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넷은 『밥.꽃.양 』울산 상영을 하고자 합니다
한 달이 넘는 지리한 논쟁에서
숨넘어갈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게시판을 들여다보며 화병으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꾹꾹 눌러가며, 순간순간을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읽은 듯 민감하고 날카롭게 열띤 논쟁을 끌고 가는 네티즌과 논객들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표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울산영화제가 {밥.꽃.양}에 대하여 사전검열을 요구하게 된
실제적인 배경과 구체적인 경로, 그리고 외압의 실체들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밥.꽃.양}에 대하여 줄거리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하던 영화제 집행위가 구체적인 장면을 들어 편집과 해석에 대한 논란을 제기하고, 영화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프라이버시와 저작권 침해소지가 있을 것 같아 한번 보자고 한 것뿐이라고 은밀한 비밀처럼 말했습니다. 라넷을 음험한 제작팀으로 만드는데 이보다 더 좋은 소문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는 노노갈등의 문제는 지역에서 민감한 소재라고 했습니다. 평행선이 그랬던 것처럼 밥꽃양도 그럴 것이라고. 평행선팀과 밥꽃양팀은 이름만 바꾼 같은 팀이라고. 제작팀의 정체성마저 임의로 날조하면서, 평행선에 사용되었던 장면이 그대로 사용되어졌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라고. 횡설수설 같지만 그럴듯하고, 그럴듯하지만 찜찜해서 모두가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스캔들에 가까운 구차한 비공개문건까지 돌리면서 애초의 질문을 회피하면서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유도해버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사전검열과 외압은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어버렸습니다. 게시판 폐쇄에 대한 항변조차 인권운동연대의 활동중단에 대한 동정론으로 틀어막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전검열과 외압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영화제 집행위는 현자노조의 권력을 스스로 인식하여 자기검열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자노조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요구에 따라 움직여왔습니다. 다만 그 행위를 심각한 폐해로 인식하지 않는 관행에 젖어 있었을 뿐 이는 굳이 울산영화제 집행위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습성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위 전체의 모습에서도 나타나듯 울산영화제에 관련된 대부분의 단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현자노조의 요구와 집행위의 행동 사이, 지그재그로 얽혀있는 경로를 통하여 이 사태의 원인이 궁극적으로 98년 정리해고와 그 이후 식당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현자노조의 태도와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번복되던 문제제기의 내용은 모두 외압을 은폐하기 위한 시나리오였다는 것이 여실히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제기조차 하지 않은 장면을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명목으로 급조하여 문제제기 내용에 추가시켰습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 경로를 동원하여 식당여성노동자들을 압박하는 과정은 차마... 설명하기조차 부끄러운 형태로 진행돼 왔습니다. 오히려 프라이버시 당사자로 지목된 여성노동자는 "나는 그 인터뷰가 나가는 것이 당당하고 하나도 꺼릴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가 상영되기도 전에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만든 사람들의 잔인한 행위를 우리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외압이란 단어로 표현되었던 거대노조의 파행적인 힘은 여전히 우리 곁에 건재합니다.
외압은 아우라나 심리적인 분위기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힘이었으며 그 디테일한 동작선도 뚜렷했습니다.
평행선과 밥꽃양의 현장이었던 현대자동차 노조가 그 노조의 이름으로 행사했던 상영에 대한 파행적인 압력. 그리고 노조식당 여성노동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노조권력의 이중성. 이런 것들이 분명하게 거론되고 극복되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밥꽃양 사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화면을 넘어 이 사회를 향하여 던지는 여성노동자들의 절박한 물음은 아무도 들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녀들이 감당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심리적 물리적 억압은 더욱 정교하게 은폐되어 강화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는 복합적인 검열기제는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내면화되어 우리 삶의 태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외압이 밝혀질 것인가?"
"이제 사전검열이고 외압이고 각자 알아서 판단 할 것이니까,
작품상영에 주력하는 게 좋겠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영화가 울산에서 상영되는 것 그 자체가 큰 의의를 지니기 때문에
그 일을 추진하자"고.... 그리고 상영추진위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영추진위를 고사했습니다. 위원회를 통하여 엄호받으면서 상영되는 것과 조직이 아니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울산의 공기에 저항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울산에서 상영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이 일을 매듭지을 수 없으며, 또한 사전검열을 가능하게 했던 그 안개같은 공조체계에서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한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영거부와 상영추진은 동전의 양면처럼 역설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울산상영에 앞서 온라인 시사회를 오프라인 시사회로 전환시키는 의미로서만 울산상영을 하고자 합니다.
98년 어느 사수대와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이 싸움이 진짜라고 여겨지는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사태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10월 23일 울산 시사회를 가진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 게시판에서 무수히 논의되었던 노동운동의 권력과 정리해고, 식당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억압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장소 근로자복지회관
시간 2001년 10월 23일 저녁6시/저녁8시40분
『밥.꽃.양』제작팀 라넷(노동자 영상보고서팀 LARNET : Labor Reporters' 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