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지지 않는 과거 -
<font color="red">10시간 짜리 영상보고서를 만들던 우리는,
그 보고서 중의 일부인</font><font color="blue">『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밥.꽃.양』</font><font color="red">을 상영하기로 했던, 『제2회울산인권영화제』로부터 사전검열 요구를 받게 되었다. 2001년 9월 초였다.
98년 여름을 부여잡고 있던 우리는...
2001년 가을, 싸움을 기록하던 사람에서 싸움을 해야하는 자리로 <font color="blue">『순간이동』</font><font color="red"> 해버렸다.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가?
98년 여름인가. 2000년 겨울인가. 2001년 가을인가....,</font>
<font color="blue"><font size="4">제 3의 시선</font>
<font color="black">정리해고라는 공포 앞에 선 사람들이 노조운동의 잔해를 온통 뒤짚어 쓰고 지나가는 혼돈의 시간 속에 4년째 머물러 서 있었다.
이 영상보고서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서있는 자리는 항상 카메라 뒤, 편집기 앞, 간혹 스크린 옆이었다. 그 자리는 어느 순간 답답하기도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어서, 오히려 상처 깊숙히 기억 한가운데로 진입할 수 있는 '여백'같은 공간이었다.
한사람 한사람의 말과 표정, 움직임들을 백번도 넘어 돌려보고 또 돌려보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벌써 망각해버렸을 순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했고, 때론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왜 하필 사람들의 상처를, 그것도 손으로 만져 확인할 수도 없는 내면의 아픔을 목격하게 되었을까, 왜 하필 겨우 빠져나온 악몽의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비현실적이고 까마득한 느낌마저 들었다.
『영상보고서』로는 그들과 그녀들이 겪은 내장이 녹아내리는 속앓이의 10분의 1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절망감 때문에 두렵기도 했다. 꼭 해라고 누가 억지로 시킨 일도 아니었기에 언제든지 그만둘 수도 있었고, 벗어나고도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3의 시선이었고, 관찰자이고 기록자였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아픔이 아무리 크다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그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시선이었다.</font>
<font color="blue"><font size="4">2001년 가을</font>
<font color="black">그런데 2001년 9월초순. 우리는 덜컥 이상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화면 속에 존재하던 난해한 공간, 울산이라는 도시는 더 이상 우리가 편집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포박하는 구체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font>
<font color="black">우리는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버렸고, 제3의 시선으로서 우리의 자유로움은 회수 당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 싸움의 한복판으로 들어와 버렸다. 이번에는 화면 속에 있던 사람들이 관찰자가 되고, 우리가 그 관찰자들의 시선에 노출되어야 하는 순간적인 자리바꿈이 일어나 버렸다.</font>
<font color="black"> 우리는 더 이상 카메라 뒤로 스크린 옆으로 은근슬쩍 몸을 감출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벌써 마쳤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우리 손으로 상영을 거부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만 3년 넘어, 우리를 짓눌러오던 정체 모를 중압감의 일부가 현실로 드러났다.</font>
<font color="blue"><font size="4">2001년 여름</font>
<font color="black">울산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가 만든 영화를 상영하고 싶다고 했다. 언제나 상영의 시작은 그런 전화로 시작된다. 상영 장소가 어디인가, 행사 내용은 무엇인가, 상영만 하는 것인가, 토론은 하는가, 감독과의 대화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왜 상영하려 하는가, 상영료는 책정되는 행사인가, 상영까지의 진행은 매끄러울 수 있는가.... </font>
<font color="black">몇 번의 통화를 통하여 이야기가 오고갔고 상영할 작품도 결정을 했다. 그 동안 간간이 가졌던 영상 토론회나 영상 발제, 영상 강의, 상영 중에서 주 텍스트가 되는 화면을 재생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애를 태웠던 적이 많아, 우선 그것부터 점검하려 했으나, 영화제라는 형식이어서 그 문제는 일단 넘어갔다.</font>
<font color="black">그 다음 점검하고 싶은 문제가 있었다.
작품 내용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일을 진행하다, 이유 없이 중단해버려 황망했던 경험.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서은주 감독이 만든 평행선에 대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정신적 테러. 선험적인 판단과 운동이라는 대의 명분을 근거로 악의적 비난이나 편견을 준비하고 영상텍스트를 보는 경우, 가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font>
<font color="black">서로서로 귀 기울일 수 없는 상태, 소통 불능의 공간, 이럴 때 이미 이 영상보고서가 외치고 있는 소리는 소음이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한 상흔은 오래지속된다]와 2001년 여름 막 제목을 부친[밥.꽃.양]에 대해서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다.</font>
<font color="black">그것은 결국, 과거의 소리, 기억의 소리들을 어떻게 재생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상영 섭외를 한 곳은 "인권"영화제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곳이었다.</font>
<font color="black">물론 "인권영화제"와는 다른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였지만. 그렇지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다 어느 순간 불쑥 말문을 틀어막을 것 같은 그런 불길한 조짐은 여기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어떤 상영회 보다 편안한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font>
<font color="black">주류시스템이 수용할 수 없는 배제되고 고립되고 격앙된 소리들이 자유롭게 발언되는 곳으로 "인권"영화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그속에서 들끓는 울퉁불퉁한 외침들이 표현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왔고, 그런 틀로서 "인권"영화제를 사유하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섭외를 한 사람은 그 영화제의 여성부문 프로그래머였다. 공식적인 채널을 통한 너무나 완벽한 점검이었고, 문제가 될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font>
<font color="black">2001년 7월 말, 그렇게 우리는 "제2회울산인권영화제" 상영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남은 문제는 상영시간을 고려한 재편집, 토론 감독과의 대화 등등 구체적인 논의가 남았지만, 그것은 적절한 시간이 되어 서로 일정을 맞추고 작업을 하면 될 일이었다.</font>
<font color="black">모든 상영과 토론회마다 컨셉에 맞추어 주제에 변화를 주며, 각각의 영상보고서들을 재구성하여 편집하는 일은 이미 이골이 나있으므로.. </font>
<font color="blue"><font size="4">영상보고서</font>
<font color="black">우리는 그동안 다양한 버전의 영상보고서들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생존과 존엄이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의식과 무의식, 심리적 변화들을 따라가며, 노조운동내의 성적소수자로서 당하는 고통, 노조운동의 내면화된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식당아줌마로 불리우는 현대자동차 노조식당 여성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싸움과 노조와 회사를 상대로 한 복직투쟁과정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통하여 한국노동운동의 또다른 모습을 추적하고자 했다.</font>
<font color="black">그러나 사건의 흐름이나 테마를 분석하고 해석하기보다는, 그 속에 들어있는 미세한 떨림이나 마음의 흔들림,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최대한 표현하고 싶었고, 우리의 영상보고서를 보는 누구나 우선 그것부터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font>
<font color="black">설령 분석이나 해석을 원한다면 더더욱, 왜 그녀들은 울부짖는가? 왜 그들은 어두운 가운데서 웅얼거리며 타들어 가는 담뱃불만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왜 저토록 아줌마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돌아다니는가? 그러다 말을 부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먼데를 쳐다보는가?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기를 바랬다. 그런 내면을 주목하기를 바랬다.</font>
<font color="black">그 다음, 먼데를 담담하게 바라보기만 하던 아줌마들이 카메라를 끄고 돌아서면, 그제서야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토해내더라는 촬영에서 빠진 이야기를 할 참이었으며, 그 이유를 같이 탐색해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한숨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막아버린 지도부들에게 왜 그랬냐고 한번 같이 물어보자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font>
<font color="black">스크린 옆에 서있다면 최소한 이 정도 말은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것은 영화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객관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니어도 괜챦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로 영상보고서라는 이름을 부쳤는지도 모르겠다.
적절한 상영시간, 잘 짜여진 영화적 얼개 속에 들어갈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결들, 카메라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 표정에는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일렁임, 소리 보다 더 깊은 외침으로 다가오던 침묵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정되고 완결된 한편의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포기해야 했다.
지독히도 주관적인 시선이라는 것을 역설하기 위하여 다큐멘터리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저 퍼즐 같은 수십개의 보고서 조각들을 만들어놓고쌓아가며 이리저리 흩어가며 구성하고 재구성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소통했지만 소리없이 강요했다. 진심으로 기꺼이 선입견 없이, 경직되지 않고, 화면 속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주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만히 느끼면서 그 단말마의 이면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종의 안타까움이었는지 모른다. 섣불리 그 아픔이나 상처나 고통이나, 짧은 순간의 유쾌함 등등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화면이 움직이고 말하는 그 자체에 집중하자.
그런 조건을 만들 수 있을 때만 상영한다.
그래서 화면 속에 일어나는 결이 다른 소리, 복잡한 표정들이 제대로 재생될 수 있는 물리적 조건 - 음질이나 화질은 단지 기술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98여름 그들의 침묵, 2000년 겨울 그녀들의 울음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달려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그 독특한 화법을 실행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조건이었다.</font>
<font color="blue"><font size="4">재생</font>
<font color="black">문제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기꺼이 상영할 의지가 없다면, 우리가 제시하는 상영 조건을 마련할 수 없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물론 몇 차례의 소통 불능 때문에 난감했던 경험들이 우리의 결심에 각을 세우도록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상영 결정 과정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잘난 체 하며, 문서로 계약조건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상영 원칙 때문에 섭외를 한 사람이 기분 상하지 않을 한도 내에서, 조심스레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짐하고 판단하면서 어려운 결정을 한다. 일단 결정이 나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에겐 고된 노동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아주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소리가 울린다. 화면이 어둡다. 그래서 미리 그 장소를 점검해야 한다. 모자라는 장비가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스피커 달리고 소리만 나면 그만이지 무어 그리 까다로운가,
내용이 중요하다, 다 알아먹는다. 화면은 얼추 나오면 되지, 더 이상은 과욕이다.. '
논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이상 우리가 뛰어야 한다. 그리고 불완전한 시스템으로 상영이 되는 그 시간 동안은 피가 마른다.
실제로 조합원 영상 교육 중에 액졍 화면이 꺼져버린 적도 있다. 다행히 그 장소에 33인치 멀티 비젼이 있어 대체하긴 했지만, 화면을 타고 흐르던 호홉은 완전히 절단 났다.
서로서로 빠듯한 재정으로 제대로 된 화면을 보기 위해서는 품이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게 귀챦은 거다. 그런데는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완전하게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호홉은 눈에 보이는 성과나 의미 내용보다는 덜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의 문제도 몸을 아끼는 문제도 아니지만, 납득할 수 없는 그 일을 실제로 감당 할려면 무엇보다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단지 빛과 어둠이 명멸할 뿐이지만 우리의 감각 속에 그 신호가 살아 파고드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런 대화법이 얼마나 절실한지, 그런데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상영조건이 그렇게 중요한지, 사고가 나기 전에는 절대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냥 TV 전원 버튼 눌리듯, 대충 나온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니까 마인드가 탄탄하게 공유 되어있지 않으면, 사고가 났을 때, 혹은 사고가 예상될 때,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상영은 차라리 안 하느니 못했을 일이 되어버린다. 서로서로 진이 다 빠진다. 지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그렇지만 호소할 곳도 없다. 공감을 받을 수도 없고, 대책도 없다.
삭제되었던 소리들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복원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font>
<font color="blue"><font size="4">외압. 검열. 그리고 어떤 장면...</font>
<font color="black">2001년 9월 1일인가 2일인가, 저녁 때 담당 프로그래머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행위에서 영화를 보자고 할겁니다."
"왜죠?"
"한 장면이 문제가 된답니다"
문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상영에 대한 원칙을 세웠고, 그 원칙대로 따지고 따지면서 일을 했는데,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또 일어났다. 하드웨어 부분이 아니었다. 한 장면을 검열하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약간은 불길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무리 그곳이 울산이라 할지라도. "인권"영화제였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밀면서 절차상의 문제로 세련되게 위장하여 '사전시사'를 요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급했는지 무감각했는지, 영화제가 넘어서는 안될 선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도 없었는지, 구체적인 장면을 들어 그 장면이 문제가 된다면서 그 장면을 보고 상영여부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이유도 중구남방이었다. 편집이 의도적이다. 그 사람의 인권 침해요소가 있다... 그 순간부터 시작된 디테일한 사건들을 일일이 여기서 열거하지는 않겠다. 누가 그런 문제로 보자고 하는가. 물었더니 당사자라 했다가 노조라 했다가 메인 프로그래머라 하는 등, 혼비백산 말들이 튀어나왔다.
울산지역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정도 검열은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했다 한다.
그 순간부터 "표현의 자유 실현"을 모토로 내건 울산인권영화제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우리들의 숨막히는 싸움은 시작되었다.
모든 일을 멈추고 오직 이 싸움에만 매달린 채, 2달이 지났지만, 진보정치 이지안 기자의 말대로 원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7일 라넷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울산영화제 상영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히 면서 불거진 이 사태는 지금까지 1백여 건이 넘는 성명서와 관련 글이 발표되는 등 뜨거운 논쟁을 거치며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됐다. "
(민주노총기관지 진보정치 64호 / "[초점-울산인권영화제 사태,
어떻게 돼가나]해결책 못 찾고 장기화될 듯"중에서)</font>
<font color="blue"><font size="4">사라지지 않는 과거</font>
<font color="black">원점에 서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싸움만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지지와 반대라는 구획이 뚜렷한 자리에 선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논란의 소용돌이에서 끝없는 싸움을 치루어내야 하는 당사자가 되어버렸다.</font>
<font color="black">화면에 나왔던 사람들도 그랬을까, 조금씩 조금씩 감은 왔지만 되도록 참고 참다 어느 날 갑자기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또 갑자기 싸움이 끝나버렸을 것이다. 우리가 죽자 사자 이 싸움에 모든 걸 걸게된 이유는 그런 사실을-어느 날 갑자기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명료하게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순간 끝이 나버리고,그 절망감과 허탈함이 보이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는 그런 사실을 잘 안다는 것이다.</font>
<font color="black">실패한 상흔의 집요함을 이제는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게된 것이다. 상처를 불러내다 상처의 덫에 갇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font>
<font color="black">문제의 장면. 98년 여름. 8월 21일 밤.
식당여성노동자가 마이크를 빼앗기던 상황이 2001년 가을에 다시 재현되고 있다. 단지 그것을 기록했을 뿐인 우리에게, 98년 여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록자가 아니라 그렇게 당사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여름밤과 다른 게 있다면 아직 우리는 마이크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font>
<font color="black">반복해서 일어나던 습관처럼 익숙해져버린 일도, 가끔은 뒤집어 진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font>
<font color="blue"><font size="4">1998년 여름</font>
<font color="black">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98년 여름의 촬영 원본을 되돌려 보지 않아도 된다.
별로 익숙하지도 않은 인터넷이란 공간이 우리가 사력을 다해 싸움을 하는 장소가 되어버렸고, 화면의 질감에 목숨을 걸던 우리가 압축한 영상파일을 올리게 되었다.
98여름은 그곳에 있다.
영상이 전송되는 회수만큼 아줌마의 마이크는 여러 수 백 번도 넘어 빼앗기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묻는다. 왜 그랬냐고. 그 자리 그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지금 그 사람은 아직도 그 곳에 있는지...
아니면 다른 자리에서 8월 21일의 밤,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다만 그도 지금 우리들처럼 98년 여름 그 사람에게 왜 그랬냐고 물을 수 있는 자리에 서면 될 일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 제발 그 숨막히는 시간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