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연대]인권운동 사랑방을 바라보는 쓸쓸함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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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울산 인권영화제에서 일어난
[밥꽃양]에 대한 사전검열 공방이 벌써 한달을 훌쩍 넘기고 있다. 사건의 간단한 경과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공방이라 말하기도 어색할 만큼
이 사건의 두 당사자 가운데 한쪽이 대 화를 회피하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 있는 사실만으로 판단해 보아도 이 사건을
영화제측의 사전검열 시도 사건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없다. 이미 영화제 집행위측은 거듭되는 말바꾸기를 통해 검열의 시도가 단순한 부주의라거나
실수였다고 보기에는 조금 미심쩍다는 사실을 스스로의 입으로 폭 로 한 셈이 되었으며, [밥꽃양]을 제작한 라넷(노동자 영상보고서팀 LARNET :
Labor Reporters' Network)은 이 미심쩍음의 이유가 외압으로 인한 검열시도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를 비롯하여 오마이뉴스나 그밖의 게시판을 따라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 사람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이 영화제에 어른거리는
인권운동 사랑방의 그림자이다. 사건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인권운동 사랑방(이하 사랑방으로 통칭)이 보여주는 대응의 의외성이 주는 놀라움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그 명칭이 암시하다시피 울산인권영화제는 사랑방의 서울인권영화제와 궤를 같이 하는 종류의 영화제다.
제1회는 사랑방의 적극적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나 제2회부터는 지역인권영화제를 개최하지 않는다는 사랑방의 방침에 따라 독자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사실은 울산인권영화제가 사전검열이라는 치명적인 장애를 발생시키기 전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네티즌들은 이 사건에
대한 사랑방측의 견해와 입장을 질문하게 되었던바, 이에 대한 인권운동 사랑방의 대응이 왜 의외로운 것이었던가를 살펴보자.
우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글 하나가 인권영화제 게시판에 떠 있다. 라넷이 상영거부 입장을 밝힌 바로 9월 7일 밤 10시 6분경에 [밥.꽃.양
제작팀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저희가 문제를 제기한 곳은 울산인권영화제이며 이는 서울인권영화제나 인권운동사랑방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라고 하는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이다.(게시판 386번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만일 울산인권영화제와 인권운동사랑방의 서울인권영화제와 정말로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런 알림글을 왜 굳이 라넷에서 써야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오후 6시 31분에 377번 글을 통해
"현재 진행중인 영화제들은 인권운동사랑방과 무관하게 해당 지역단체가 갖는 자체행사입니다. 이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입장글을 올렸으며
오후 8시 52분 쓰여진 385번 글에서는 "이번에 울산인권연대에서 일어난 영화제와 관련된 사안은 인권운동사랑방과 무관합니다./인권운동사랑방은
올해 지역인권영화제를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지역단체에 이 결정을 공지하고 여러차례 공문을 보낸 바 있습니다./인권운동사랑방은 지역단체에
'인권영화제'라는 명칭의 사용불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는 답변글을 바로 그 공문과 함께 달아두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라넷의 일종의 해명성 글이 서울영화제 게시판에 올라온 것은 이 해명이
사랑방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는 결국 라넷이 상영거부 의사를 표명했을 때 사랑방이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이
양측으로부터 다 거리를 두는 일이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라넷에게는 이 사건이 사랑방과 무관하다는 확답을, 영화제측에는 인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각각 요구한 셈이다. (참고로 그 공문의 요청은 9월 11일 울산인권영화제가 그냥 울산영화제로 명칭을 바꾸는 기이한 해프닝을
통해 수락되고 있다. 울산인권영화제 주최측과 인권운동사랑방측의 긴밀한 유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요구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것임을 독자들도 이미 느끼겠지만, 좀 섬세히 짚어보자면, 우선, 가장 근본적인 인권이라 할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때 취할 행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라넷은 피해자로써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고발하는 입장에 있었다. 사랑방의 과거 활동으로
미루어 보든 '인권'단체에 대한 기대의 지평에서 바라보든, 이럴 경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라넷의 주장에 귀기울여주는 일일 것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해서 무조건 지지하거나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아니라, 일단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안고 고민하는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방은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이 자신들의 일이 아님을 드러내는 데 인색치 않았다.
더구나 네티즌들을 정말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제2회울산인권영화제측에 "인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를 함으로써 영화제의 명칭을 울산영화제로 변경하도록 종용한
일이다. 물론 지역인권영화제가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그에 따른 부담은 소롯이 사랑방이 지게 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대응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말로 문제가 발생해버리고 난 다음 인권운동 사랑방의 할 일이 과연 갈등의 두 당사자와 거리를 두는 일이었을까? 아니면
'인권지킴이'답게 울산영화제측이 어떤 점에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었을까? '인권'이란 말에 무슨 특허라도 있는듯 언어를
회수하겠다는 발상도 기이하지만, '인권'자를 떼어버리면 문제가 해소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사랑방측은 사랑방의 이러한 행보가 대표의
사임, 게시판 운영자의 갑작스런 사임 등등 내부적으로 여유가 생기지 않은 데서 비롯한 일종의 느린 대응이라 말하고 있다. 이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방측의 여러 활동가들의 글이나 행보를 눈여겨보건대, 인권운동사랑방이 지닌 인권운동에 대한 접근이 어딘가 미묘하게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증폭시키는 사건들을 살펴보자.
인권하루소식 9월 18일자에는 "인권의 이름을 한
영화제가 가장 강력하게 옹호해야 하는 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점에서 이번 인권 영화제는 제 자격을 잃었다 할 수 있다. 인권은,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항할 때만 필요한 개념이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울산인권영화제측의 잘못을 질타하는 장여경 활동가의 글이 실린다. 그런데
이 글은 같은 사랑방 활동가인 이광길씨로부터 에둘러가는 반박을 받는다.
이광길 활동가는 진보넷 열린칼럼에 쓴 [저마다 인권을
이야기하는 시대]라고 하는 글에서 스스로 인권운동의 범위를 대단히 축소시키는 작업을 함과 동시에, "집행위는 영화의 주요 출연자인
'식당아줌마'들이 자신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 공개되는 걸 꺼려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라고 하는 미묘한 말로 암시적으로 영화제측을 옹호한
다음 "영화를 만든 이들이 모든 사전 심의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영화를 만든 이들은 조건이 맞는 다른 상영공간을 찾아야지
주최측만을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는 정말 기상천외하다 할 수 있는 인권영화제의 개념변경을 한다. 사전심의를 거부해야만 하는 특별한
영화가 있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야말로인권영화제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니었던가?
이어서 그는 "국가에 의한 사전검열과
사적검열은 물론 성격이 다르다." "사전검열(이 문제에 대해 영화제 집행위는 곧 공청회를 열어 공론화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곳에서
여러 쟁점이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은 인권침해행위라는 것이다. 이 구호를 내건 이들은 왜 누가 어떻게 인권을 침해당했는지 깊이 있게 밝히지는
않았다. 대개 사전검열이다. 인권단체가 그럴 수 있느냐는 정도에서 머물 뿐이다." "권리투쟁의 이데올로기로 요즘 잘 팔리는 '인권'을 동원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광길씨의 글이 지닌 문제점은 너무 많아서 이 지면에서 다 짚어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사랑방의 활동가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이 사건을 소위 [인권단체가 독점해야만 마땅한 인권운동]에 대한 도전이나 흠집내기
정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구나, 란 탄식을 발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인권이 독점사업인가라는 네티즌들의 탄식이 그래서 등장한다.
이런 흐름을 업고, 사랑방측은 9월 11일에 울산영화제측의 해명서에 대하여 "해명서를 보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밥·꽃·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울산인권운동연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영화제 운영과정이나 의사소통 문제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일은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라고 하는
입장글을 발표하여 일단 영화제측의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게시판이라고 하는 공론의 장에서 이미 제기되어 있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진지하게 해소해 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0월 17일 주최측이 불분명한 공개토론회를 자신들이 개최하려
한 것이냐라는 네티즌들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였다. 물론 이광길 활동가의 글로 미루어 볼 때 인권운동사랑방이 공청회 방식의 문제해결을 지지하고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과연 사랑방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울산의 관련단체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하고 있는바, 이 또한 공청회 방식을
선호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미 열려 있는 공론의 장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들을 만나야 문제를 이해하는가?
그것도 굳이 특정한 자격을 지닌 사람들을 대표자로 내세워 조사하던가 공청회를 하는 그런 형식이라야 문제가 이해되는가? 오히려 침묵하는 사람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어 관심을 지니고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입장과 주장을 공유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운동사랑방의 역할이 아닐까?
이미 이 문제는 울산영화제 측과 라넷측이라는 당사자간의 분쟁을 넘어, 수많은 반성과 새로운 각오들을 생산하면서 소수자들의 말할 권리에 대한
강렬한 주장이 되어 가고 있는 판에 말이다.
나는, 인권운동사랑방측의 이러한 대응이 이 문제를 이미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애써 말하는 익명의, 또는 무명의 말보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특정한 사람들의 말에 더 가치를 부여하려는 무의식적인 패거리주의를
드러낸다고 느낀다. 이 나라의 인권신장에 대한 직접적 권리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게다가 특별히
밥꽃양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사건들이 나 자신의 불철저한 인권의식을 반성하는 중대한 계기를 부여했다고 느끼는 주체의 한
사람으로서, 인권이 걸린 문제를 임의로 정의하고 특정한 사람들끼리 논의하려는 태도는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인권문제는 쌍방의 말을 들어서
절충할 문제가 아니며, 주장의 타당성과 태도의 철저성을 따져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나서 들어보자는 요구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발상 자체에도 문제의식을 느낀다. 그 이야기는, 자신들의 입장표명이 다른
네티즌들의 그것과는 특화되어야 함을 스스로 주장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이미 관련당사자들이 되어버린 수많은 네티즌들의 알 권리를 중간에서
대행하겠다는 발상이 아닐까?
이런저런 상념들이 나의 인권운동사랑방에 대한 믿음이나 사랑을 훼손시키는 정도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쓸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록 힘든 여건속에서라 할지라도 인권운동사랑방이 달라지고 있는 국민의 인권의식과 정서를 좀더 긴밀히 이해하고 더
철저히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월간[문화연대]11월호--지면 관계상 약간 줄여서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