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까요?
울산상영회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단식때보다는 훨씬 얼굴들이 좋아지셔서 맘이 좋았습니다.
복식할 때 많이 어려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러고보니, 일년이라는 세월이 금새 지나가버렸네요.
저는 두 번째 시사회였습니다
한번은 2000년 여름에 노조식당 사무실에서
그리고 이번은 울산복지공단에서.
평행선을 만든 서은주입니다.
제가 아주머니들을 기억하듯이 여섯분 운영위원님들도
저를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먼저 이번 제안에 대해 답변하기 전에 10월 17일 제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조희숙 38여성회 대표님과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평행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자고 했지요.
울산시사회전에 작품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시사회 당일 미리 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의논해서 전해주겠다고 하셨는데
다음날 인터넷에 라넷팀이 만나주지 않아서
공개제안을 하신다고 쓰셔서 무척 놀랬습니다.
더구나 인터넷엔 한번도 들어와보지 못했다는 분이
답변전화 대신 게시판에 공개제안를 하셔서 너무나 놀래
다시 조희숙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지요.
저와의 통화에서는 의논해서
전화를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제안서를 쓰셨네요 했더니 대표님께서는
핸드폰 밧데리가 떨어졌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10월 23일 상영회를 마치고 임인애 선배와
정영자 여성부장님과의 통화에서 저희가 지금은
너무 힘드니 차후에 찾아 뵙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임인애 선배가 그 통화내용에 대해 게시판에서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
라넷팀의 임인애씨에게만 제안을 하셔서
제가 밥꽃양에 참여하게 된 과정을
차분히 설명드려야겠다고 맘 먹었습니다.
오늘에서야 그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99년 여름부터 2001년 단식농성까지를 평행선에 담았습니다.
원직복직 투쟁을 시작한 99년 여름,
그 여름을 시작으로
경비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에 계시는 모습,
회사측의 가압류와 고소고발,
그리고 노조앞 단식농성,
삭발투쟁, 알몸시위까지를 담았습니다.
전주영화제 상영때는 운영위원분들이 직접 오셔서
관객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2000년 여름에는 저희가 만든 작품을 들고
노조식당을 찾았습니다.
가장 먼저 만나 뵙고 작품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하자고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시사회 자리를 잊지 못합니다.
상영중에 한두명씩 집행부들이 들어왔습니다.
어느새 그들은 상영장 뒤를 거의 메웠습니다.
그들은 초대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는 제작팀과 식당아주머니들이 처음으로 같이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하자고 만든 자리였습니다.
아주머니들도 우리들도 마구마구 들어오는 집행부들을
제어하지 못한채 시사회를 가져야 했습니다.
우리는 참 할말이 많았지만 눈빛으로만 말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상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행부는 우리에게
우선 대화를 하자고 했습니다.
두 번의 시사회니 할말이 있으면 다 끝나고 하자라고
이야기하고 마지막 시사회를 했습니다.
저는 그 상영내내 가슴을 졸였습니다.
혹시 시사회를 못하게 하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걱정 끝에 상영시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상영 후 집행부와의 대화는 굳이 여기에 쓰지 않겠습니다.
바로 여섯분 운영위원님들과 함께 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는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평생 그 장면은 제 기억속에 남아 떠오를 것입니다.
요즘에는 더욱더 그 장면을 재현시키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어서 가슴이 아픕니다.
현자노조 집행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영화(평행선)가 상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자노조 집행부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이며 사실을 왜곡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를 당사자인
식당아주머니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저는 그저 집행부가 이 영화를 막기위한
이야기인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단식투쟁 당시 집행부는 현자노조 신문에
아래와 같은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2000년 1월 10일 현자노조 신문
노동조합 집행 책임자인 집행부에서도 이번 해고자 문제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특히
식당 조합원 5명이 단식에 들어간 후 전국의 여성 단체인 서울 영상집단 '희망'과
부산지역의 프리네트워크 등 여성의 인권차원과 남.녀불평등 차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대두되었다. 자칫 식당 조합원의 문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이들 여성 단체에서 식당 조합원들의 비디오를 생생하게 담아 놓았는데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가 남.녀 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영화상영 때마다 집행부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김없이 상영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로
당사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올해 식당아주머니들의 수련회때 정영자 여성부장님께서는
8대 집행부가 평행선에 대해 고소할 서류까지 꾸몄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신이 직접 보았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였으며 법까지 동원해
작품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식당노동자들의 투쟁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올해도 울산영화제 여성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또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한번도 직접 아주머니들께
그 연유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감독들은 이미 제작단체를 나왔고
팀은 사실상 해체되었으며
우리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언어로는 설명이
잘 안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현재까지도 평행선에 대한 저의 상태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힘이 듭니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싸우지 않고서는 폐인이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저와 밥꽃양이 맺게된 인연의 이유입니다.
이제는 밥꽃양 제작팀에 왜 제가 들어가게 됐는지
설명이 됐을거라고 봅니다.
다시 10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가겠습니다.
공개제안를 보고 조희숙 대표님과의 전화통화에서
저는 처음으로 평행선에 대한 이야기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당사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지
일년만에 처음으로 말입니다.
조희숙 대표님께서는 평행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조희숙 대표님은 그 영화가 미완성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식당전체의 의견이라며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식당전체가 그 영화는 미완성이기 때문에
세상에 나와서는 곤란하다고 말입니다.
정영자 여성부장님으로부터 8대 집행부가
고소장을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도 집행부와 같이 고려했냐고 여쭈었습니다.
조희숙 대표님은 그 일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씀하셔서
한편으론 식당분들이 직접 고소장을 쓰지는 않으셨구나
안도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안도해야 하는지 알수 없었지만
직접 썼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제가 평행선을 묻은 것은 단지 식당분들이
이 영화를 미완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99년 여름 사측과의
출퇴근 투쟁부터를 담았고 정리해고 이후 복직과정만을
담았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이 말씀하시는 의미의
미완성이 아니라 제가 저의 작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밥꽃양은 98년 36일간 뜨겁게 싸웠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스스로의 고민과 이야기를 애정영화로 폄하하는 것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38여성분들이 애정영화라고 비화시켜 말씀하신 그 장면에 대해
같은 여성으로써 또 같은 노동자로써의 그 무게를 함께 하실것이라고
너무도 당연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남처럼 그 장면을 바라보신다는 것이 참으로 슬픕니다.
평행선을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식당분들은 여전히 저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완성을 위해
밥꽃양을 만들었고 다시 아주머니들과 만나게 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