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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제목없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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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150%; margin-top:0; margin-right:52%; margin-bottom:0;"><FONT size="2" color="red">●문화연대 11월호 특집┃<밥.꽃.양> 말하게 하라 4 <BR></FONT></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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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line-height:150%; margin-top:0; margin-right:52%; margin-bottom:0;"><FONT size="2"> </FONT></p>
<p style="line-height:150%; margin-top:0; margin-right:52%; margin-bottom:0;"><font color="teal" size="2"><b>마이크,
봉합이냐 분할이냐</b></font></p>
<p style="line-height:150%; margin-top:0; margin-right:52%; margin-bottom:0;"><font color="teal" size="2"><b>표현과
소통의 자유를 허하라</b></font><FONT color=#ffffff size=2><B> 11월호 특집
┃<밥.꽃.양> 말하게 하라 4┃<밥.꽃.양> </B></FONT><FONT size=2><BR><밥.꽃.양>을 본 한 관객은 이
장면에 대해 ‘검열영화제’ 게시판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BR><BR>“왜 울산에서 상영하는 게 문제가 되는지 나와 있네요. 문제의 마이크 뺐는
장면이 나오네요. 영화제 집행위 내에서 문제가 되었다고 나온 그 장면이네요. 그런데 사회자도 마이크 뺐는데 동참하는군요. 아니 아예 아주머니를
밀어내는군요. 단상 아래에서도 마이크 주라는 사람과 주지 말라는 사람. 남성과 여성의 대립? 아무튼 남성 중 누군가가 나와서 발언을 했다면
저렇게 하지는 않았겠지요. 그 장면 하나로도 식당아주머니들이 그 노동조합 내부에서 어떤 위치였는지가 보이는군요. 마이크는 언제나 지도부가 잡는
것이었는데 가끔 선별된 개인들이나 잡아보는 것이었는데... 마이크를 잡은 식당아주머니와 마이크를 뺐는 노동운동가.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가서
발언하는 것을 '분열'이라고 표현하는 노동운동! 지금의 노동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자기표현을 막아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인가요?”
<BR><BR>우리들은 준비 다 됐습니다 <BR>지도부 준비 덜 됐습니까 <BR><BR>이 장면은 98년 8월 21일 저녁 협상보고대회에서
김광식 노조 위원장이 정부중재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이후 조합원들이 분노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 식당 여성 노동자가 단상으로 올라와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장 제지당한다. 이상욱 민투위 의장과 사회자로부터. “분열”을 원치 않는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이미 분할선은
그어지고 있지 않았는가. <밥.꽃.양>이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듯이, 평조합원들의 언어와 지도부의 언어는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조합원의 발언 “우리들은 준비 다 됐습니다. 지도부 준비 덜 됐습니까?”는 그 분할선의 악마(?)처럼 들린다. <BR>한 사수대는
투쟁현장에서 지도부에 의혹을 품으며 이렇게 말한다. “위원장이 계속 얘기했던 ‘난 이 자리에서 간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떠한
유형으로 간다는 부분은 아직까지도 확인할 수 없죠. 어떤 유형으로 갈거냐, 조합원들과 극렬하게 싸우면서 자본이 멈추는 걸 보여주며 갈건지,
아니면 비무장 비폭력 연좌시위로 갈건지, 그런 문제에 대해선 아직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투쟁선언을 하면서도 싸우기를 정지한 지도부.
평조합원들의 욕구 및 정념과는 이미 다른 이해 및 정치로 찾아가는 지도부.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수대들을 거세시키고 조합원들의
행동양식과 투쟁방식 등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감시와 훈육 집단으로 돌변해가는 지도부. 그리하여 마침내 이런 명령어까지 서슴치 않는 지도부:
<BR><BR>“지도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조합원은 회사측이 파견한 프락치로 규정한다.”! <BR><BR>지도부가 아닌 조합원이 그런
대형집회에서 특히 긴박한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 집회장에서 평조합원이 발언을 한다는 것은 거의 힘든 일이다. 발언의 주도권을, 마이크를 지도부에서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꽃.양>은 이렇게 집약한다: “‘예’라고만 대답하시오.” 집회장에서의 마이크. 그것은 명령어의 수단이
아니라, 소통과 의사결정의 수단이어야 한다. 분할이 되면 분할이 되는대로. 이질적이면 이질적인대로 다성적인 목소리들이 교차하는. 새로운 긍정성을
위해서. 그럴 때 마이크는 수단이 아니라 그 분할선의 역동성이기도 하다. 새로운 힘들이 솟구치는. 또한 그 언어, 그 담론 자체가 행위이기도
하다. <BR>그런데 98투쟁에서 평조합원들과 지도부의 언어가 분할된 것은 서로 평행하여 제갈길들을 간 것이 아니다. 지도부의 행동없는 언어는
끊임없이 평조합원의 행동하는 언어들을 배제하고 봉쇄했다; “지도부의 지침에 철저히 복무한다.” 그러나 평조합원들은 그로부터 얼굴을 돌려버린다.
그리고 말한다: “누굴 위해서가 아니다. 누구도 우릴 대변하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싸운다.” 지도부에 의한 대변적 투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협상보고대회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것은 그저 한 사람의 발언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서 기록될
것이다. 마이크를 둘러싼 헤게모니 과정까지 포함해서. 한국사회의 운동판이나 그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는... 이 장면은 이렇게 복잡한 사연들을
안고 있다. <BR><BR>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BR><BR>“얼굴돌리기, 집회 안나가기, 위원장 앞에서 무표정하기, 지도부의 지침을
벗어나는 행동 등은 거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무시한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해석'당하고' 있었다. 집회에 안나오는
조합원은 수동적인 대중으로, 지도부의 의사에 잘 따르지 않는 행동은 단결을 해치는 행동으로, 공장 내에서 관리자와의 육체적인 충돌은 개인적인
분노를 남발하는 우발적인 폭행으로 해석당하고 있었다. 이런 표현방식들, 비언어적 표현들, 그 몸의 언어들은 무시되거나 왜곡된다. 혹시
고려되더라도 소극적이라 치부되었다.”(홍은영, ⌈평조합원의 언어를 이해하는 길은?⌋) <BR>“어떻게 보면, 98년 현대자동차 파업투쟁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공모했던 대형 이벤트였다. 지도부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던 3개 현장조직은 물론 대소위원, 중간 활동가 평조합원들 까지..
모두가 위계질서와 운동의 대의라는 명분, 현실적 한계라는 핑계를 대면서 이상한 방식으로 동의를 하고 암묵적인 공조체계를 유지했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어느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누군가... 그 2중의 그물망으로 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웠던 행위와 사고들 또한
끊임없이 추적해야 한다. 거기까지가 98년 현자 파업투쟁의 퍼즐 맞추기가 완료되는 순간이다.”(임인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BR><BR>고길섶 문화연대 편집실장 <BR></FONT></p>
</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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