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른들한테 칭찬받는 법을 깨달았다. '어린이들이 쓰지 않는 말'을 쓰면 어른들은 참 좋아한다. (어린 놈이 똑똑하네,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뭐 이런 말들)
모임 같은 거 처음할 때는 모두들 말 수가 적다. 낯가림만이 아니라 '구사하는 언어'를 익혀야 하니까. 좀 더 운동권 언어를 잘 구사하게 되면 주위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많이 의식이 각성되었다'고.
처음 모임 들어오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그런 시선을 던진 적이 없었는가? 있었지. 운동권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애들을 보면 '학습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등등.
그러면서도 이른바 '운동권 소설', '노동소설' 같은 걸 보면서는 '그런 관념적 언어'들이 나오면 '비 리얼리티'라고 생각했었다. 소설 속의 '민중'들은 그런 말을 쓸 줄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같은 걸 지시하더라도 '그들의 언어'를 구사해야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각성된 민중의 모습일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분간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식당 아줌마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자발성을 볼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대자적 계급으로 각성된 노동자계급을 볼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직 각성되지 못한 사람들로 볼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여성노동자를, 또 어떤 사람들은 여성을, 등등을 볼 거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항상 자기는 남이 보고 있고 남은 자기가 보고 규정내리는 거니까.
근데, 자꾸 보니까 그냥 아줌마들이 보인다. 울산 공대 나와서 놀고 있는 아들, 대구대 다니는 아들, 울산공고 나온 아들을 둔 그냥 아줌마. 각자가 이러 저러한 역사를 갖고 살아온 아줌마. 내 어머니를 닮은 아줌마들. 아니, 나를 닮은 아줌마들. 울부짖는 아줌마. 파업가를 부르며 우는 아줌마, 구호를 외치며 우는 아줌마. 그냥 우는 소리들이 머리 속을 맴돈다. 운동권의 언어는 삶 앞에서 또한 얼마나 무력한가. 이걸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남루한가. 사람들이 있고 울고 불고 싸우고 밀치고 구호 외치고 노래부르고 아스팔트를 긁는 쇠파이프 소리와 밥 짓는 소리 스팀 빠지는 소리들.
그냥 그런 소리들, 이미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