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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꽃 양>과 그 사건을 보는 한 독법
문화평론가
1. 말해야 하는 의무 오늘은 23일, <밥 꽃 양>의 울산 상영이 있었던 날이다. 이처럼 글을 쓰면서 시간에 신경이 쓰인 적이 있었던가. 아래의 글들을 쓰면서 몇 번이고 검열영화제 홈페이지(larnet.jinbo.net)의 게시판으로 달음질 쳤는지 모른다. 늦은 시간, '울산상영회 잘 마쳤습니다'라는 글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안도를 하게 된다. 이런 시간이 내가 <밥 꽃 양>을 보았던 그 시간, 아니 각각의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읽는 대다수 -아직 <밥 꽃 양>을 보지 못한 이들- 에게 미안한 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진심은 '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은 노혜경 시인의 말처럼 '말해야 하는 인간의 의무'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선 전제를 하고픈 것이 있는데, 영화 <밥 꽃 양> 자체와 <밥 꽃 양>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은 차별적이라는 점이다.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이 이미 영화로서 <밥 꽃 양>의 함의를 훨씬 넘어서는 논쟁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어쩌면 영화로서 <밥 꽃 양>을 중심에 놓았을 때 놓치게 되는 일종의 권력관계에 신경을 덜 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의 불을 당긴 화인으로서 영화 그 자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분석'하려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영화가 아닌데요!"라고 말했다는 임인애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의 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사실의 '한' 얼개로서 이를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엄밀히 영화가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논란의 지류들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얼키고 설켜 있는 이 논란의 장에 입문을 하려고 하는 이들을 위한 징검다리 혹은 하나의 길이었으면 한다. 나아가 많은 이들이 직접 말하면서 이 논란에서의 장에서 '시민권'을 얻었으면 한다. 2. 지도 그리기 1: '사전검열' VS '자기검열' 우선 <밥 꽃 양> 사건이 불거진
원인을 살피기 위해서는 간단한 셈에서 시작해야 한다. 9월 2일, 9월 6일, 9월 7일이 그렇다. 9월 2일은
<밥 꽃 양>제작팀인 라넷에서 '외부의 문제제기에 의해 먼저 보면 안되겠냐'는 말을 들은 시점이다.
그리고 9월 6일은 울산영화제에서 작품을 철수하겠다는 라넷의 성명서가 발표된 날이다. 그리고 9월 7일은
영화제집행위에서 말하는 영화 상영작을 결정하는 날로서 제2차 집행위 회의가 열린 날이다. 왜 이 1주일의 시간이
중요할까. 그것은 초기 논란의 핵심이 되었던, '외부의 문제제기가 있어서'라는 말이 '집행위 1인이'로 다시
말해서 '외부의 검열'이 '자기 검열'로 돌아서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제 집행위는 9월 10일 발표된 사건
개요서를 통해서 문제제기의 부분을 "8월 22일 집행위 회의 후 후보작에 대한 상영작 검토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밥 꽃 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제기"가 있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외부의 문제제기가
있어'라는 표현이 '문제제기의 가능성'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물론 말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와전이 있을 수도 있고
맥락을 빼놓을 수도 있다. 또한 지금과 같이 집행위를 구성하고 있던 핵심적인 인사들이 활동을 접은 상황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뒤에 집행위에서 밝힌 '자기검열'이라는 말 자체를 진실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는 '외부의 문제제기에 의한 사전 검열'임에 틀림없다고 본다. 그것이 설사 자기검열이라고 하더라도 타 상영작에는 행하지 않은 절차를 <밥 꽃 양>에 강제하게된 것은 분명 진공상태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외부'의 힘이 유형적인 것이었던 무형적인 것이었던 중요한 것은 하나의 '예외'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존재했으며, 바로 그 점이 이번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을 만들어낸 원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3. 지도 그리기 2: <밥 꽃 양> 논란을 가로지르는 몇 가지 것들 그렇다면, 영화제 집행위가 그런 예외를 두게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검열 영화제 게시판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몇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존재다. 울산에 현지 취재를 갔을 때 놀랐던 대답 중에 하나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울산 지역의 대다수 시민단체는 그 정도가 문제지 현대자동차 노조로부터 자유로운 단체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영화제 집행위를 탈퇴한 단체들이 그나마 자유로운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그렇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서 한 10배쯤 그 심각성을 높여야지 울산의 '현지'에
대한 정확한 느낌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밥 꽃 양>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들인가. 검열 영화제 홈페이지에 올라온 영상 클립들을 계속 살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에서는 98년도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부터 2000년도 1월 노조식당 아주머니들의 단식 투쟁을 마감하는 시점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4분하고 있는 정파들의 핵심간부들이 쏟아낸 말들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는 점이다. 98년 당시 7대 위원장에서부터, 99년의 8대, 2000년의 9대까지 적어도 3대에 걸친 노동조합 집행부의 행적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히 노조식당 아주머니의 투쟁을, 그리고 그 시선에서 당시의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임인애 감독이 말했듯이 "당시 사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일 따름이다." 인터뷰를 해본 결과 문제가 된 장면은 '모모씨가 한 발언이 영화의 전후 관계상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혐의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 영화를 보면서 '문제의 장면'을 보았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꼭 그렇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속내야 어떻든 간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이 98년도 정리해고 투쟁에서 제한적이나마 정리해고를 수용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이 같은 조건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던 간에 '외부로부터의 문제제기' 당사자로 지적되는 것은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덧붙여 반드시 지적이 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앞서 지나가면서 언급한 것이지만,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문제의식 수준에서 연대의 방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적 구성의 측면에서 결합되어 있다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방식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진보진영 자체를
갉아먹는 한 원인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방식에서 파생된 것이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에 대한 '오해'와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사회> 10월호의 '오보'다. 먼저 인권운동사랑방에 관해서는 울산영화제와의
관계에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영화제라는 형식을 최초로 공식화시킨 것은
물론, <레드 헌터>상영과 관련된 문제로 인하여 서준식 당시 대표가 형사상의 고발 조치까지 당하는
과정을 겪어왔다. 그 후 각 지역에서 인권영화제 형식의 문화활동이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확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래 울산영화제의 명칭은 울산인권영화제였다. 그것이 인권운동사랑방의 항의에 의해 울산영화제로 변경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9월 11일 '울산영화제 '밥 꽃 양' 사태에 대한 인권운동사랑방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냈다. 바로 여기까지가 울산영화제와 인권운동사랑방이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은 전부이다.
다음은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사회> 10월호에 차미경 편집위원이 쓴 최정희 노조식당 운영위원장 인터뷰에서 나온 '오보'다.
참여연대에서 해명하고 있듯이 이번 인터뷰는 <밥 꽃 양>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최정희
위원장 개인에 대한 인터뷰의 형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 기사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인터뷰 말미에 차미경
편집위원이 나름대로 <밥 꽃 양>사태를 해설한 짤막한 내용이다. 해당 부분에서 차미경 편집위원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노조식당의 관계를 '서운한 것은 사실이지만 함께 가야될 대상'이라는 해석을 내리면서,
이번에 불거진 문제를 '외부의 개입'으로 언급했다. 다시 말해서 별 이상이 없는 관계인데도 쓸데없는 논란을
만들어와 불씨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난 달 15일 만났던 최정희 운영위원장은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수많은
전화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분명 자신의 뜻을 잘못 이해한 '오보'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했다. 문제는 차미경 편집위원이 그런 해석을 하게된 배경이다. 울산참여연대의 관계자는 "당시에 해당
편집위원이 어떤 연락도 한 바가 없다."고 전했다. 물론 참여연대가 반드시 울산참여연대에 방문을 해야된다는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울산참여연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영화제 집행위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던 몇
안 되는 단체 중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부분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밥 꽃 양>문제를
'소수자'의 문제설정으로 보는 것에 유보적이다. 위에서 언급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도 그렇고 인권운동사랑방도
그렇고 참여연대도 모두다 규모나 영향력의 측면에서 '기득권'이라고 부를 소지는 다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 특히, 노조식당을 중심에 놓고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수자'라는
문제설정을 중심에 놓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한 때 검열영화제 게시판에
'월장' 문제가 불쑥 나오거나, '100인 위원회' 얘기가 간간이 썩여 있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이 <밥 꽃 양>을 둘러싼 논쟁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리 적절한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노조식당의 경우에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비교했을 때 '소수자'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지, 기타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교하였을 때는 전혀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 이 점은 최종희 위원장의 분명한 대답에서 얻어진 결론이다. '어떻게 이런 힘든 투쟁을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거대 노조'의 조합원이었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해줬다. 물론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분명히 한 축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이슈화되는 사건과 이슈화되지 않는 사건이 지니는 차별적인 영향력의 관계다. 우리가 '소수자'의 문제설정을 그렇게 갖다댈 수 있는 것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노조식당 사이에서 찾아질 수 있는 분명한 경계선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식당을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본다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가졌던 관계가 쉽게 역전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수자'로서 노조식당을 등치시키는 것은, 세밀하게 작동중인 다양한 관계망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기성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경직성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 4대 의결기구라는 절차상의 형식- 문제는 소수자의 문제설정에서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설정은 <밥 꽃 양>을 둘러싼 논란과는 한 차원 떨어진 문제로 보인다. 그 이유는 문제 제기가 '그 절차' 자체로 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5. 문제는 덮개를 여는 것이다 10월 23일의 울산 상영회를 기점으로 <밥 꽃 양> 논란은 분명 한 장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영화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일이 줄어 들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살펴본 문제들 마저 즉각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밥 꽃 양>은 우리가 잊고 있는 아니, 오히려 잊고자 했던 기억들을 우리 앞에 던져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의 배경은 진보진영의 '은폐성'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남인가'라는 식의 무원칙적인 '패거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음지의 것들을 양지로 꺼내놓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의 인적인 밀월관계, 그리고 '딴 동네 얘기에 참견하지 마라'라는 식의 배제의 원칙들이 상세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공개적인 논쟁의 장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밥 꽃 양>이라는 기록이 담고 있는 '사실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복원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기억들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공유되면서 하나의 각인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가 벌써부터 '이론의 마개'로 채워지는 것을 무엇보다 우려된다. 임인애 감독이 바란 대로 <밥 꽃 양>이 좀 더 많은 장에서 보여지고 논의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밖의 것들, 수많은 제2의 제3의 노조식당들이 기억 저편에서 건져지고 우리 눈앞에 던져지기를 기대한다.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밥 꽃 양>은 진행 중이다.(00.10.24) ※ 이 글은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문화연대』특집기사 차 부산과 울산을 방문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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