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밥꽃양]을 보고,,,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반드시 금기시하는 것이 있다. 가령 주인공이 누구라거나 줄거리가 어떻다거나 약간의 감평이라도 듣지 않는 것인데, 나만의 영화 감상을 편견과 선입견에 빼앗겨버리는 오류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영화 [밥꽃양]을 보기 전에 가장 초보적인 의문은 영화 제목이었다. 이 세 음절을 놓고 요리조리 문학적 예술적 감성을 아무리 동원해 봐도 머릿속에 먹구름만 가득한 채 선명한 의미가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하도 궁금하여 그만 금기를 깨고 노동자의 눈, 노동자의 역사관으로 신명나는 조합 활동을 열기 위한 제 1 기 전교조 대전지부 조합원 학교 심화 과정 제 4 강 - 휴, 숨차! - 자료집 65쪽부터 67쪽까지 3쪽을 읽었다.
'<밥>을 짓던 그녀들이 어느 순간 투쟁의 <꽃>이었다 희생 <양>이 되어, <밥>먹는 것을 거부하기까지, 3년. 그 잔인한 3년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밥.꽃.양 - 여성 노동자 영상 보고서] 인덱스 일부이다. 이어 임인애 감독은 '[밥꽃양]은,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부제를 줄줄이 달고 있는 테마들이 엎치고 겹쳐 엮어진 영상보고서이다.'라고 서두를 열고 있었다.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꼭 봐야지...'
아내는 '남편과 함께 영화 감상'이라는 설레임을 담고 연애 시절로 회귀하고 있었다. 카이스트 미래홀이라는 곳에 함께 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이것저것 따져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허어, 좋은 영화는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보는 거라니께. 그나저나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 지도 모른다니 서두르자구." 우리는 상영 예정 시간에 맞게 태울관에 도착, 미래홀에 입장했다.
희망 인원이 채워지기 전, 막간의 시간에 1990년대 투쟁의 기록들이 상영되었다. 움찔움찔 놀랐고, 섬뜩했다. 여전히 부끄러웠다. 모처럼 남편에게 끌려와 아름다운 겨울 연가를 상상했던 아내는 외투 깃을 세우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노동자들의 함성과 절규에 적지않게 놀라고 있는 눈치였다. 얼마 후 아내는 나를 향해 힐끗 눈을 치켜올리더니 애들한테 급한 전화가 왔다는 말을 남기고 메인 영화 [밥꽃양]을 보지도 않은 채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저렇게 처절하게 싸웠으니 얻을 수 있었음을 나는 알건만, 아내는 오랜만에 남편 섀끼랑 손 꼭 붙들고 나의 오른팔과 당신의 왼팔을 비비 꼬아 하나되고 싶었던 기대를 접고 애들 탓을 하며 떠났다. 내겐 두 가지 의무 사항이 생겼다. [밥꽃양]을 보고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담아 감평을 정리하는 일, 그리고 여전히 노동 운동의 절실함을 잊고 있는 아내를 교선하는 일이었다. 천천히, 너무 급하지 않게, 사람의 의식을 바꾸고 깨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전반부, "사람이 감정이 있어야지 자기가 원하니까 나무 토막 마냥 그냥 뻣뻣하게 대준다 이거예요." 극심한 육체 노동으로 부부 간의 원만한 성생활마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인터뷰를 보고 들으며 긴장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손수건을 적시는 일이 없도록 단단하게 마음을 단속했다. 이산 가족이 만나면 울고, 티브이는 사랑을 싣고에서 울고, 인간 극장에서 울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곳곳의 눈물에 바보처럼 약한 내게 감성 통제는 필수였다. 속울음이 여울을 만들었다.
식당 아줌마들이 무의식처럼 내뱉는 생존을 위한 언어들이 사치와 허세에 가득한 나의 언어를 짓눌러 머릿속에서 백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백치가 되고 있었다. 감정의 자맥질이나 부침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빠지고 말았다. 관객으로서의 나는 화면 장면장면에 슬픈 미장센에 몰입한 채, 믿기지 않는 일들이 현실로 현실로 끊임없이 이어질 때마다 [밥꽃양]이 그냥 그럴싸하게 작가나 감독이 꾸며낸 영화이기를 바랐다.
[밥꽃양]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우리들의 아픈 어제였고 여전히 시린 오늘이었다. 현실과 타협한 우경화가 얼마나 비참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짓밟을 수 있는지 선명하게 확인했다. 세계, 국가, 민족, 기업, 노조, 개인 등 헤아릴 수 없는 원흉은 누구일까 되뇌이고 상상했다. 저 식당 아줌마들을 저토록 가혹하게, 가슴팍이 찢어지도록 흥분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상상하고 되뇌었다. 누구나 어항 속에 갇힌 붕어라고 믿었다. 물이 없거나 산소 기포기가 없다면 단 하루도 한나절도 살 수 없는 비참한 노동자들이라고 판단하면서 관객으로서 방관할 수밖에 없는, 속앓이 눈물이나 징징 짜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한탄해야 했다. 식당 아줌마들은 어항 속을 뛰쳐 나와 물도 산소 기포기도 없이 단식 농성 열닷새를 견뎌냈고, 남성 노조원들의 조소나 야유, 혹은 우경화가 빚어낸 작품처럼 엠블란스에 실려간 후 결국은 짐을 싸야 했다.
<TO BE CONTINUED> 이것은 [밥꽃양]의 마지막 자막이었다. 무엇이 <계속>이란 말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노동해방, 인간답게 살고 싶은 절규가 이어져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THE END>로 마지막 자막이 처리되는 영화 [밥꽃양]을 기대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 [밥꽃양]이 내게 가한 무자비한 폭력에 감사한다. 나는 얼마든지 맞아도 싸다. 임인애 감독의 여린 듯, 섬세한 듯, 구슬프게 들려주던 경상도 사투리가 여전히 시리다. 그녀의 영화 제작 비용에 들어간 아무 생각 없는 '빚'이 우리 노동 운동사에 길이 남을 '빛'으로 승화되길 소망한다.
박병춘 총총,,,
작성자 박병춘 작성일 2002-11-16 오전 8: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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