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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게도 위안을 받았다
자유게시판 -
게시물 번호: 2240
글쓴날 : 2001-11-05 01:09:01
글쓴이 : 그만 조회 : 72
제목: 미안하게도 위안을 받았다


올 여름, <1991년 1학년>이란 영화 시사회를 한다고 해서 더운 여름날 지하의 상영장을 찾았다. 1991년 1학년은 나에게 너무 익숙한 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살아가는데 하나의 결절점이 되었던 해가 분명하다. 서핑하다가 시사회 얘기를 봤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묻지도 않고 영화를 보러 갔지만 채 10분도 못 보고 그냥 나와 버렸다. 영화를 애써 만든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당시 어느 대학 총학생회장의 인터뷰가 길게 이어지고 있는 중간에 자리를 떴다.

불편했다. 10분도 안보고 뭘 봤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불편했다는 말이 정확할 거다. 당시 투쟁 정국을 이끌었다는 전국연합(명칭이 맞는지도 모르겠음) 사람이 인터뷰를 했고 그때의 전대협 무슨 국장이라는 사람이 인터뷰를 했다. 1991년 1학년의 목소리는 아주 낮게 깔리거나 상황 설명을 하는 나래이션으로 처리되었다. 불편함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이렇게 그 시절이 역사화되는구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시절을 가져가는구나, 더 우울해지기 전에 자리를 뜨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일어섰다.

<밥꽃양>을 보면서 위안을 받았다. 많이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렇다. 나는 그분들의 1998년의 절박함을 제대로 모른다. 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가라고 하면 그 심정이 어떨런지, 삔으로 공권력에 대비하려고 했던 아줌마들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 투쟁 현장에 데리고 나왔던 아이가 죄인된다는 엄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모른다. 싸우려고 했지만 싸우지 못하고 허망하게 끝나버린 실패한 싸움에 대한 아픔만 조금 공유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름없는 이들의 말이 기록되는 과정에 위안을 받았다.

싸움을 이야기할 때 지도부의 어떤 말이 아니고선 기록되지 않는다. 대충의 분위기는 이러했다가 있고 지도부 누구의 생각은 무엇무엇이다가 남는다. 구체적인 누군가가 어떤 심정으로 그 싸움의 공간을 통과했는지는 웬만해선 남지 않는다. 내가 1991년을 통과한 기록은 순전히 나에게만 남는 것처럼.

<밥꽃양>은 평조합원이라 불리는 이름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정리해고 반대라는 추상적인 구호 속에서 구체적으로 공장을 부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 열심히 투쟁했다는 앙상한 말 말고 투쟁을 위해서 밥짓는 노동을 멈추지 않았던 아줌마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들에게 과감하게 마이크를 갖다 댔고 그들의 언어로 1998년의 싸움과 이후의 상흔을 2시간 넘게 추적한다. 아무도 의견을 묻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싸움에 대한, 실패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그들의 말을 '공식'적인 공간으로 이끌어온 영화다.

집단으로 묶이지 않은 개인의 이야기, 영화에서 먼저 시작했다. 힘도 지위도 없는 그들이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은 아직 이른가? 정리해고 결사 반대보다 "우리요, 공장 부수고 나갈거예요"라는 말이 덜 세련되었기 때문일까. 평조합원이 위원장에게 "노동운동 그런거 아닙니다"라고 얘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까. 그들이 마이크를 다시 빼앗기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누가 1991년을 묻는다면 "무서웠어요"라는 말로 시작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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