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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위한 희생 그리고 희생강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지요.

90년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 때에 시국사건으로 유명했던 것이 사노맹이라는 조직이 탄생했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삼당합당과 노태우씨는 전국적인 그 야합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한 답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사노맹이라는 깃발이 어느 재야 집회 때에 휘날립니다.
물론 기억에 의지해서 쓰느라고 선후관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검거령이 전국을 강타합니다.
분신정국과 분신에는 배후가 있다는 이야기는 그 다음해 이야기지요.
사노맹 정국에서 나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합니다.
무엇이었던가 하면 나는 신체검사를 신청하고 그 사이에 학교 연구소로 도망을 했던 것입니다.
공대라는 특성이 연구소라는 곳은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그 때에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십니다.
별 수 없지만 연구소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버티고 있던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요.
그리고 상당히 오랬동안 나는 연구소에 나가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얼마후에 그 연구소에서 모두를 불러모읍니다.
거기에서 나는 "나와 내 집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해야만 했고 그것이 연구소에서 하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답을 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 때에 연구소에 다른 사람들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했습니다.
그런 이후 나는 연구소를 나왔습니다.

전체를 위해 어떤 사람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것과 같은 숭고한 미담들이 우리에게는 많습니다.
그러나 다수를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이지요.
내가 <밥꽃양>이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강요였습니다.

90년대 중반 독일의 거대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은 세계적인 자동차 시장이 냉각하자 그 여파로 30%에 해당하는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참고로 독일에서 노동자를 해고를 하면 노동자는 임금에 해당하는 것을 계속 받으며 이것은 정부에서 30%, 전 고용자 쪽에서 70%를 지불하며 실제로 이것은 10%의 임금삭감효과입니다.)
그리고 사용자 쪽은 그 이유를 노조에 설명을 하고 해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을 합니다.
그리고 노조는 회사의 경영상태를 확인을 하고 대대적인 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을 합니다.
그리고 노사는 타협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해고되었던 사람들 수는 아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35시간 노동시간을 28시간으로 줄이고 또한 연장노동시간은 없애고 대신 10%의 임금삭감에 합의를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해고를 당할만한 사유가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그 때 독일을 강타했던 리스트럭처링이라는 대량해고를 중심으로 하는 인력재배치 시기에 접셰어링이라고 하는 개념을 대안으로 찾아냈던 커다란 사건입니다.
물론 접셰어링의 효과가 의외로 많지는 않았다는 반론도 있기는 했지만 그 동안 같이 일을 하던 동료를 내가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해고를 하도록 하는 경쟁자라는 인식에서 이 어려움을 같이 헤쳐나가야 하는 동지로서 인식을 할 수 있었던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98년도의 대량해고 붐 때 한국의 노조들은 해고자 수를 줄이는데 급급했지 모두가 함께 해야하는 동지라는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희생양은 그 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여성이었습니다.
내가 제일 개탄을 하는 것은 여성노동자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노동자라고하는 무산계급에 해당하는 최하계급에조차 여성은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어서 분석을 할 때에 여성이 가장 아래 계급에서조차도 소외가 되었다면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더군요.^^

계급이 해방되면 여성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라는 역겨운 계급환원주의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서구 자유주의에서도 먼저 남성노동자가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또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 권리를 쟁취하면 여성노동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노동자가 더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노동자 문제에 눈을 감고 남성노동자 문제만 치중을 한다면 결국 이것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남성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데 커다란 족쇄가 되기 때문이지요.

현자노조에서 식당노동자였던 아줌마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은 노동자에게는 피해가 최소한으로 갈 수 있었던 최선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일까요?
그 식당아줌마들과 같은 사람들이 일용직노동자가 된 것과 같이 지금 현재 일용직노동자가 반이 넘게 되어서 이것이 오히려 노동자들이 정당한 달품을 받는데 엄청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한 사실입니다.
현재의 고용불안은 바로 <밥꽃양>에 나오는 그런 일들을 전체를 위한 희생이라는 미명하게 강요했던 것에서 다시 우리에게 굴레가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나 혼자만 생각하는 비약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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