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밥.꽃.양 사전 검열에 대하여
- 울산의 1998년, 그 침묵의 카르텔에 대하여
이번 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LARNET의 제작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 솔직함을 보고 싶습니다
LARNET의 상영 거부 결정은 사전 심의 거부였습니다. 되풀이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지칠 테지만 집행위 측의 이야기가 자꾸만 바뀌니 확인을 위해 지루한 되풀이를 해보면 이렇습니다.
1. LARNET은 이미 프로그래머와 상영, 감독과의 대화를 협의한 상태였습니다. 여성부문 다른 프로그래머가 상영 후 토론회 참석자 섭외도 했다고 합니다.
2. 그런데 집행위 측으로부터 문제제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보고 상영 결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나오면서 이 사태는 시작되었습니다.
3. LARNET은 상영 거부를 결정한 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사전 검열 문제와 이를 가능하게 한 외압의 실체를 밝히길 요구한 것이고, 집행위는 상영을 위한 검토 차원에서 한번 보자고 한 것이었으며 표현의 자유 침해 운운은 오해라고 했습니다.
4. 이 게시판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물론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꽃.양> 상영과 관련된 외압의 실체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전 검열에 대한 열띤 논쟁을 했습니다.
5. 집행위는 9월 12일 <문제제기의 내용에 대하여 밝힙니다>라는 글에서 <밥.꽃.양>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섭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전 검열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제기의 내용은 식당 아주머니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라고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저는 영화제 집행위의 입장선회, 혹은 거짓말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집행위는 사전 검열 요구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을, 외압을 받아들인 일이 인권영화제의 수치라는 것을, 자신의 입장선회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인식 부재와 판단 부재는 당시의 울산인권영화제, 지금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영화제를 집행위가 개최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일 뿐, 그들 자체를 탓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침묵의 카르텔이 두려울 뿐입니다.
■ 1998년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
내가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증거와 숫자들이 내 앞에 줄지어 나열되었을 때
보태고 나누고 측정하는 차트와 일람표가 내 눈앞에 제시되었을 때
천문학자가 큰 강단 안에서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강의하는 것을
앉아서 들었을 때
나는 금방 지루하고 기분이 나빠져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는 나 혼자 거닐면서
신비로운 밤의 축축한 공기 속에서 이따금
묵묵히 별들을 올려보았다
― 월트 휘트먼
<밥.꽃.양>, 노조식당 여성노동자들을 담은 영상을 만드는 그녀들의 심정은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1998년 고용안정투쟁을 전후로 확연해진 운동의 미래와 거대한 조직에 대한 박식한 말들, 파업과정에서 봉합되는 서로 다른 견해들, 배제되는 조합원들과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무시... 이런 것들을 목격한 그녀들은 그곳에서 잠시 나와 그녀들과 그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무엇일까? 그 질문이라도 제대로 던질 수 있을까? 내심 초조해하며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중 한 작품이 <밥꽃양>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지적했듯이 띄우기 위해 이 작품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아닙니다. 왜 이 작품이 울산인권영화제에서 검열 요구를 받아야 했는지, 문제가 있다고 이의 제기를 한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긴 서두를 꺼냈습니다.
외압이 있었다고도 하고 없었다고도 하고 작품에 문제가 있으니 심의는 당연하지 않느냐고도 합니다. 이런 말바뀜에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꺼려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예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그 예민함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것에 대해 자세하게 쓰는 이유는 이 작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들 모두가 암묵적으로 공조한 상황에서 검열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의 경과 보고와 게시판을 통해 오고간 말들에서 문제가 되었던 영화의 장면은 이렇습니다. 처음과 두 번째의 내용은 확연하게 다릅니다.
최초의 문제 제기: *** 발언 뒤 흥분한 사람들을 ===씨가 잠재우려는 듯이 편집이 되었다고 한다더라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통화 내용, 인권연대 사무차장의 발언)
이후의 문제 제기: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 (9월 12일 집행위 입장글)
메인 프로그래머는 현대자동차 6대 노동조합(위원장 정갑득) 여성부장이 울산여성회에 찾아가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합니다만, 이것이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 제기되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문제제기 내용과 제기자의 실체가 밝혀지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밥.꽃.양>에 제기된 "문제"로 에둘러졌지만 실은 울산을 예민하게 만든 그 "문제"의 실체를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철폐투쟁을 지금의 울산 지역 노동운동이 업보처럼 안고 사는 건 아닌지, 노조식당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던지고 있는 복잡한 화두를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집행위는 이 작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문제에 다가서려는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한 공조, 지나친 예민함이 만든 침묵의 카르텔로 보입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과정에서, "문제" 자체가 거론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과정에서 영화의 내용과 상영 자체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고, 그로 인해 그녀들의 작품은 사전 검열을 요구받았던 것입니다.
출근 버스가 있다.
앉아서 좀 편히 가보자는 사람들과 불편하게 실려 가는 사람들이 섞여 있고,
잠이 와서 눈을 감은 사람들과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을 감는 사람들이 있다.
편히 가든 실려 가든 어쨌거나 버스는 간다.
잠이 와서 눈을 감는 것도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을 감는 것도 자연스럽다.
굳이 편히 가려고 하지 않았다거나 눈을 감지 않았다고 변명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