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에서 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는 한 여성주의자입니다.
비록 몸은 미국에 있지만 작년에 이 곳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98정리해고 투쟁 당시부터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 '식당조합원들을 비롯한 현자 조합원들의 투쟁 리포트'를 영상으로 담아온 라넷의 작업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아직도 99년 국제 노동미디어대회장에서 발표되었던 영상 속의 식당 아줌마들의 절망과 분노가 현재진행형의 숙제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메카라 불리는 울산. 그 울산의 노동운동사에 98년 현자 노조의 정리해고투쟁은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협상과정에서 노사정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하였던 내용은 정리해고 대상자에 일차적으로 식당 근무 여성노동자 170명을 포함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전원 정리해고와 노동조합의 식당 직영 방안이 결정되었습니다. 당시 투쟁의 지도부였던 김광식 위원장은 '최선이 안되면, 차선 혹은 차차선을 선택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결정이 최대한 다수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보호하기 위한 차선책이었음을 역설하였습니다.
'아름다운 투쟁'을 모토로 내건 이 투쟁은 그렇게 노사정 평화적 합의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맺으면서 종결되었습니다. 식당 여성노동자들은 전원 정리해고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의 주체이자 투쟁의 활력소였던 '밥주걱 부대 아줌마들'의 행동과 목소리는 이 투쟁의 공식적 기록에서 삭제되었습니다.
99년 국제 노동미디어 대회장의 한 스크린 위에서는 침묵의 장벽에 의해 용해되어 버렸던 식당 아줌마들의 목소리, 공식적인 기록에서 그저 유실된 편린들로 남아 있었던 식당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노조에서 상영한 98투쟁 영상을 보고 난 아줌마들의 분노를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식당에 근무하는 우리 아줌마들... 오늘 상영한 스크린 우리 너무 분통이 터집니다. 우리가 너무 노력한 만큼 피눈물을 흘린 만큼 여러분들이 몰라준다. 누구를 위해서 이 영상 상영한 겁니까? 우리 솔직하게 아줌마들 10년 넘게 거의가 평균적으로 15년 넘게 일해온 사람들이에요. 이 만큼 청춘을 받쳐서 일을 해왔는데 왜 하루아침에 하청화되고. 진짜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싸웠습니까? 김광식 위원장을 위해서 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투쟁을 한 게 누구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 그냥 한 건데, 결과는 남을 위해서 했고, 내 자신은 너무 초라했고, 솔직하게 우리 아줌마들 그 만큼 투쟁했어도 하청화됐습니다."
"진짜 오늘 분노를 토하는 게 우리를 위해서 상영했다고 하면 우리가 그 만큼 피땀 흘리고 그 장마철에 비를 맞으며 했는데 그런 장면은 조금밖에 안나와요. 그게 조합에서 했건 어느 언론에서 했건 진짜로 너무... 우리 마음과 투쟁 그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아요. 나는 오늘 진짜 그랬어요. 오늘 누가 어느 팀에서 어디서 상영한거냐. 그게 밝혀지면 가서 내가 반문하고 싶은 게 있어요. 진짜로 우리 아줌마 부대 현대자동차 밥주걱 우리 아줌마 부대 그 만큼 했는데 왜 이 만큼 밖에 안나왔는지 따지고 싶어요."
"우리가 그 만큼 생활하고 피땀 흘리고... 나는 절망이예요. 나는 지금 절망하고 싶고...
내가 진짜 청춘을 바쳐서... 15년을 바쳐서... 이 만큼 투자를 했는데, 나한테 지금 돌아오는 것은 진짜 경멸 또 멸시, 그런 것뿐이니까.
진짜로 부당해고 그거 어디서 보상합니까? 누가 보상할꺼예요?
정부에서 개입했죠. 개입했잖아요. 정부에서 그럼 우릴 보상합니까?
그럼 김광식이 보상합니까? 합의서에 도장 찍었는데.....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투쟁을 했습니까?
노사정..정부... 노는 뭡니까? 그거 진짜 허울좋은...허울좋은...
진짜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내 후손을 위해서 내 자식 후세를 위해서 피를 토하고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만큼 인내하고 살고 있습니다.
근데 이 투쟁이 또 이 인내가 우리 후손에 그만큼 전해집니까? 예?
우리 희생이 그만큼 후손에 전해집니까?
그거는 아니잖아요. 나는 희생을 하고 싶고... 자식을 위해서 투쟁하고 싶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언론에서도 이걸 대변하고 나설 수 있습니까? 예?"
그렇게 아줌마들은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과 가슴속에 켜켜이 응어리진 분노를 술잔으로 씻어 내면서 낮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98년 투쟁을 둘러싼 노동조합, 자본, 국가권력의 세력관계 속에서, 노동운동과 가부장주의의 포개진 형상 속에서 침묵과 동의의 표식만을 지닌 채 소실되어 버렸던 식당 아줌마들 스스로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체성과 담론이 투쟁의 기록에서 지워진 것에 분노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노사정 합의에 의한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감수했던 희생조차도 경멸과 멸시의 대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98년 투쟁 과정에서 그들은 투쟁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구성했고, 10년 15년 꾹꾹 눌러왔던 인내를 투쟁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내던져서라도 정리해고를 막아내겠다'는 각오로 싸웠습니다. 대부분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아줌마들에게 '정리해고 결사반대'는 단순한 투쟁의 수사학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보다 절실한 싸움의 진정한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나긴 98년 여름의 농성 과정에서, 그리고 노사정 합의 후에, 그리고 또 8대 집행부하에서의 투쟁 과정에서 아줌마들 속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교차했을 희망과 절망, 분노와 억제의 감정들은 숱한 98 현자 투쟁 기록들에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투쟁 과정에서 느끼고 표현하고 행동하면서 변화했을 아줌마들의 주체성은 현자 투쟁을 기록해 온 무수한 제도권 비제도권 '리포터들'의 포커스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직 밥꽃양을 보지 못했지만, 밥꽃양의 라넷팀 중 일부가 99년 국제 노동미디어대회때 발표한 영상을 기준으로 예측해보자면, 이 다큐멘터리는 아마도 공식적인 기록에서 삭제되거나, 주변적인 웅얼거림으로 머물러 있을 뿐인 식당 아줌마들,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는 작품일 것입니다. 이 작품이 끝내 외압에 의해 '잠재적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봉쇄 당한다면, 이들 소수자들, 여성 하위주체들의 행위와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더욱 깊은 어둠과 침묵 속으로 빠져 유실되어버릴 것입니다. 트린 민하(Trinh Minh-ha)라는 여성주의자는 "지배적 이야기에 참가하기를 거부하는 침묵은 때로는 들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나 다른 침묵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의 침묵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알아차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삭제된 하나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한 점을 더 추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식당아줌마의 말속에도 표현되어 있듯이 여성 하위주체는 침묵하고 있으므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때로는 무언과 침묵 속에서, 그리고 그 오랜 침묵을 뚫고 나온 행동과 외침 속에서, 어쩌면 여전히 주변적이고 낮은 행동과 외침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며, 거부하거나 저항합니다. 98년 이후 식당아줌마들의 투쟁도 이와 같은 저항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본의 세력관계가 가부장주의 만나는 교차로에서 침묵의 장벽에 의해 굴절되고 흩어져 버린 아줌마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경청하고자 하는 노력, 여성주의적 청각을 예민하게 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이를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집행부는 이미 식당아줌마들의 투쟁을 영상화한 <평행선>의 상영을 방해하면서,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침묵을 강요하는 자들의 편에 서고 말았습니다. 이번 울산 영화제의 밥꽃양 상영에 대한 외압은 노동조합운동 내의 반 여성주의와 가부장주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결과만을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압에 의해 사전심의, 검열을 하고자 한 울산 인권 영화제 집행위의 행동은 역설적이게도 인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집단이 여성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게 된 사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집행위 측에서는 조속히 공식적인 사과를 함으로써 이후 조소와 비난의 대상으로 남는 불명예를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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