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꽃·양' 사태에 대한 임지현의 생각
울산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던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밥·꽃·양'의 사전검열 문제를 둘러 싼 논란에 대해 내 생각을 밝힌다. 그것은 논쟁 과정에서 '일상적 파시즘'의 문제가 제기된 탓도 있지만, 한국 사회를 설명해야 할 책무가 있는 한 사람의 역사학자로서 한국 운동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설명방식을 드러내야겠다는 판단에서이다.
먼저 이렇게 뒤늦게서야 입장을 밝히게 된 것을 사과 드린다. 오스트리아의 노동사대회에 다녀오느라 소식을 늦게 접했고, 또 저간의 사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버스가 지난 뒤에 손을 흔든다는 후회가 크지만, 작은 기록으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다.
'밥·꽃·양'의 사전 검열을 둘러 싼 논란에서, 주최측이 사전 검열의도를 가지고 있었느냐의 여부는 이 문제가 안고 있는 다양한 포인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설혹 주최측이 결코 사전검열의 의도를 갖지 않았다고 해도 또 사전검열이 특정한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사전검열의 문제로 이 논의가 환원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검열 환원론은 이 사건이 담고 있는 검열의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또 다른 의미를 은폐할 뿐이다.
내가 볼 때, 더 큰 문제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해 온 한국의 노동운동이 가진 헤게모니적 성격이다.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에서, 현대 자동차노조와 같은 대기업 노조가 주도해 온 노동운동은 물론 해방의 운동이었다. 그것이 노동자들의 절절한 염원을 담고자 노력했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해방의 운동 안에서 또 다른 권력 혹은 헤게모니를 지향하는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은 '밥·꽃·양' 이전의 '평행선' 상영에 대해 현대자동차 노조가 보여 준 태도에서 이미 잘 드러난 바 있다. 그에 대한 현대자동차 노조의 항의와 반발은 이들 대기업의 남성노동자들이 지향하는 해방에서 여성노동자는 배제되었거나 혹은 경시되었다는 이면의 사실을 잘 드러내준다. 이 사건을 '밥·꽃·양'에 대한 검열의 문제로 환원시키면, 해방 운동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 억압구조를 은폐할 수 있는 것이다. 검열 논란에 앞서 이미 '평행선'은 이들 노조 지도부에 의해 배제되고 거부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한국의 진보적 노동운동을 추동해 온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중심주의'가 갖는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적 노동운동이 지향했던 계급해방의 내용은 사실상 '정규직·남성·한국인 노동자'의 해방이 아니었는가라는 반성적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계급해방의 슬로건이 비정규직·여성·외국인 노동자라는 주변화된 소수를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억압 구조를 은폐하는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솔직한 자기 반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제 2의 '밥·꽃·양' 제 2의 '대우캐리어' 사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이 사건이 '정규직·남성·한국인 노동자의 해방'에서 주변화된 소수를 포괄하는 해방으로 노동해방의 외연을 넓히려는 새로운 모색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0월 2일 임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