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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번호: 2246
글쓴날 : 2001-11-05 14:55:44
글쓴이 : 햇귀님의 글 조회 : 159
제목: 밥꽃양 - 이제는 울지 않으면서..
우리모두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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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넷에서 만든 밥꽃양을 처음에는 4분씩 잘랐던 부분으로 다음에 전편이 나온 다음 몇 번을 보았다.
기쁜 일인지 세번째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한 번 볼 때마다 담배를 한 갑씩 피웠다는 점은 있다.
아직 정제된 언어를 내비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거칠게라도 언어를 쏟아부을 수 있기에 거친 언어로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보고자 한다.
선착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설 중에 어느 장면이다.
군대에서 이른바 고문관이라고 소문난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사수(아버지)가 되기를 꺼려할 정도로 군대에서 고문관으로 소문난 어느 신병이 있었다.
처음에 들어오자마자부터 사고를 치기 시작했고 보기좋게 처음 행군에서 얼마가지 못하여 낙오를 하고 이런 식으로 고문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한 사람에게 분대장은 사수를 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서서히 고문관은 사수에게 배워가면서 신병 티를 벗어가기 시작한다.
어느 날 행군 중에 역시 그 고문관은 정신을 못차리고 낙오하기 직전에 이미 모든 군장은 사수에게 맡긴 상태에서 사수에게 묻는다.
대체 어떻게 자기 군장까지 짊어진 상태에서 여전히 행군을 잘 할 수 있냐고.
사수는 갑자기 선착순을 말을 한다.
부대에서 부대원들을 굴리면서 일등만 쉴 수 있고 다음에 나머지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 했던 선착순을.
물론 들어와서도 계속 기합은 받아야 하지만...
행군이라는 것은 선착순이라고 말을 한다.
그것도 꼴지가 모든 것을 짊어져야하는 선착순이라고 말을 한다.
꼴지가 낙오를 하면 그 꼴지를 욕을 하면서 그러나 또한 꼴지가 낙오를 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결국에 낙오를 하면 그 꼴지에게 모든 죄과가 퍼부어지는 잔인한 선착순이라고.
밥꽃양이라는 영화는 바로 인생에서 부닥치는 잔인한 선착순에 대한 이야기이다.
잘못끼워진 단추
98년 현대자동차 파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리해고에 관한 부분이었다.
파업까지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해고를 당하는 순간 더 이상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는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싸움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존의 갈림길에 내몰린 노동자들에게 비폭력이라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또다른 폭력일 수도 있는 것이었고 그 선택을 먼저 강요를 당하고 시작을 하였다.
물론 끝까지 그렇게까지 큰 폭력은 없었고 또한 생산라인이 고스라니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평가받아야할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경이적인 것이라고 말을 해야할 것이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자본이라는 힘을 가진 존재와 싸우면서 실제 그것은 자본에게는 타격이 되지만 자신은 죽어야 하는 일이기에 그러한 한계상황까지 몰렸다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사안이다.
노사화합이라는 명분...
어느 노동자가 말을 했듯 가능할 수 있을까?
자본이 노동자와 함께갈 수 있을까?
외교적인 수사로 노사화합이라는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인 이야기이다.
이미 처음 싸움에서 집행부는 패배주의적인 시각에서 접근을 하였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거대 언론들은 쉬지않고 공권력을 투입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었고 거기에 정권은 계속 몰리고 있었으며 자본의 압력에 정권은 상당히 굴복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때에 언론보도를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싸움에서 이것을 당사자들에게 공개하는 순간 전의는 상당히 상실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고민들은 이해는 한다.
그러나 타협에서 해고자들의 우선복직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것부터 또한 그 와중에 식당 노조원들을 노조에서 임시노동자로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훨씬 더 열악한 조건으로 승계를 한 것 그리고 그 처우를 보장하지 못한 것 이러한 것들은 잘못 끼워진 단추인 것이다.
일단 이후 언론과 거대 자본의 공격은 다음 한라의 공권력 투입이라는 것으로 드러났고 적어도 상당수 노동자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는 것은 최소한 최악만은 피했다는 말이 될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잘못 끼운 단추를 제대로 꿰기
밥꽃양이라는 영화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부분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면서 사실상 패배를 하고난 이후 그러나 어느 정도를 건진 이후의 이야기들을 보면서(내가 다시 보면서도 줄담배를 피기 시작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부터이다.) 단추를 다시 제대로 꿰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고야 만다.
협상에서 문구를 만들면서 아주 자그마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한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집행부의 이야기에서 지금까지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부터 이 영화는 내게는 고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를 평가하면서 보고싶지 않은 영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영화인 이유는 이것이 내게 고문처럼 와닿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 집행부는 노동자의 의견을 말을 하는 곳이 아닌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되었고 이것이 내 심장에 말뚝을 박는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식당노동에 대해 약간은 알고 있지만 그 많은 식구들을 단 144명이라는 사람들이 먹여살린다는 것은 가히 살인적인 노동강도이다.
대체로 인간다운 작업조건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일인당 30명 정도가 한계로 생각을 한다.
비교적 숙련된 노동자라고 가정하면 조금 수는 늘어날 수는 있겠다.
다만 277명이 하던 일을 겨우 반 정도가 해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서 더욱 불안정한 고용에 떨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 꿰고 남은 것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용직(임시직)노동자가 이미 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고용불안에 봉착한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이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이 밥꽃양에 나오는 식당노동자들과같이 다시 그 자리에 같은 일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해야하는 조건이라는 분석은 나 혼자만의 분석은 아닐 것이다.
노동유연화라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같은 일을 이제는 아무런 사회적인 완충장치 없이 당장에 내일에 대한 어떠한 계획도 가질 수 없는 한계상황에 모든 것들을 몰아갔고 이것은 사실상 우리 모두가 방치한 것이다.
당장에 내일 해고를 당할 위기에서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지금 다른 사람을 보라는 바로 어제까지 이 자리에서 같이 일을 하다가 여전히 같은 일을 하지만 같은 회사 동료가 아닌 사람들까지 보라는 것은 어쩌면 심한 야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나와 같은 작업장의 동료로 돌아오지 않는한 언제 내 밥그릇을 빼앗길지 모르는 두려움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함께 가지 않는한 이 길은 한 걸음도 뗄 수 없기에...
아직 못한 이야기들
아직은 노동자 안에서의 남녀차별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가 갖고 있는 통계에서 실제로 밥꽃양에 나오는 식당노동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단순직노동자와 그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갖고는 있지만 이것을 아직 내 언어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나 역시도 여전히 자본에게는 피해를 받으면서도 지금 갖고 있는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는 여성노동자를 포기해야 하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며 아직도 이를 풀어내기에는 절박함이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러나 꼭 봐야할 영화인 것이다.
내가 자본에게는 피해를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이지만 피해를 최소한으로 당하기 위해 내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 있는 피해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하나 더하여
이 영화를 찍으면서, 카메라를 그 아줌마들에게 들이대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팔을 걷어붙이고 싸우려는 욕망을 참고 담담히 이 모든 것들을 방관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라넷 식구들에게 그리고 그 덕분에 더욱 그 아픔이 절절히 내게 고문으로 다가오게 만든 라넷 식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울산영화제(처음에는 울산인권영화제라고 하다가 결국 인권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냈음-대자보)에 밥꽃양은 반드시 상영되어야 한다.
외압과 같은 여러가지 이야기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밥꽃양은 바로 외국에는 현대시라고 잘못 기재된 적이 있을 정도로 현대라는 거대 자본과 밀접한 도시이고 또한 현대자동차는 현대그룹에서 아주 중요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로 이 모든 이야기는 잔인한 선착순에서 꼴지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현재 시스템에서 이 잔인한 선착순을 거부하여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며 그 모든 시초는 정리해고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상징적인 존재인 현대자동차노조에게서부터 다시 이 잔인한 선착순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햇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