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게시물 번호: 2086
글쓴날 : 2001-11-03 20:32:54
글쓴이 : 정리해고자의 아내 조회 : 99
제목: 울산으로 영화보러 가던 날이 생각납니다.
오늘 영상자료실에 올려져 있는 <밥.꽃.양>을 다시 보았습니다.
저와 제 남편은 울산상영이 있던 날 영상을 보러 울산엘 갔습니다.
울산 요금소를 빠져나와 무거로터리를 지날때쯤...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뛴다" "....."
"이래가지고 영화 제대로 볼 수 있겠나.." "....."
"난 아무래도 안 보는게 ....." "....."
여전히 98년 여름은 아물지 않은 상처,
닿기만 해도 욱신욱신한 불자욱인가 보군.
영화 보는 동안 엄청 긴장되었습니다.
옆에 시한폭탄 하나가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때론 눈을 감고 소리만 듣기도 했고
또 때론 몸을 앞으로 내밀고 뚫어져라 화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날 밤 돌아오는 차안에서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식당아줌마들한테 죄스럽지...
노조에 이용당해서 정리해고 되고
그 뒤엔 자율식당인가 해서 또 이용당하고...
알면서 같이 싸우지도 못하고 그게 죄스럽지...
근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최종희 아줌마 참 많이 늙었다. 젊게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식당 싸움하면서 갑자기 팍 늙었나보다. 얼굴이 엉망이던데..."
요즘 인권운동사랑방이 바삐 움직인다는 글들을 보았습니다.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다음주에 입장발표를 한다고 합니다.
98년 그 뜨거웠던 여름과 식당아줌마들의 지난한 삶이
인권영화제라는 커다란 장막에 덮혀질까 걱정이 됩니다.
이제야 98년 여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게시물 번호: 2111
글쓴날 : 2001-11-03 22:55:33
글쓴이 : 정리해고자의 아내 조회 : 87
제목: 밥꽃양은 거침없이 보여져야 합니다.
2달여동안 관심을 가지고 이 게시판을 지켜보고 계신 여러분들...
제 아이디가 또 말썽(?)을 일으켜 게시판을 흐리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초의 난리가 일어났을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어리숙함도
뒤늦게 사과드립니다.
이 아이디를 쓰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라는 아이디가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적절한
아이디인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민감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도 98년 여름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사람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남편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고
본인 스스로 그 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그 싸움을 제대로 볼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싸워야 하는 순간에 싸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절망감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 때문에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