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당신이 켜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코흘리개 자식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기 위해 유학을 1년만 보낼지 2년 이상 보낼지 고민한다는 상류층의 신변잡담이 늘상 흘러나올 겁니다. 당신은 혹시 전원 정리해고에 내몰린, 밥하는 아주머니들의 절규는 들어보신 일 있는지요? 하청 임금으로는 자식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절규하는 현대자동차 노조 식당의 여성 조합원 노동자들 144명의 절규를 말입니다. 십중팔구 당신의 기억에 거의 없는 일일 것이라고 단정을 내려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당시 언론에서 아예 외면을 한 일인데다 벌써 3년 이나 지난 일이니 누구의 기억엔들 제대로 남아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그 여성 노동자들의 당시 활동들, 파업, 농성, 단식에 이르는 땀방울과 눈물을 생생하게 기록한 영상물이 만들어졌답니다. 그러나 이 영상물을 많은 분들이 보도록 노력을 쏟는 데 게을리 한 것은 이번엔 언론이 아니라, 뜻밖에도 이 영화가 출품되었던 울산인권영화제의 집행위원회였습니다.
명색이 '인권'을 내건 영화제가 이 작품을 껄끄럽게 생각한 건, 이 작품이 한국노동운동의 상징이자 선도 조직 중 하나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이면, 자본과 권력에 맞선 '빛나는 투쟁 성과'에 가려진 소수자의 눈물을 들추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자본이나 정치권력만을 성토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상영의 어려움은 없었겠지요.
여성 노동자들의 주된 싸움의 대상이 자신들의 동지인 아니 동지라고 생각했던 노조의 집행부만 아니었어도 말입니다. IMF 관리 체제이던 1998년 당시, 대기업 정리해고의 출발점이 되고 만 현대자동차의 파업에는 전 사회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언제 경찰 병력이 투입될지 모르는 긴박한 와중에 국가와 자본 대 노동 진영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팽했었지요. 정리해고에 맞서 끝까지 대오를 사수하자고 외쳤던 노조 집행부는 그러나, 정리해고를 "누군가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임 있는 지도자의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 주된 대상은 다름 아닌, 파업 기간 중 공장에 가스 공급이 끊겼음에도 어렵게 밥을 지어와서 수백 명의 사수대들을 먹이고, 노조의 지출을 줄여주기 위해 시장에서 배춧잎을 주워 모아와 시래기국을 끓여내며 함께 싸운 식당의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노조는 자신들이 식당을 인수하고 전원 고용승계를 하겠노라고 아주머니들을 달랬지만, 대다수가 실질적 가장인 그녀들에게 보장된 건 형편없는 저임금의 하청노동자 신분일 뿐이었습니다. 언론은 노조가 식당을 직영하게 되어 정리해고 건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98년 8월 노조의 파업은 끝을 맺었지만, 회사와 노동조합을 상대로 외롭게 원직 ·복직을 요구하는 아주머니들의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주머니들은 십 수년 째 일해오던 그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예전의 60% 남짓한 임금을 받고 있고 있으며 노동 강도는 한층 더해졌습니다. 이미 노조의 정리해고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현재 남은 분들만큼의 인원이 공장에서 떠났기 때문이지요. 단식 중인 아주머니들을 향해 그들의 상급 고용주라 할 노조 집행부는 경영자 답게 "당신들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고 믿는다"는 망언까지 내뱉습니다. 경기가 회복되면 회사와 복직 협상을 하겠노라고 약속하던 그들이었습니다. "이런 법이 어딨노?"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들에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던지는 이 외침이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릅니다. 죽기 전에는 농성장을 떠날 수 없다고 절규하고, 단식 중 노조에서 보낸 의료진까지 물리치는 이 아주머니들. 이 분들은 한 개인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양식이 아닌 "내 새끼 양식"을 위해 싸운다고 울부짖으니까요.
밥이 없으면 생산도 할 수 없습니다. 작업장의 동료들이 힘을 내어 생산하고, 힘을 합쳐 싸울 수 있게 한 아주머니들의 밥하기 노동은, 왜 이들에게 한 가족의 생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대가로밖에 돌아오지 않을까요? 노조집행부에게 밥 일은 기껏 잉여노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아주머니들의 절규를 통해, 인간에게 먹고 사는 것, 살아남으려는 것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거니와, 약자의 생존권은 언제나 위협받아왔으며, 대기업노조나 인권영화제 주최 측 등 자신들보다 덜한 약자들로부터도 존중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아주머니들은 봇물 터지듯 말하는데, 그 목소리들은 모두 우리가 모르는 새 터져 나왔던 반향 없는 그들만의 것이었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남편의 성적 요구에 응하기 힘들 정도의 식당 일의 고됨을 말해줍니다. 그런 목소리가 소음처럼 듣기 불편한 사람들은 아주머니들의 울부짖음이든 성냄이든 몸부림이든 침묵의 소리로 남겨두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마저 그들의 말이 대답 없는 공장 안을 맴도는 데 그치도록 내버려두면 안되겠지요?
우리는 그 말들이 "빗물처럼... 흘러나가고 지나가며 미끄러지고," 공기 중에 소통되도록 그 말에 공적 지위를 매겨줄 의무가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우리가 모르는 새 있었던 소수자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되면 당신이 꼭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영화는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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