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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꽃.양]과 [실패한 상흔은 오래 지속된다]는
임인애 감독과 라넷팀의 고민과 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동안 노동현장에 몸담으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하나씩 차곡차곡 풀어낸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시절과 [노동자 문예창작단]에서 활동하며 노동운동판에서 보낸
10년을 훌쩍 넘는 시간에서 공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1991년도부터 2000년까지 9년 동안 진득하게
현대자동차라는 하나의 공간을 쭉 찍으면서 98년도에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강산이 바뀌는 기나긴
시간 동안 모든 열정과 고민을 쏟아부은 작업! 힘들게 제작했던 영화를 상영거부 했을 때 그 속이야
오죽했으랴.
언니네 : 촬영하시면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임인애 : 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객관성을
가져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아줌마들의 싸움이 안되거나 그 싸움이 무시당하거나 아줌마들이 무시당하는 상황을
돌파하지 못할 때는 아주 죽겠데요. 이걸 찍을 것인가 아니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싸울 것인가라는 갈등의
연속이었어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리가 항상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같은 여자로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고. 적당한 거리두기와 동일시가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언니네 : 10월 23일에 울산에서 상영을
한다고 들었는데, 상영을 하는 것이 울산영화제 집행위와의 본격적인 싸움을 의미하는 건지요.
임인애 : 상영자체가 싸움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영화는 보고 그대로 즐겨야하거든요. 그리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화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해야할 필요가 있어야할 때 하는 건데, 그것이 안된 상태에서 상영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논란은
있는데 영화내용은 모르니까 갑갑한 부분들도 있을테고. 영화 [평행선]의 경우도 그랬지만([밥.꽃.양]과 비슷한
주제의식으로 만들어진 [평행선]은 울산에서 상영거부된 적이 있다) 이런 식의 외압이 없더라도 여성 노동자들과
시사회를 갖기가 상당히 힘든 조건이거든요. 저는 텔레비전 지직거리는 데에 구겨앉아서 영화보는 건 반대예요. 좋은
음질과 화면으로 봐야 그 안에 있는 코드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것부터 확보하는 게 싸움이고
권리라고 생각해요. 당장 현장 안에서 그런 상영조건을 만들기 힘든 문제도 있고, 노동조합과의 마찰문제도 있고
작업시간 때문에 시사회를 갖기 힘들던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터진거죠. 저는 이걸 단순히 "영화"싸움이라고 보지
않거든요. 다 연동된 거죠. 아줌마들이 자기들 목소리가 나간 것에 대해 자기싸움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구요. 일단 식당아줌마들과 전체시사회를 가졌으면 해요. 그리고 아줌마들과 관계된 사람들도 꼭 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상영은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거지 싸움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언니네 : 이번 상영을 둘러싼 분위기는
어떤가요?
임인애 : 우리 스스로 "우린 미쳤다"
그랬어요. 너희는 조직이 있어서 조직적으로 싸우지만 우리는 조직이 없어서 홀가분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상영되면 안 된다, 상영장에 가서 소란을 피울 것이다. 그 날 일정을 잡아서 못 보게 만들 것이다'
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래, 와서 소란 피워라. 우리는 (너희가 소란피우는 거) 또 찍어서
영화 만들거다' 라고 말했죠(웃음)
언니네 : 영상물로서 검열을 받게된 작품
[밥.꽃.양]과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밥.꽃.양]이라는 두 가지 축이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임인애 : 사전검열, 여성노동자문제, 경직된
코드의 문제와 노조권력의 문제가 연동되어있어서 집행위의 대응도 네티즌의 반응도 복잡해요. 어떤 분은 각자 알아서
개입할 쟁점에 참여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냥 싸우느라고 바빠서 우리는 싸움의 구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게 우리의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분들은 그 점이 이 싸움이 다르게 갈 수 있는 장점이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리고 이 문제가 우리 몫만은 아니더라구요. 여기까지 온 것도 네티즌들의 담론투쟁에 의한
것이었구요.
언니네 : 앞으로 계속 이와 관련된 작업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임인애 : '앞으로'는 생각 안 하거든요.
일단 98년도 그리고 지금의 아줌마들의 이야기까지 영화로도 표현될 수 없었던 것을 나름대로 마무리 할거고. 이런
고민에 몰두해있던 정체성은 변함 없겠죠. 우리 슬로건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거든요(웃음). 그걸 노조
영상물에 썼다가 문제제기를 엄청 받았어요. 우리에겐 희망이데올로기가 너무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의미는 좋지만
어떻게 보면 양날의 칼이거든요. '장미빛 미래를 위해서 국민여러분 허리를 졸라맵시다'와 '좋은 세상 노동운동
내일을 위해'는 계속 오늘을 유보하는 것이고, 오늘의 문제에 주목하지 않기에 생기는 문제도 있거든요.
라넷 게시판(http://larnet.jinbo.net/)에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100인위 얘기를 들었을 때, 매도된 것 때문에 속상했던 게 아니라 진 것 때문에 가슴 아팠다. 우리는
두 번지지 않는다. 지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 이 말을 하면서 임인애 감독은 "안 지고 싶은데..." 라는
말을 덧붙다. . 언니네편집팀/ mintmin@chollian.net 웹진
언니네 http://www.unni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