부터 시작돼.
무능력한 남편, 시어머니까지 봉양하며 거느려야 할 식솔들에 대한 책임,
거기다 몸과 마음도 피폐해진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고...

왜 제목이 《밥.꽃.양》인가 하면 영화의 전부가 밥과 떨어질 수 없어서였대.
'밥'을 먹어야 투쟁도 하는데 사수대투쟁, 가족투쟁때 모두 그 힘의 원천을 제공한 것은 그녀들인데 항상 그녀들의 숭고한 작업은 밥대기라는 멸시어로 천대 받아야 했기에 감독은 내내 마음이 아팠대
'꽃'은 투쟁의 꽃은 파업이라는 면과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의 중의적 표현이고, '양'은 영화전반에서 느낄 수 있듯이 희생양의 개념.

감독은 마흔네살의 여성인데 깡마른체구의 노동자만 전문으로 찍는 다큐작가.
살아있는 눈빛과 연실 웃으며 대답하는 입이 너무나 대조적이면서도 잘 어울렸어.

저번에 겨울연수때 다이제스트한 1시간짜리를 이미 보아서 마음은 이미 무장하였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프고 답답하고 결국 점심먹은 것이 꼭 체해서 집에 오는 내내 불편했어.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에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니까.

그 감독이 "선생님들과는 다른 노동자여서 상영을 결정할때 몹시 망설여졌습니다. 혹 감상으로만 끝날까봐..."라는 멘트가 가슴에 서리더군.

이렇게 1박2일의 급박한 연수일정은 끝났어.
8월 31일과 9월1일의 1박2일의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위원장(지부장)과 사무처장중 둘 중에 하나는 여성으로 하자는 여성할당제가 다루어질 예정이야.
과연 어떻게 될지...

현대자동차 밥집 아주머니들이 철저하게 끝까지 외면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노조 지도부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
즉 권력을 잡지 못하였다는 것이 자기변호를 해줄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이 가슴을 후비더군.

기도해줘.
우리의 주장이 당분간은 약간의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언제가는 갈 길이고 이왕 가려면 차일피 미루지 말고 빨리 이루어져 정착되기를.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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