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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 이야기모임]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 위하여
0. 습성, 관성 그리고 금기

답이 나오지도 않고 각이 잡히지도 않는다. 밥꽃양이 건드리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따라가기는 하지만 그 질문들을 되돌려 생각하면 금세 막막해진다.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노동조합/운동판 지도부들의 얼굴이 당장 바뀔 것도 아니고, 설사 바뀐다고 하더라도 해오던 습성이, 조직의 관성이 변할까? 라는 질문이 뒤따라 나온다.

무엇보다 절망스러운 건 이런 거다. 무심결에 대안을 생각하며 익숙한 습성에 따라 그림을 그린다. 그나마 나은 사람과 조직의 이름을 떠올리고, 절대 안 되는 일 말고 그래도 봐줄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행여 차선이 될 수 있는 것까지 어느 날엔 생각한다. 순전히 내가 있어 왔던 틀에 맞춰 내 생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너무 익숙한 것들에는 왜?라는 질문을 감히 못한다. 파업, 그것도 공장 점거 파업을 비추면서 그게 싸움 맞냐? 그게 노동운동 맞냐?는 질문을 던지는 밥꽃양은 그래서 당황스럽다. 익숙한 것들의 낯뜨거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습성 혹은 관성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왔던 금기들. 막상 꺼내어 보기는 했지만 반성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밥꽃양의 그들을 욕하면서 나를 찔러보는 것이다.


1. 비켜 서 있던 조합원 대중이라는 덩어리

어느 곳에서나 주류가 있고 "공식적인"이라는 수사가 붙는 사람들과 행위가 있다. 그들은 무슨 직책을 맡고 있거나 논리 정연해서 카메라와 마이크는 줄곧 그를 향하고 각종 기록에는 그들의 이름이 등록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아주 쉽게 집단/전체의 말이 되고 의견이 되고 역사가 된다.

노동운동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노동조합이라는 곳이 있고, 굵직한 연구소들이 있으며, 무슨무슨 직책을 맡고 있어 이름 하나만으로 충분한 인물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1998년 여름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분쇄 투쟁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가 이미 끝났을 수도 있다.
밥꽃양은 이름 없는 이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모르긴 몰라도 인터뷰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을 것이고, 누군가가 그에게 의견을 물었던 적도 드물 것이다. '대중'이라는 덩어리로 아주 쉽게 호명되던 개인들. 밥꽃양은 평조합원이기도 하고 식당 아줌마들이기도 한 이름 없는 그들을 공식적인 자리로 불러냈다.

그래서 밥꽃양에 등장하는 행위와 말들은 구체적이다. "결사항전하겠다"는 말 대신 "공장 부수고 나갈 거예요"라는 말로 정리해고를 목전에 둔 노동자의 심정을 이야기한다. "언니도 삔 하나 해"라는 말로 어떻게 해서든지 끝까지 싸워보려 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드러낸다. 빨간 머리띠 동여맨 일사분란한 대오가 아니라 선풍기 도는 휴게실에서 어린 딸을 안고 낮잠을 자는 사수대의 모습을 비추며 아무 일 없이 끝나버린 파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밤샘 협상에 매달리는 노조 위원장을 향해 "작전 짜는 거라"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평조합원의 말은 정확하게 사기 행위를 지적한다.

구체적인 개인들이 구체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들추는 밥꽃양은 단단해 보이기만 하는 덩어리의 공식을 과감하게 깨버린다. 주류와 공식에서 비켜서 있던 사람들의 낮은 이야기와 모습은 파업의 진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2. 감정과 폭력은 배제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말 앞에서는 잠시 주춤하게 된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몸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분명한 근거를 갖는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우위를 점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받치는 대로 표현하는 것과 파괴와 폭력 같이 감정이 개입되었다고 판단되는 행동은 쉽게 일축되고 배제된다.

공장 나가라는 통보에 열을 받을 대로 받은 사람들이 공장 부수고 싶은 역설적인 생각을 갖는 건 당연해 보인다. 밥꽃양 곳곳에 부수자는 말과 공장 내려앉히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저지당한다.

파업중에 라인을 돌리기 위해 공장에 들어온 관리자들을 보고 흥분하는 사수대에게 조합 간부인 듯한 사람이 자제를 요청하며 폭력을 삼가라고 주의를 준다. 그리고 노조 위원장은 집회에서 조합원 동지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우리가 만든 생산차에 손대지 맙시다." 정리해고 수용한다는 위원장의 말이 나온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아주머니가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이런 말이 흘러나온다. "아줌마, 아저씨들 폭동 일어나요."

폭력과 감정은 배제된다, 지금 이 말을 쓰면서도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폭력이 정말 나쁘냐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감정과 폭력이 배제되어야 하는가? 싸움 과정에서 무엇이 채택되고 무엇이 배제되는가?라는 검열을 거친 질문만 남긴다.


3. 조직이 결정하면 한다

굉장히 불편한 질문이었다. 텐트 농성중인 아저씨에게 "만약 노조가 수용한다면....?"을 물었다. 처음 볼 때는 참으로 낯선 답이었다. "내가 뭐 힘 있겠어요. 따라가야지." 그 다음 볼 때 그 아저씨의 말은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 내가 싸우고 있긴 하지만 내 의견이 조직의 의견으로 채택된다는 믿음을 나 역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소외되는 상황 앞에서도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다. 결사 반대의 목소리가 드높던 시간에 했던 그 아저씨의 인터뷰는 그래서 솔직한 것이었다. 내 의견은 언제든 삭제될 수 있지만 나는 언제나 조직 안에 있는 것이다.

열심히 싸웠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당신 조직이 어디요"라고 묻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조직은 나를 설명하고 우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대의를 위해서"와 같은 말로 쓰이기도 하는 "조직을 위해서". 그래서 조직에 대한 문제 제기는 불순하게 취급되고 금기가 된다. 용기를 내어 한 문제 제기는 반조직인 행위가 되기 쉽다. 그것은 회사와 자본을 상대로 한 문제 제기보다 때론 더 위험한 것이다.

"예"라고만 답하는 무서운 장면이, 지도부는 생명이라고 외치는 무서운 장면이 밥꽃양에 있다. 그리고 밥꽃양의 싸움에 단체 죽이기, 운동 죽이기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4. 그들은 이미 다른 사람, 관료?

노조 위원장은 정리해고를 수용했다. 한 명의 정리해고도 안된다고 소리 높여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위원장의 표현처럼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정리해고 수용이라는 깊은 뜻을 "조합원들은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지, 위원장은 다른 사람이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위원장은 달라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위원장의 말은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당장의 밥줄만을 생각하는 조합원들과는 달리 노동운동 백년대계를 고려해야 했을 위원장, 그리고 동의해준 사람들. 그들은 조합원들과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노조가 아줌마들의 복직 투쟁을 막았다. 합의해서 한 정리해고이기 때문에 복직 투쟁은 안된다는 거였다. 단식중인 아줌마들에게 단식을 접고 노조와 협의해서 싸우자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줌마들의 싸움 때문에 노조 업무가 안된다는 유인물도 배포하면서. 더 황당한 일은 노조와 아줌마들의 싸움이 노노갈등으로 보인다면서 중재단의 모습으로 텐트를 방문한 현장조직 대표들과 대의원 대표들이다.

조합원 대중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들보다 한차원 높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을 민주노조운동 십 몇 년이 만든 것은 아닐까? 당연한 권리를 위해서 싸워왔던 이들이 어느새 자신의 싸움을 짓누르던 자들의 모습을 닮아버렸다. 자신들이 나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통제하고 설득하고 운동의 미래와 국가 경제의 앞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왜 싸우고 어떻게 싸웠던가를 망각한 듯한 이들에게는 운동의 관성과 운동을 업으로 삼은 관료의 싸늘한 얼굴만 보인다.


5. 그래서, 어떻게?

"라넷의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뜬금없는 결론이다. 조직을 할 것도 아니고 노동 운동을 할 것도 아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밖에 없다. 금기와 성역을 더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감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하자는 것. 왜 그렇게 되었을까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 진부하지만 진심이다. 실은 착하게 살자!는 구호도 쓰고 싶었지만 자체 검열을 거쳐 삭제한다.

라넷은 하던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구체적인 개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감히 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낯설게 드러내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라넷의 그러한 전투 과정에 이미 당사자가 된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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