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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울산인권영화제의 <밥.꽃.양> 사전 검열 논란

임세환 기자 seedphoto@e-uni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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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잔치의 시작

지난 9월 7일, 98년 현대 자동차 노조 파업을 다룬 다큐 영화 밥·꽃·양(임인애 감독)의 제작자인 라넷(Labor Reporters' network)은 제 2회 울산 인권 영화제(이후 '울산 영화제'로 명칭 변경)에서의 밥·꽃·양 상영을 거부했다. 이유는 행사를 처음부터 준비한 영화제 집행위 측에서 "영화 상영을 결정하기 전에 문제가 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봐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었다.

"어떠한 사전 겸열도 거부한다"는 라넷 측의 입장 발표는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인권', 그리고 '인권 단체'에 대한 진보 진영의 폭 넓은 자기 반성으로 이어져야 할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정작 입을 열어야 할 당사자들은 논란이 지속될수록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인권 운동의 위기를 의식하기 시작한 진보 진영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아직도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이 현재 진행형이다. 풀리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의문이다.

문제가 될 부분, 그리고 검열

논란이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라넷은 지난 11월 3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영화 시사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영화'의 실체는 밝혀졌다. 다큐 영화의 생생한 현장 증언을 따라 98년 울산을 돌아보자.

98년 울산 현대 자동차 공장. 36일간의 파업 끝에서 남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저지하기 위해, 현대 자동차 노조는 144명의 식당 여성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기로 회사측과 타협했다.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또 다른 정리해고. 그리고 그 희생자는 파견 노동자인 동시에 여성이었다. 영화는 남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난 이후 계속 투쟁의 현장에 남게 된 여성 노동자들의 자취를 밟고 있었다. 임인애 감독은 노동자 파업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성 중심의 파시즘을 생생히 기록했다.

2001년 울산 인권 영화제가 준비되면서 라넷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겠다고 하자 영화제의 총괄 프로그래머였던 김진영 씨는 영화 상영의 문제가 될 부분으로 이유를 제시했다. 몇 가지 이유 중에서 정말 중요한 논란의 이유가 될 것은 영화가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것 한 가지였다. '노조의 무책임한 여성 노동자 정리해고 방침에 반대하는 노조 식당 여성 노동자의 마이크를 뺏어드는 남성 노동자의 장면'이 노·노갈등의 오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울산 인권 영화제가 최초에 어긋나기 시작한 부분이었다. 왜, 그 장면이 문제가 되는가? 그 장면이 문제라고 처음에 제기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나 이런 중요한 질문에 대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채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울산 영화제의 김창원 집행위원장은 김진영 씨의 문제제기가 "우리 안의 자기 검열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진영 씨의 말을 통해서 부활한 것은 98년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권력 행사였다. "사전에 봐야 한다"는 말은 98년에 가해자였던 남성 노동자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사전 검열이다.

말을 하는 사람들 vs 실종된 인권

물론 논란이 지속되면서 문제제기의 폭은 확대됐고, 당사자들이 답해야 할 것, 진보 진영이 알아야 할 것은 더욱 많아졌다. 게다가 잘잘못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사전 검열을 요구했던 집행위원회의 답변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혼란스럽게 한다. 김진영 씨의 경우에도 '자신이 최초의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 자기 입장을 번복하면서 이 문제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논란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수렁은 더욱 더 짙어진다. 계속되는 말잔치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내몰린 진짜 이유'는, 그리고 '라넷이 상영되기에 앞서 문제가 됐어야 하는 이유'는 묻혀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 감독, 여성 운동 단체, 그리고 문제제기의 대상인 인권 운동 단체와 현대 자동차 노조 사이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소수자는 식당 노동자이며 영화 제작자인 여성이다. 그리고 소수자를 억압하는 이들은 거대하고 관료화된 노조와 이에 동조하거나 혹은 문제의 본질을 이야기하지 않는 진보를 표방한 인권단체이다.

지난 8일(목) 인권 운동 사랑방은 이 문제에 대한 자체 조사를 통해 '밥·꽃·양 사전 검열에 관한 인권 운동 사랑방'의 견해를 발표했다. 그러나 인권 운동 사랑방의 견해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려는 모습이 다분했다. 인권 운동 사랑방은 이 문제를 '자기 검열의 문제와 영화제 준비 절차상의 불성실의 문제'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확인할 수 없는 '노조의 검열 외압 혐의'는 의혹으로 남겨뒀다. 하지만 노조의 검열 외압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98년의 망령이 2001년의 의혹을 부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는 한, 진보 진영의 논란은 스스로의 책임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문제 해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해결돼야 할 '인권의 문제'는 소외되고 있다.
발행: 01/11/13 등록: 2001/11/18 read(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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