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blue"><b>밥꽃양 - 선착순을 거부하라</font></b>
<b>들어가면서</b>
처음에 노혜경님이 우리모두 쟁토에 갑자기 밥꽃양이라는 영화를 보고 온 다음에 감상문 비슷하게 글을 올렸다. 그 이후 이 영화가 울산영화제에서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울산인권연대 및 울산영화제 홈페이지에서는 이것과 관련한 논의들이 있어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번 울산영화제는 없다고 선언을 하면서 잠정적으로 밥꽃양과 관련한 의문점을 해명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하였다. 그 이후 밥꽃양을 만든 라넷은 폐쇄된 게시판을 안티검열영화제(larnet.jnbo.net)라는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다시 살려내었고 거기에 처음에는 몇분씩 문제가 된 밥꽃양이라는 영화를 올렸고 이것을 나중에는 전편을 인터넷에 공개를 하였다.
<b>선착순</b>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설 중에 어느 장면이다. 군대에서 이른바 고문관이라고 소문난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사수(아버지)가 되기를 꺼려할 정도로 군대에서 고문관으로 소문난 어느 신병이 있었다. 처음에 들어오자마자부터 사고를 치기 시작했고 보기 좋게 처음 행군에서 얼마가지 못하여 낙오를 하고 이런 식으로 고문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한 사람에게 분대장은 사수를 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서서히 고문관은 사수에게 배워가면서 신병 티를 벗어가기 시작한다. 어느 날 행군 중에 역시 그 고문관은 정신을 못차리고 낙오하기 직전에 이미 모든 군장은 사수에게 맡긴 상태에서 사수에게 묻는다. 대체 어떻게 자기 군장까지 짊어진 상태에서 여전히 행군을 잘 할 수 있냐고. 사수는 갑자기 선착순을 말을 한다. 부대에서 부대원들을 굴리면서 일등만 쉴 수 있고 다음에 나머지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 했던 선착순을. 물론 들어와서도 계속 기합은 받아야 하지만...
행군이라는 것은 선착순이라고 말을 한다. 그것도 꼴지가 모든 것을 짊어져야하는 선착순이라고 말을 한다. 꼴지가 낙오를 하면 그 꼴지를 욕을 하면서 그러나 또한 꼴지가 낙오를 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결국에 낙오를 하면 그 꼴지에게 모든 죄과가 퍼부어지는 잔인한 선착순이라고.
밥꽃양이라는 영화는 바로 인생에서 부닥치는 잔인한 선착순에 대한 이야기이다.
<b>잘못끼워진 단추</b>
98년 현대자동차 파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리해고에 관한 부분이었다. 파업까지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해고를 당하는 순간 더 이상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는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싸움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린 노동자들에게 비폭력이라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또 다른 폭력일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 선택을 먼저 강요를 당하고 시작을 하였다. 물론 끝까지 그렇게까지 큰 폭력은 없었고 또한 생산라인이 고스라니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평가받아야할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경이적인 것이라고 말을 해야할 것이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자본이라는 힘을 가진 존재와 싸우면서 실제 그것은 자본에게는 타격이 되지만 자신은 죽어야 하는 일이기에 그러한 한계상황까지 몰렸다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사안이다.
노사화합이라는 명분... 어느 노동자가 말을 했듯 가능할 수 있을까? 자본이 노동자와 함께 갈 수 있을까? 외교적인 수사로 노사화합이라는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인 이야기이다.
이미 처음 싸움에서 집행부는 패배주의적인 시각에서 접근을 하였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거대 언론들은 쉬지 않고 공권력을 투입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었고 거기에 정권은 계속 몰리고 있었으며 자본의 압력에 정권은 상당히 굴복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때에 언론보도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것을 당사자들에게 공개하는 순간 전의는 상당히 상실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고민들은 이해는 한다. 그러나 타협에서 해고자들의 우선복직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것부터 또한 그 와중에 식당 노조원들을 노조에서 임시노동자로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훨씬 더 열악한 조건으로 승계를 한 것 그리고 그 처우를 보장하지 못한 것 이러한 것들은 잘못 끼워진 단추인 것이다.
일단 이후 언론과 거대 자본의 공격은 다음 한라의 공권력 투입이라는 것으로 드러났고 적어도 상당수 노동자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은 최소한 최악만은 피했다는 말이 될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b>잘못 끼운 단추를 제대로 꿰기</b>
밥꽃양이라는 영화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부분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면서 사실상 패배를 하고난 이후 그러나 어느 정도를 건진 이후의 이야기들을 보면서(내가 줄담배를 피기 시작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부터이다.) 단추를 다시 제대로 꿰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야 만다.
협상에서 문구를 만들면서 아주 자그마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집행부의 이야기에서 지금까지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부터 이 영화는 내게는 고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를 평가하면서 "보고싶지 않은 영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영화"인 이유는 이것이 내게 고문처럼 와 닿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 집행부는 노동자의 의견을 말을 하는 곳이 아닌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되었고 이것이 내 심장에 말뚝을 박는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식당노동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지만 그 많은 식구들을 단 144명이라는 사람들이 먹여살린다는 것은 가히 살인적인 노동강도이다. 대체로 인간다운 작업조건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일인당 30명 정도가 한계로 생각을 한다. 비교적 숙련된 노동자라고 가정하면 조금 수는 늘어날 수는 있겠다. 다만 277명이 하던 일을 겨우 반 정도가 해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서 더욱 불안정한 고용에 떨어야 한다는 것은...
<b>잘못 꿰고 남은 것들</b>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용직(임시직)노동자가 이미 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고용불안에 봉착한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밥꽃양에 나오는 식당노동자들과같이 다시 그 자리에 같은 일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해야하는 조건이라는 분석은 나 혼자만의 분석은 아닐 것이다. 노동유연화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같은 일을 이제는 아무런 사회적인 완충장치 없이 당장에 내일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가질 수 없는 한계상황에 모든 것들을 몰아갔고 이것은 사실상 우리 모두가 방치한 것이다.
당장 내일 해고를 당할 위기에서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지금 다른 사람을 보라는 바로 어제까지 이 자리에서 같이 일을 하다가 여전히 같은 일을 하지만 같은 회사 동료가 아닌 사람들까지 보라는 것은 어쩌면 심한 야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나와 같은 작업장의 동료로 돌아오지 않는한 언제 내 밥그릇을 빼앗길지 모르는 두려움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함께 가지 않는한 이 길은 한 걸음도 뗄 수 없기에...
<b>아직은 더 해야 할 이야기들</b>
아직은 노동자 안에서의 남녀차별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가 갖고 있는 통계에서 실제로 밥꽃양에 나오는 식당노동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단순직노동자와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갖고는 있지만 이것을 아직 내 언어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여전히 자본에게는 피해를 받으면서도 지금 갖고 있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는 여성노동자를 포기해야 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며 아직도 이를 풀어내기에는 절박함이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러나 꼭 봐야할 영화"인 것이다. 내가 자본에게는 피해를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이지만 피해를 최소한으로 당하기 위해 내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 있는 피해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b>신자유주의의 젠더</b>
조효래 교수는 한국에 들어온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전형적으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취업을 포기하는 계급을 대상으로 정리해고가 적용되어 왔다고 말을 한다. 잠재적인 실업자에게 아예 취업을 포기하게 하는 정책을 사용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실업률을 낮추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거기서 집중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한 계급은 여성이며 또한 일용직 노동자로 떨어진 계급은 주로 여성이라는 계급이었다. 또한 신자유주의라는 정책 자체가 실제로 남성위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신자유주의의 젠더는 바로 남성인 것이다.
<b>노동귀족을 거부하며</b>
19세기에 마르크스는 노조를 비판하면서 노조가 있는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한다. 이미 21세기이고 프롤레타리아혁명론은 사실상 폐기된 이론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때 벌써 노조를 비판하면서 노동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미 19세기에 벌써 노조집행부는 집행부 자체가 이익집단화 최소한 관료주의화 하였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밥꽃양 촬영일지에 보면 두얼굴의 노조라는 글이 나온다. 거기에 본다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분명 노동자 권익을 대표하는 집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다른 모습으로 식당노동자에게는 다가온다. 다시 말해서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는 식당노동자에게는 자본가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b>글을 맺기 위해</b>
현재 밥꽃양은 울산영화제에서 상영을 거부했으며 진상조사를 위해 인권사랑방에서 조사를 했다. 인권사랑방에서는 안타깝지만 상영을 거부했던 수많은 의혹에 대해 별로 제대로 확인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내부검열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으며 내부검열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이유로 라넷이 상영을 거부한 것은 성급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왜 다른 출품작들은 전혀 아무런 문제 없이 상영이 결정됐는데 밥꽃양만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말을 하면서도 유독 사전에 시사를 하자고 했는가? 그것도 내용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나오는 특정장면을 문제삼을 수 있었는가? 게다가 거기에 현대자동차 영상패에서 촬영했던 부분이 들어간다고 저작권을 문제시 삼을 수 있었는가? 하물며 라넷팀에서 찍은 것은 훨씬 더 자주 그것도 역시 사전에 동의는커녕 통보도 없이 사용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밥꽃양을 제작했던 임인애감독은 현대자동차 영상패와 서로 필름을 같이 사용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울산인권연대는 밥꽃양과 관련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홈페이지를 폐쇄한다고 했으며 아무런 해명도 없이 최근에 다시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했던 발언들은 왜 계속 달라지고 있는가?
<b>글을 맺으며</b>
이 영화를 찍으면서, 카메라를 그 아줌마들에게 들이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팔을 걷어붙이고 싸우려는 욕망을 참고 담담히 이 모든 것들을 방관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라넷 식구들에게 그리고 그 덕분에 더욱 그 아픔이 절절히 내게 고문으로 다가오게 만든 라넷 식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울산영화제(처음에는 울산인권영화제라고 하다가 결국 인권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냈음-대자보)에 밥꽃양은 반드시 상영되어야 한다. 외압과 같은 여러가지 이야기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밥꽃양은 바로 외국에는 현대시라고 잘못 기재된 적이 있을 정도로 현대라는 거대 자본과 밀접한 도시인 울산, 또한 현대그룹에서 아주 중요한 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있었던 그것도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정리해고를 법제화했던 나라에서 있었던 정리해고를 반대하였던 싸움에서조차 소외되었던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이 모든 이야기는 잔인한 선착순에서 꼴지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현재 시스템에서 이 잔인한 선착순을 거부하여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며 그 모든 시초는 정리해고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징적인 존재인 현대자동차노조에게서부터 다시 이 잔인한 선착순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햇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