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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bs 백업 데이터로 복원한 읽기 전용 정적 게시판 (2018-09-23 백업 기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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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3013번 신기섭님께, 그리고 다른 모든 분께...
리플을 달아 답하려 했는데 페이지가 넘어가서 여기 올립니다.
>>>>>>>>>>

<font color="blue">제가 임인애 감독님께 언제 영화
상영회가 열렸냐고 물은 것과 관련해서 논점이 조금
이상한 쪽으로 흐르는 듯합니다.

제가 너무 미세하게 접근하고 있어서, 전체 상황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느낍니
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
다.

일단 제가 처음 상영회를 8월25일 이전에도 했는지 물
은 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1. 이 사건 초기에 영화제 주최쪽의 어떤 이는 "현대차
노조는 선거에 바쁘고 영화 내용도 모르는 데다가 이
영화가 울산영화제에서 상영될 거라는 점도 몰랐다. 그
런데 어떻게 외압을 넣느냐" 이런 식으로 주장했습니
다.

2. 그런데 총괄 프로그래머 김진영씨는, 사랑방 보고서
에서 보면 8월22일에 다른 프로그래머들에게 "현대차
노조 영상패에서 특정장면에 반발하는 이가 있다. 그냥
넘어갈 것같지 않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나타나 있
습니다. 이 부분은 사랑방 보고서를 통해 처음 드러난
사실입니다.

3. 인권운동사랑방은 자신들의 보고서에 대한 제 문제
제기에 답하면서 "과거"(이 낱말이 중요합니다)에 현대
차 노조가 불만을 갖고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과
거 상영회 때"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사랑방이 과거를 강조한 것은, 그 과거의 반발이 이 영
화제 때에도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서 입니다. 외압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 겁
니다.)

만약 8월25일 이전에 상영회가 없었다면, 위의 3가지
말들이 제게는 모두 뒤죽박죽,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
로 생각됩니다.

1번과 2번은 원래부터 모순되는 말이고 그래서 적어도
영화제 주최쪽 사람들의 말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이
미 지적됐지만, 인권운동사랑방마저 이상한 소리를 하
는 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임 감독님께, 상영회가 언제 있었느냐를
물은 겁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의 도움으로 대부분 명
확해졌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밥, 꽃, 양'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영화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장면
이 논란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인권운동사랑
방이 "과거"라고 지칭한 것이 이것으로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제, 지난 8월초에도 이미 영화가 서울에서 상
영됐다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차 노조 영상패의 어떤 분이 영화의 특정
장면에 반발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워낙 여
러명이 그야말로 "과거"부터 지난 8월까지 이 영화를
보거나 그 내용을 전해들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언제 영화 내용이 유출됐냐는 이제 별로 중요하
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현대차 노조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집행부이건,
영상패 회원이건, 식당 조합원이건) 이 영화 내용을 충
분히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위에 쓴 1번 주장은 거짓임이 더욱 확실해
졌습니다. 그리고 2번과 3번의 주장이 어떤 맥락인지도
대체로 파악이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남는 의문은, 2번의 발언입니다. 그게 인
권운동사랑방의 답변이 주장하듯이 "과거"의 반발을 거
론한 것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과연 총괄 프로그래머는 한참 전의 (그러니까 적어도 1
년 이상 됐다고 봐야죠, 시작지점으로 가면) 현대차 노
조내 반발을 거론한 것일까? 그것도 `밥, 꽃, 양'을 영화
제에서 상영하기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이 아니라 상당
히 지난 시점인 8월22일에야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론
했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영화제쪽 주장처럼 단지 후보작이었건, 아니면 상영작
으로 확정됐건간에, 애초 이 영화의 상영 여부가 거론
되기 시작한 초기에 왜 총괄 프로그래머는 가만 있었을
까요?

이런 의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래서 전 8월22일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했다는 총괄
프로그래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겁니다. 저는 요즘
완전히 숨은 조각그림 맞추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
다.

새로운 사실들이 조금씩, 조금씩, 그것도 서로 다른 엉
뚱한 맥락속에 숨은채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것
들간의 일관성을 따져봐야하고, 조각을 맞추듯해야 상
황이 조금씩 명확해집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밥, 꽃, 양' 문
제는 그냥 "너희들 검열했지... 나쁜 놈들..." 이렇게 선
언하고 끝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 전체 과정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면서, 이른바 운
동권이, 또 이른바 진보세력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담
고 있는지 하나씩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
는 한, 우리는 뼈아픈 반성을 하고 거듭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많은 시간 들여가며 이 게시판에 글을 쓰고 있
는지, 어떤 때는 회의스럽기도 하고, 그냥 묻어두고 싶
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지만,

그래서는 우리에게 결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에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실상
을 분명히 확인하는 것, 그것은 많은 반목과 불화와 분
열을 유발할지 모르지만, 결국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
이라고 믿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이라도 정리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남은 의문도 분명해지
기 때문입니다.</font>

신기섭님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어제 새벽에 올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지금 들어와서 보니,
어제새벽에 올린 글에 대하여 많은 질문들이 올라왔습
니다만 곧바로 답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어제는 몸이 무척 아프고 하루종일 다른 일도 있고,
그래서 게시판을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설령 들어왔다
하더라도 곧바로 글을 올리지도 못했을 겁니다. 게시판
에 글을 거침없이 쏟아놓는다는 것은 아직도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앞으로도 질문에 대해서는 꾸준히
답하겠지만 시차가 조금씩 생기더라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10월 26일 대우조선 대의원교육이 지리산 어디쯤에서
있었습니다. 저희들 시간은 오후 2시 였는데, 아침 8시
부터 그 장소에는 빽빽한 일정이 들어차 있었지요.

그래서 점심시간 1시간 말고는
설치를 하거나 영상교육을 위한
집중적인 공간배치를 할 시간이 없어
새벽 6시에는 그 곳에 도착해야 한다는 계산이 섰지요.
일정이 시작되기 전 2시간을 사용할 생각이었습니다.
저희들 셋은 모두 운전면허도 없고 차도 없어
야간에 이동해야 할 때나 짐이 많을 때는
주위 분들에게 신세를 지게되지요.

새벽 3시에 작업실을 출발해야 새벽 6시에는
지리산에 도착할 수 있어서
전번에도 도움을 받았던 삼미특수강 해고자 한분이
한밤중에 작업실로 오셔서 함께 지리산 교육장에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도 창원까지 태워다 주셨고
창원 터미날에서 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작업실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만 20시간의 빽빽한 일정이었습니다.

창원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며 그가 낮으막히 말했지요.
5년동안의 싸움과 대법원의 패소 판결을 받고난 후
상황들, 그동안 나오던 임금도 끊기고 살고 있던 아파트도
비워줘야 하는 막막한 심정등이었습니다.
어떤 위로의 말도 감히 건넬 수가 없었습니다.

"당분간은 실업수당 받으면서 생각을 해봐야지...
그런데 막막하네.."라는 말 앞에
"어째도 살아질거야.."라는 하나마나 한말을 해버렸지요.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의 파편들은
참 오래오래 모두의 삶에 끈질긴 생채기를
현재진행형으로 마구마구 내고 있구나..
그런데 아무것도 나눌 수 없으면서
염치없이 차를 얻어타고 왔고 어째도 살아질거라는
상투적인 말밖에 할 수 없어 참 무기력해졌지요.

그래서 너의 지난 5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처음엔 죽자사자 한 한달이라 생각했는데
벌서 두달이고, 앞도 뒤도 안보이고 힘들다"고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나,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날 마산발 야간열차 타고
상경투쟁 하러 올라갈 땐 한달 바짝 싸우면 쫑날거라
생각했다. 배낭메고 서울행 기차 탈 땐 그랬다.
그날 기차에서 밤새도록 마시고...
한달이면 끝낸다고 생각한 게
5년 가더라. 5년.... 그동안 서울 창원 갔다왔다
싸움만 하고 5년 보냈는데 지금은 너무 막막하다..."

그 기나긴 5년 뒤에 찾아온 생존의 막막함을
가늠할 수도 없었지만, 한달이라 시작한 싸움이
5년이라 하는데는 새삼 끔찍했지요.

그 끔직한 시간의 늘어짐을
가만가만 되뇌어 봤지요.
5달이든 50달이든, 5시간이든...
이제는 우리도 시간 흐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존을 두고 싸우는 일에 비하면
누가 그러듯이 웃기는 일로 보일 수도 있겠지요.
잘난 영화 하나 갖고 왜 그리 호들갑으로 자지러지느냐고.
하고 싶으면 상영하면 될거 아니냐고....
마음대로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별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비웃어도 할 수 없지요.
각자 저마다의 무게만큼 삶을 실어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부여하는 의미의 두께에 대해서는
하챦게 여길 수는 없는 거지요.
갈기갈기 찢어져도 좋고, 겹겹이 모욕을 퍼부어져도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미련하게 이 싸움을 붓잡았어요.
그리고 겨우 긴호홉을 준비하고, 말을 할 것이니까요.
근거없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지요.
우리가 겪은 만큼, 들은 만큼, 본 만큼
느낀 만큼, 판단이 서는 만큼 말할 수 밖에 없는거지요.

희망 때문에 싸우는지, 절망 때문에 싸우는지,
상처 때문에 싸우는지, 진실 때문에 싸우는지,
당한 만큼의 억울함 때문에 싸우는지,
창작자들에게는 물리적 생명만큼
소중한 표현의 자유 때문에 싸우는지,
영상보고서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언어나 표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지, 약자의 소리 때문에 싸우는지,
우리의 시선이 억압당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지
거창하게 기억의 전쟁인지,
생산적인 논쟁을 위하여선지,
연대를 위한 해체인지
이제 그 경계나 구획을 지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든, 그 어느 것도 아니든...
부당하기 때문에 싸웁니다. 누구를 공격하고 쳐부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니다.."라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대충 접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이유에도 때로는 모든 걸
걸어버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식당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을 오래 지켜보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순간의 실패도 순간의 승리도
모두 배웠기 때문에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일 때
주춤거리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품에는 나오지않는 인터뷰인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아줌마들이 다... 집에서는 엄마들이쟎아요.
예전에는 퇴근시간이면 아주 달음박질을 쳐요.
아이들 저녁 해먹여야 하니까...
지금은 그래도 아이들이 제법 커서
퇴근할 때 뛰는 속도가 많이 느긋해졌지만
퇴근 때 되면 전화해서 밥솥 꼽아라, 퍼라, 먹었냐?
전화가 불이 나지요. 그런데 회사가 정리해고 명단을
아주 멋진 시기에 던졌쟎아요?
딱 방학하고 맞추었으니 그나마 그것도 대오를 유지하
는데 아줌마들에겐 큰거 였어요. 그런데 8월21일 안
에 대해서 받느냐 못받느냐 회의를 할 때,
안받으면 이 싸움이 일년이고 이년이고 끝까지 가야
되는데 모두 잘 할 수 있겠냐는
그런 시간 문제로 압박이 뜨억 들어노니
그냥 마음이 동요되는 거예요.
곧 방학도 끝나고 하니 아마 더했을 거예요.
그렇게 엉거주춤 했다가 결국 3년 걸렸쟎아요?
참 그렇더라구요.
피해갈 수 없는 게 있더라구요.
답답해도 버텨야 할 때가 있더라구요."

서론이 너무 길었지요?

언제 언제 상영을 했느냐, 그 장면이 나온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로 게시판이 잠시 의견이 분분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사랑방의 보고서가 사실관계
에서 뒤죽박죽이기는 한데, 우리가 조사를 거부했으니
그 뒤죽박죽의 조사내용에 대해서는 탓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꾸 석연챦은 느낌만 오지
아주 총체적으로 분석이 되질 않고 있습니다.
신기섭님의 분석내용도 4분의 3정도만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 이야기나 오늘 이야기들이
논리적 공백을 추적하는 내용이기 보다는
그냥 우리가 겪었던 일들 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드는 생각들입니다.
이병삼씨가 외압의 실체가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우리의 경험이나 관계 판단등입니다.
언제 상영했느냐도 저희들에겐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고
다른 분들의 분석에 저희가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전혀 다른 접근도 있습니다.

우리는 8월 11일 이전에는 큰 제목도 없이
주제별로 영상토론회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는 것을
여러번 말씀 드렸습니다. 각각의 행사나 토론회에
적절한 이름들이 붙게 되었고, 영상의 흐름이나 구성도
생필름에 가까운 가편집 본으로 길게 보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었고
압축하여 영상적흐름을 타기도 했고...
아무튼 영화형식으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99년 레이버미디어 국제대회에서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평조합원전략]이란 이름
이었고, 또 어떤 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였고
2001년 6월2일 국제노동사컨퍼런스에서는
[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였고
대개는 편안하게 제목없이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토론 보다는 영상보기로 가면서
제목을 요구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7월 초 쯤에는 토론과 영화보기
양측면을 수렴할 수 있는 구성에 신경을 쓰면서
제목을 두 개 부치게 되었지요.
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와 밥.꽃.양입니다.

6월2일 영상발제를 본 한국여성연구소에서
요청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저희가 주제를 어디로 맞출
것인가를 의논하던 중에 여성노동자 부분으로 집중해서
심도깊게 강의 형식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그래서 재편집을 해야한다고 얘기했지요.
작업을 하던 중에 회원 중심의 영상 강의에서
대상이 신입회원으로 확대되었고,
마지막에는 한국여성연구소 내부 발제와 영화보기와
토론으로 컨셉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일의 진행에서 소통문제도 있으면서 행사컨셉을 놓고
몇번의 굴곡도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작업이 진행되던 중에 8월11일
전국 대학생 여성주의 연대 한판이란 행사 속에
토론과 상영을 하게 되었고, 그때는 또 약간 시간이나
구성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여성주의 한판
내부행사였기에 8월25일 상영회처럼 외부로 공지가
나가지도 않았고, 그 영상토론회에 온 사람들도
2박3일 동안 그 일정을 진행하고 있던 사람들이
참석하게 되었고, 그 인원은 내부적으로 파악되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처음 밥.꽃.양이란 제목이 화면으로
나가게 된 셈입니다. 이 내용은 제가 사라지지않는 과거
란 제목의 글에서도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 영상토론회와는 달리
밥꽃양에서 비로소 식당여성노동자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구성에 배치되었습니다.

저희가 영상토론회를 한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이렇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속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일을 추진했던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상영이 나름대로 궁금한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면
말 못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세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8월11일 연세대 상영회는
저의 감각으로는 이번 일과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다만 왜 식당여성노동자들에게
먼저 시사회도 않고 그곳부터 상영을 하고 다녔냐는
질문에 한해서는 중요한 관계를 가지겠지요?
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대답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후에 계속 질문하신다면 그때 또 말씀드리지요.

대개 소규모 토론 형식으로 상영을 했으며
상영관 잡고 하는 완결되고 고정된 내용의
영화 상영 형식이 아니었다는 말씀을
간간이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게된 사람도 별로 많지 않으며
대개 누가누가 보러 왔으며 어떤 이야기들을 서로 했는가는
"스크린 옆"이라는 위치에 서있던 저희들로서는
거의 알 수 있는 상황에서만 이 영상보고서가
소통되었지요.

물론 회수의 문제나 본 사람의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저희가 그게 어떤 작품이던
하게 된다면 그 내용이 들어가리라 짐작되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말씀도 누가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목이 있던 없던 형식이 무엇이던
저희가 상영을 한다면 그 내용이 들어가리라
단정짓는 것에 대한 판단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수용하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장면을 빼고도 많이 했던 것도 사실
입니다.

그래서 봤던 안 봤던, 구체적으로 알던 모르던,
"과거"에 그렇게 느꼈던, 영화제 당시 그렇게 느꼈던
하여간 짐작과 인지가 가능할 수 있는 일이라는 가정에
대해서도 큰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랑방 보고서에 나오듯
김진영씨나 이병삼씨가
그 장면을 그렇게 신경을 써야하는
어떤 정황도 저로서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설령 그렇다고 우기더라도
두 분은 그 장면을 그렇게 지속적으로 신경을 쓸 만큼
그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그동안 저희들이 그 사람들을 알고 보고
간혹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입니다.
두 분은 나름대로 자신의 영역과 일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저 옆에서 흘러 다니는 이야기 정도를 통해서
그 장면을 인지하고 있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상태였지요.

"니가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가봤니?
어떻게 그렇게 잘알아?"
물으면 할말은 없지요.
그런데 때로는 굳이 마음에 들어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평소에 그 장면이 "정말 가만있지 않을.."정도로
그리고 영화제의 파행을 불러오는 것도 감수할 만큼
문제 제기해야 하는 어떤 아주 결정적인 요소로
그 두 분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두 분이 저희를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그 장면 때문에
경계심이나 적개심을 갖고 평소에
저희들을 대면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별로 그럴 이유도 없지요.
다만 이 사건이 확대되면서
그 두 분이 그 자리에서 그런 역할을 하게된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정황들이 있지요. 사람이란 본질적
으로 어느 순간 확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리저리 얽히고 꼬여있지만
상처도 받았고, 의아하기도 하지만
두 분에 대한 저희들의 판단은
지금도 영상을 하는 이병삼씨와 김진영씨일 뿐입니다.
저희와 싸우고 잘잘못을 따지고 결판을 내야하는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위선도 포석도 아닙니다.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해석은 그 두 분과
저희가 다를 수 있지만
그 두 분에 대한 저희들의 담담한 마음은 여전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8월11일 연세대 상영은 알려지지 않았고
8월25일 상영에 대한 공지와 여성프로그래머를 통해
비로소 [밥꽃양]이란 생소한 제목이 알려졌고
8월 20일자 회의 내용으로 게시판에 공지되어 있는
여성프로그래머 회의 결과에 나와있듯 편집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그 장면이 과거의 정황으로 인지되었다 하더라도
이번 영화제에서 그 장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그 긴 작품시간에 그 장면이 꼭 들어있다는 확신이 없고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 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막연히 작품의 흐름이나 주제의식에 대한 문제제기도 아니고
아주 구체적인 장면과 그 장면에 대한 해석이라는 거지요.
그 장면이 예전부터 걸렸고 끊임없이 신경을 긴장시키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영화제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는
밥꽃양이란 작품 속에 그 장면이 들어있다는 걸
확인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8월22일 처음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부분도
정확한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말로 의혹이 들지만 확인할 길이 없지요.
그래서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문제제기 말고도
또 다른 어떤 요소가 이 작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여기저기 흔적과
어긋나는 단말마의 진술들만 떠다니지
완결된 형태로 알 수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김진영씨와 서은주씨의 전화통화 내용이
번복되면서 사실에 대한 의문만 팽팽하게 남은
상태이지요. 유추는 가능하지만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입증될 수는 없는 상태이지만
의문의 퍼즐들은 여기저기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우리가 의혹만 제기한다고 말씀하시겠지요.
의혹을 제기하도록 애초에 원인제공은 누가 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보고 밝혀라고 윽박지르겠지요.
그래요. 우리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은 밝히겠습니다.

신기섭님께서 영화장면이 언제 유출되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지만
어떤 문제를 증명하는데는
중요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 문제가 너무도 의아합니다.
누구인지 찾아내서 따지고 싶은게 아니라
왜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현실에서 일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일을 덮고 돌리고 하는 과정들은
또 다른 파편들을 던지는데
그 모든 것은 유령처럼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고
상황은 안개처럼 그려지고
구체적으로 남는 것은
몇몇 인물과 그리고
과도하게 민감하고 유별난 라넷에게 던져집니다.

그렇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모두를 갉아먹었던 부당함들은
그저 그런 팩트로 기정사실화 되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찬찬히 생각할 겨를도 주지않고
작품에 대한 공격이 들어오고
또다시 애초의 문제와 본질이 같은
창작의 시선에 대한 폭압적인 규정을 강요합니다.
다만 형태를 달리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은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니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하는데는 우리의 시선이 전지전능하거나
객관적인 게 아니라는 말을 전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이 영상보고서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 자유로움을 공정하게 인정하고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가지는
공백을 메꾸면서
함께 이야기를 점검하고
사건을 마무리할 어떤 여백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인신공격에는 이제 담담해질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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