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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사상 12월호] 여성노동자에게 노동운동은 희망인가, 질곡인가?
<b>여성노동자에게 노동운동은 희망인가, 질곡인가?</b>
신기섭(『한겨레』신문 경제부 기자)


"오늘 오전에 위원장님이 불러서 조합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어렵다면 저희들이 희생하겠습니다. 저희들이 나가서 나머지 조합원들이 살 수 있다면 저희들이 나가겠습니다."

"왜 식당 아주머니들이 나가야 합니까? 쪽팔리지도 않습니까? 약한 여자들이 나간다는 것은 우리 남자들에게는 너무도 쪽팔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여자들을 쫓아내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정리해고 되어야 한다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1998년 8월 21일 총파업이 벌어지던 울산 현대자동차 노조사무실 앞에서 오고간 말의 대목이다(현대차노조 현장조직 민투위가 작성한 '파업 마지막 10일의 기록'에서). 이로부터 채 사흘이 지나지 않은 8월 24일 새벽, 현대차노조 위원장은 평균 나이 48세로 14년 동안 꾸준히 밥을 짓던 식당 소속 여성 조합원 144명 전원 등 모두 277명을 정리해고 하는 안에 합의했다.

노사 협상 중재에 나섰던 노동부 장관, 여당 의원 등은 "파국없이 대화로 분규를 마무리 지은" 이 합의를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어내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추켜세웠다. 사용자단체들은 정부가 나서 노조측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노동자들도 불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노조집행부가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며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누구도,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조합원 가운데 끝까지 농성을 벌인 이들 144명 전원이 정리해고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것을 심각하게 문제삼지 않았다. 어쩌면 당사자들을 빼고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건 운동하는 이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노조집행부에 대해 너무나 타협적이고 굴욕적인 협상을 했다는 맹비난은 넘쳐났으나, 정리해고 대상자에 식당의 중년 여성노조원들이 모두 포함된 것은 별로 따지지 않았다. 1998년 말에 작성된 한 장문의 파업평가서에서조차 이에 대한 문제의식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정리해고 된 여성노동자들은 곧바로 고용승계가 되었다. 노조에서 식당을 하청 형태로 운영하기로 했고, 여성노동자들은 노조위원장을 사장으로 '모시고' 그 전과 똑같이 밥짓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월급은 크게 줄고, 인원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 일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복직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현대차노조 조합원 신분도 유지됐다. 조합위원장이 조합원의 사장인 이 기묘한 상황은, 그 이후 벌어진 것에 비하면 별로 놀랄 일이 못 된다.

그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1999년 8월부터 이들 '아줌마 부대'는 또 한 번 투쟁에 돌입했다. 회사 상황이 크게 호전됐는데도 자신들의 복직이 되지 않자, 믿음과 희망은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목숨을 건 1년 6개월의 강력한 투쟁 끝에 이들은 복직됐다. 이들의 투쟁기는 여느 해고자들의 투쟁과 달리 언뜻 행복한 결말로 끝난 듯하다. 비록 함께 정리해고 된 모든 이들이 다 복직한 뒤 마지막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말이다. 지난해에는 여성운동연합이 주는 '올해의 여성운동상'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이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아니 이것조차 대부분 몰랐다. 그 아줌마들도 이것이 끝이길 바랐는지 모른다.


<b>왜 이제 와서 문제가 되는가? </b>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들의 기나긴 투쟁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밥꽃양』을 만든 '라넷'이라는 영상제작팀이 지난 9월 7일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에 출품하기로 했던 이 영화의 상영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라넷'은 "이 영화의 일부 장면에 대한 외부의 문제제기를 받은 영화제 주최 쪽이 사전검열을 시도했다"며 반발했다.

이 사건은 아줌마 노동자들의 아픈 과거를 새롭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열을 둘러싼 논란이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라넷'이 인터넷을 통해 영화를 매일 연재방식으로 상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겨진, 아니 정확하게는 외면당했던 3년 전 일을, 그리고 현재의 일을 보게 됐다. 그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며,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롭게 시작됐음이 분명해졌다.

영화 『밥꽃양』 사전검열 사건을 이해하려면 다시 1998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난 직후인 1998년 초 정권인수위원회는 즉각 노동계, 사용자 쪽과 함께 '노사정위원회'를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총도 여기에 참여하고 정리해고를 도입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 합의 이후 대규모 사업장 가운데 첫 번째로 정리해고 문제가 쟁점이 된 곳이 현대자동차였다.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현대차 노사 문제는 언제나 한국 노동계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노사가 정리해고 문제로 정면 대결 국면에 들어가고, 취임한 지 6개월여만에 김대중 정부는 심각한 고민에 바진다. '국민의 정부'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선 노사 정면 대결, 파업, 경찰을 통한 진압, 대규모 구속 등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노사분규 처리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또 정리해고가 실제로 도입되는 것도 분명히 보여줘야 했으리라. 가능하면 가장 전투적인 노조가 있는 현대차에서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래야 이른바 '해외신인도'가 올라 외자유치도 촉진되고,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사정위원회, 노동부, 국회의원 등이 무더기로 울산으로 몰려들었다. 민주노총으로서도 현대차 파업은 중요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등 상급단체 간부들도 울산으로 집결했다. 자연스럽게 현대차 문제는, 정확하게는 현대차에서 정리해고가 관철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정부, 노동계, 사용자 단체 모두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고, 현대차 노사는 이 3자의 대리전을 치르는 꼴이 되었다.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현대차노조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당시 민주노총은 극도록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1998년 초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석인 가운데 직무대행이 서명한 정리해고 도입 합의는 내부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민주노총 안에서 추후에 거부됐다. 물론 버스가 지나간 뒤에 손 드는 것처럼 정리해고 도입을 뒤집지는 못했다. 그 뒤 이갑용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고 민주노총은 그 해 여름까지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위해 총파업을 시도했으나, 극도록 혼란스런 경제 상황 등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현대차에서 대리전이 벌어진 것이다.

누구도 적극적인 연대 투쟁을 펴지 않고 경찰은 언제든지 투입될 채비를 갖추고 있으며, 언론은 조속하고 무난한 해결이 여론이라며 측면 압박을 가하는 가운데 현대차노조는 한 달 이상을 굳건하게 싸웠다. 그것만으로도 현대차노조의 투쟁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외부인 누구도 현대차노조에게 정리해고를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고 돌을 던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투쟁의 현장에는 언제나 밥짓는 아줌마 조합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파업현장을 지키며 동료 조합원에게 밥을 해 먹였다. 그들의 투쟁은 1980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을 연상시킨다. 그들이 없었다면 현대차노조의 파업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을 '투쟁의 꽃'이라고 했다.


<b>문제는 여성 조합원에 집중된 정리해고다</b>

당시 정부, 자본, 언론 등의 총공세와 불리한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현대차노조가 정리해고 인원을 277명으로 줄인 것은 일정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집행부가 평조합원들의 투쟁 열기를 모으고 좀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리해고 내용은 이런 평가를 뒤집어 버리기에 충분하다. 협상이 막바지로 접어든 8월 19일께부터 국민회의 쪽 중재단이 식당 조합원만 정리해고 대상으로 하자는 안을 제시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투쟁기간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고 그 기간 내내 파업 사수대 등에게 밥을 해 먹인 그들이 '희생양'으로 지목되기 시작한 것이다. 막판에는 노조위원장이 직접 그들에게 선택을 요구했다. 그들만 결심하면 수많은 조합원들이, 아니 정확하게는 수많은 남성 가장들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대부분이 여성 가장인 아주머니들은 남성들을 위한 희생을 강요당했고,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어쩌다가 현대차의 경영정상화에 열쇠가 됐는가? 밥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가? 아니면 밥하고 밥 먹는 일 안하고도 공장이 돌아갈 수 있어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이 밥잣기밖에 없어서인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아줌마들이기 때문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가장 만만했기 때문인가?

아마도 이 모두가 그 답일지 모른다. 그들은 남들이 갖추고 있는 이른바 전문적인 기능이나 기술, 지식도 없다. 게다가 그들은 '여성'이다. 그것도 40,50대의 아줌마들이다. 또 식당을 하청 준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실로 그들은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밑마닥이며 노동자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당하는 불안한 노동자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대차노조의 그 많고 복잡한 각 조직들이 이념, 인맥, 이해관계를 다 더나 모두 이 아줌마들을 외면했을 리 없다. 이는 1999년 8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지속된 그들의 피눈물 나는 복직투쟁을 노조가 어떻게 대했는지를 봐도 알 수 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그들은 알몸 시위를 벌이고 삭발했다. 단식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상황이 날로 심각해지자 그들의 '동료 조합원'들인 노조 현장조직 대표자들은 '중재단'을 구성했다. 해고된 동료 조합원이 회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는데 동료 조합원이 '중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000년 1월 20일자 『현자노조신문』은 이 여성노동자들이 농성을 푼다는 기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식당 조합원을 포함한 생대위, 징계해고자들이 농성을 풀기로 하였다. 출투 과정에서 회사와 마찰로 발생한 신분보장 문제로 식당 조합원 5명이 극단적인 단식 농성까지 함으로써 조합원과 전국의 많은 동지들의 우려가 있었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해고자 문제를 풀고자 여러 번 간담회를 통해 해결하려 했으나 미묘한 갈등의 양상으로 비화되었다."

이 기사는 말미에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가 남녀 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더욱더 단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 이 문제는 성의 문제가 아니고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그 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노동조합 내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녀차별, 소수자 차별, 힘없는 이의 소외라는 기존 질서의 악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노조의 가장 나쁜 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b>노조는 소수자들의 희망인가 질곡인가?</b>

물론 이는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차 사태가 끝난 뒤 단 한 달만에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떠오른 은행의 정리해고 때도 여성 조합원들이 훨씬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현상은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은 직후부터 곳곳에서 명백하게 나타났다. 살인적인 실업사태에서 가장 먼저 거리로 내몰린 이들이 다름 아닌 여성노동자들이다. 누구는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누구는 그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생명줄 같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정규직의 계약직, 임시직화도 여성노동자들부터 나타났다. 이런 와중에 노동운동은 더욱더 조직 이기주의에 빠지고 실리 위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며 민주화 투쟁의 기지였던 현대차노조이기에,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조는 과연 더 이상 여성노동자들에게 희망일 수 없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의 소수자들에게, 임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은 과연 희망인가, 아니면 질곡인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지금, 노동조합은 정규직들의 이권단체로 변하고 있는가? 1980년대 이후 학생들과 함께 이 땅의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있던 노동자들은 이제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일 뿐인가?

이 질문은 결코 '제 손에 피묻히지 않은' 제3자의 냉정한 질문이 아니다. 그들과 똑같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인 동시에 자신 안에서 똑같은 심성이 꿈틀거림을 부인하지 못하는 이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또한 노동운동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 없는 '라넷'의 영화 검열 항의 사이트(larnet.jinbo.net) 방문자들의 고통스런 자기고백과 같은 질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노동운동은 이제 명확하게 대답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대답은 이 땅의 온갖 모순들이 한몸에 집약되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르며, "노동자, 자본간 계급 모순을 해결하면 모든 모순이 해결된다"는 주장을 믿는 이가 더 이상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며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고통을 가장 잘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이들이다. 이 점에선 그 누구도 노동자들을 앞서지 못한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이에 대해 분명히 반응하고 답하지 못 한다면 이 땅에 진보의 희망은 없다. 바로 이것이 노동조합에 아직도 희망을 거는 이유다.

(월간 『인물과사상』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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