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날 : 2001-09-25 23:39:06
글쓴이 : 노혜경
제목: [밥.꽃.양]은 울산에서 상영되어야 한다
내일자 한겨레 시평입니다.
한겨레 신문에는 길이가 약간 넘쳐서 조금 다르게 나갑니다.
[밥.꽃.양]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여러 곳에서 넘쳐나게 합시다.
많은 입들이 모이면 무쇠도 녹인다고 하잖아요.
완고하고 죄지은 마음들이 다시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지게, 그리하여 정말로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는 조직이나 명분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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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은 울산에서 상영되어야 한다
전세계가 뉴욕에서 자행된 테러로 인하여 마음을 앓고 있는 요즈음, 우리나라의 작은 도시 울산에서는 밥하는 아줌마들의 살아남을 권리를 말하게 해 주는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식당아줌마들이 현대자동차 노조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복직투쟁을 다룬 다큐영화 [밥.꽃.양]을 둘러싼 공방이 그것이다.
울산인권영화제--이 명칭은 [밥꽃양]사건이 발생한 후 인권운동사랑방 측의 항의로 울산영화제로 개칭되었다--가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던 영화 한 편을 사전검열하려 했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영화제측은 사전검열이 아니다, 출품작으로 선정한 일이 없다, 등의 모순적 주장을 전개하다가 마침내 게시판을 닫아버리고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주요 주최측인 울산인권연대의 외부활동까지 잠정적으로 접는 등 사건의 파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사소한 데서 발단이 되었다.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 상영전에 관계자들끼리 미리 영화를 한 번 보자는, "얼핏 보기에"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제안에 대해 영화를 출품한 라넷측이 사전검열이라고 판단, 영화제 상영거부를 천명한 것일 뿐이다. 영화제 집행부로서는 자신들의 제안이 왜 사전검열이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토록 비난당해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억울할지도 모르며, 라넷측의 거부가 너무 과도하게 민감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얼핏 보면" 그렇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타협하고 수도 없이 타자의 양보를 강요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것이 약자인 타자에게는 얼마나 커다란 억압인가를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얼핏 볼 자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얼핏 봄을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제 집행부와 울산 인권연대가 지독하게 간과했던 것은, 인권영화제에 출품하기로 마음을 먹는 영화라고 하는 것은 그 탄생에서부터 온갖 사회적 물의를 예상하게 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울산인권연대가 인권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한 것도, 통상적인 언로로는 발설 불가능한 것들을 말하게 해 줄 경로가 아쉬웠기 때문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 표현의 수위와 판단은, 아직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데에서 시작된다. 인권영화제에서 말해지는 모든 것들은 문제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만일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면 바로 그 문제의 소지를 사람들 앞에 내보여서 해결하게 하는 일, 이것이 인권영화제의 할 일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들이 영화제측의 그런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전시사를 하고 문제가 될 부분을 적당히 손을 보아 출품했더라면? 아마도 이 일은 사건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사람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가게 되었을 것이고, 거대노조라는 권력과 맞서는 밥하는 아줌마들의 절박한 절규는 다음 또 다음 기회를 가다려서야 겨우 가느다란 신음으로 발설될 것이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미명하에 약자의 입을 틀어막는 일은 여전히 미덕이 될 것이며, 자기자신과 자기편에 관대하기 위하여 더 약한 자를 핍박하는 일은 여전히 문제의식 없이 행해질 것이다.
우리는 라넷의 감독들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 검열에 대한 저항은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과, 작은 일에 둔감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내가 익히 알고 신뢰해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언제나 올바르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약자에게 양보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궁극적으로 부도덕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누군가 금기를 깨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이 억압인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예술의 사명은, 바로 이러한 금기가 인간에게 억압이란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울산인권연대가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소중하고 가치있는 그만큼, 이번 사건에서 새로운 교훈과 힘을 얻어내지 못하고 좌절과 실망에 싸이는 모습은 안타깝다. 이 사건을 슬기롭게 해결할 유일한 방도는 오직 [밥.꽃.양]을 울산에서 상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앞에서 밥하는 아줌마들의 비명이 생생히 울리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우리에게는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다른 권리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아줌마들의 말할 자유를 지켜줄 의무뿐이다. 상영하라. 그것이 그렇게 두려운가?
[한겨레신문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