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포럼]울산영화제, 그리고 연대…
- 박숙경<울산참여연대 기획실장>
울산영화제 사태가 두 달을 넘어서고 있다.
“‘사전시사’ 요구는 절차상의 문제였지 ‘사전검열’이 아니다”는 주장과 “외부의 문제제기로 비롯된 ‘사전시사’요구는 명백한 ‘사전검열’이었다”는 주장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특정장면’의 문제에서 ‘상영료문제’로, ‘프라이버시문제’에서 제작팀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저작권문제’까지 울산영화제측이 밝힌 ‘사전시사’의 근거는 시차를 두고 여러차례 바뀌어 왔다.
문제제기의 시차를 굳이 문제삼지 않더라도 ‘프라이버시’ 문제는 당사자와 당사자가 속해있는 현대자동차 식당노조에 의해서 사실무근임이 밝혀졌고 ‘저작권문제’는 영화제측이 집행위원장의 전화통화상의 실수로 밝힘에 따라 이제 울산영화제의 ‘사전시사’ 근거는 노동운동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울산지역에서 ‘노노갈등’을 초래할 소지가 있는 영화를 상영할 수 있었느냐는 문제로 집중된다.
그런데 10월 23일(화) 울산 근로자복지회관에서 상영된 ‘밥, 꽃, 양’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영화가 인권영화제에서 문제가 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화를 통해 표출된 감독의 시각과 관객의 시각은 분명히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보다 전면적이고 자유롭게 토론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울산영화제 집행위원회는 관객의 몫으로 돌려야 할 논란의 판단을 혼자서 독점하려함으로써 인권영화제의 취지를 곡해하였고 사전검열을 하려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곡해’로 울산영화제는 하마터면 지역의 특성 때문에 ‘논란’도 때로는 선택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괴기스런 인권영화제로 변질될 뻔했다.
울산영화제 집행위원회는 ‘밥, 꽃, 양’ 제작팀 라넷의 과민반응과 담당 프로그래머였던 ‘평등세상을 여는 울산여성들’의 절차를 무시한 행동 때문에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사전검열 논란으로 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울산영화제측의 주장은 영화제 홈페이지에 공개되어있던 상영작 확정소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이야기다.
울산영화제측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작품의 상영여부는 9월 7일 집행위원회에서 확정되기로 하였다지만 ‘옥천전투’, ‘1991년 1학년’, ‘애국자게임’, ‘들불의 노래’ 등의 작품은 9월 7일 집행위원회 이전에 상영확정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섭외담당자의 전화 한 통으로 말이다.
이것은 섭외담당자에게 작품섭외 및 상영결정의 전권이 맡겨졌다는 확실한 근거가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영화제측은 유독 ‘밥, 꽃, 양’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기준, 아니 판이하게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그래서 ‘밥, 꽃, 양’ 담당프로그래머의 작품섭외 절차는 ‘무효’이며(집행위원회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위해서 ‘사전시사’ 요구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는 울산영화제측이 하나의 영화제에서 작품에 따라 차별적인 결정기준을 적용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제측이 왜 그러한 차별적 기준을 적용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밥, 꽃, 양’ 상영결정이 언제 되었느냐를 규명하는 것보다 훨씬 논리적인 해결방법이 아닐까? 그러나 울산영화제측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은 채 갑자기 게시판을 폐쇄하면서 의사소통의 장을 스스로 거부하였고 비공개 문건까지 돌리면서 공개토론회를 제안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여 자신의 주장에 심각한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혹자는 울산영화제 사태를 운동진영내의 연대와 분열의 문제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대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조건에서 다양한 생각과 목적을 갖고 활동하는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기 위해서는 연대하고자 하는 주체들이 자기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것이 불분명할 때 연대하려 한 선한 의도는 맹목이나 획일주의로 변질되거나 연대주체들간의 감정적인 대립으로 치닫기도 한다.
연대와 분열의 경계를 목청 높여 외치기 이전에 우리는 훨씬 더 자신의 소리, 자기 단체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찾아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제는 하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인권에 대한 추상적 단견이 소위 연대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성과 결합되면서 얼마나 심각한 굴절을 겪을 수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울산영화제사태가 결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 인권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인권에 대한 전면적이고 진지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기성찰의 시간을 통해 지역에서 인권과 그 인권을 모토로 내걸고 행해지는 인권영화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