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line-height:150%; margin:0;"><b><font size="2" face="굴림" color="#666666"> <밥.꽃.양>과 사전검열, 보이지 않는 손들의 연대? </font></b></p>
<b>1</b>
지난 10월 예정이던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의 <밥.꽃.양> 사전검열 사건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권력의 검열행위들에 대해 본능적이다시피한 저항정신을 갖고 있는 진보진영의 한 모퉁이에서, 더군다나 '인권영화제'라는 이름의 행사주체에 의해 사전검열 행위가 시도되었으니 충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일의 진행과정에서 시행착오로 의도되지 않게 사전검열적 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잘못도 저지를 수 있다. 그럴 경우 잘못을 인정하고 납득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면 적어도 사전검열이라는 오명은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울산인권영화제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지 않고 계속 불거지고 있는 것은 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사전검열을 극구 부인하면서 납득되지 않는 행보들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 주관단체인 울산인권운동연대는 한편으로는 돌연 활동중단을 발표하면서 숨어버리는가 했더니 다른 한편으로는 음으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정당화에 안간힘을 다하고 사태를 흐트리면서 논란 아닌 논란을 야기시켜 왔다. 그래서 안타까움마저 가중되고 있으나, 그러나 논란은 논란이고 행위는 행위이니, 지워지지 않는 슬픈 기억으로 남을 터.
나는 월간 <문화연대> 11월호에서 울산인권영화제 사태와 관련하여 쟁점은 더 이상 사전검열 논란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사태와 무관하게 <밥.꽃.양>을 '말하게 하는 데'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사태의 깊은 뿌리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영화제 측의 사전검열 시도라는 단일한 층위에서 발생된 게 아니고, 또다른 권력층위와 연루되는 보이지 않는 손들로 그물망쳐져 있다는 점으로부터 읽어내야 한다. 이번 사전검열 시도는 그것의 한 그물코에 불과하다.
사태 발생 직후 집행위는 <밥.꽃.양> 상영을 할 경우 '부담'이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집행위의 사전검열 시도가 외압('외부의 문제제기')에 의한 것이었든 자기검열에 의한 것이었든 적어도 그 보이지 않는 손의 한 지류로서 행사된 것임에는 분명해보인다. 그러한 배경을 고려하는 한에서 좀더 추상적인 수준에서 쟁점화시키는 사전검열 논의는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컨대 사태를 더 흐트려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시비걸기 논란에는 편승할 필요가 없지만, 정확하게 문제화하려는 접근들로서의 논란은 더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b>2</b>
거듭 밝히자면 나는 영화제 집행위가 사전검열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다.
<밥.꽃.양> 제작자인 라넷(감독 임인애)은 9월 6일 '명백한 사전검열'로 규정하고 영화제에서의 상영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울산참여연대, 평등세상을 여는 울산여성들(평등여성)도 영화제 참가단체로서 사전검열에 항의하며 조직위를 탈퇴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노동자영상패 창, 페미니스트 웹진 달나라딸세포, 서울대 김진균 교수, 삼호중공업 문화패 영상분과, 사회당, 진보평론, 노혜경 시인, 대우자동차 영상패,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김백영, 노동문화정보센터, 연대를 위한 노래모임 좋은친구들, 문화과학,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록밴드 천지인, 인터넷웹진 언니네, 한양대 임지현 교수, 울산여성노동조합(준), 현자노조식당운영위원회, 역사학연구소 노동사분과, 꽃다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한여노협 등이 개별적으로 사전검열로 규정하거나 비판하는 성명 혹은 입장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리고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민주노동당, 인터넷신문 대자보, 진보네트워크센터, 평화인권연대, 학생행동연대정보통신모임 I'm,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네티즌들도 가세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집행위는 사전검열도 표현의 자유 침해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9월 10일 김창원 집행위원장은,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집행위에서는 <밥.꽃.양> 작품에 대하여 상영결정을 확정한 바가 없습니다(9월 5일 여성부문 프로그래머들의 모임에서 '상영을 전제로 하여'라고 하여 상영여부에 대한 입장은 최초로 결정된 것임)", "<밥.꽃.양> 제작팀과 집행위의 공식적인 접촉은 9월 5일 집행위원장과 감독과의 통화 이외에는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고 밝히고 있다(이에 대한 섬세한 비판은 노동자뉴스제작단의 입장 발표글 참조).
이날 전화에서 집행위원장은 라넷 감독에게 "아직 상영결정이 된 바 없으며, 9월 7일 집행위 회의에서 최종결정된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평등여성이 밝힌 경과에 따르면, <밥.꽃.양> 상영과 관련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라넷과의 접촉 및 결정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난다.
"1) 7월 인권영화제 참여를 제안하러 울산인권연대 사무장이 평등여성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여성부문을 특화시킨다면 섭외나 선정 등의 권한도 주는 건가를 물었을 때 '그러면 저희야 고맙지요'로 답변했다. (...)
3) 1차 여성 프로그래머 모임(7월 18일 수요일). 여성영화제(여성문화예술기획) 상영작 관련, 여성장애인의 성을 다룬 작품 관련, <밥.꽃.양> 상영 후 토론회에 현자노조 식당 아주머니들의 참가 가능여부 타진, <밥.꽃.양>과 쉽고 재밌으면서도 여성주의를 잘 담고 있는 작품 추천으로 세 프로그래머가 역할분담을 했습니다.
4) 2차 여성 프로그래머 모임(8월 8일 수요일). *<밥.꽃.양>은 상영가능하다. 감독과의 대화, 상영 후 토론회 가능. 이 작품은 지역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토론이 활발하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의지를 모음.
*<밥.꽃.양> 토론회에 현자노조 식당아줌마들도 참가 가능하다고 확인." 평등여성은 9월 8일 영화제 탈퇴를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밥.꽃.양>은 '여성노동자의 정리해고'를 다루고 있고 감독과의 대화와 토론회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여성 프로그래머들이 만장일치로 상영을 결정한 작품이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사전검열을 부인하기 위해 담당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선정, 섭외, 결정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관료주의적 집행태도를 드러내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입장발표에서 지적했듯이, 이 또한 인권영화제로서 비판받아야 할 대목이다. 물론 여성부문 프로그래머들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체로 사전검열이라 할 수는 없다. 라넷이 명백한 사전검열이라고 주장하게 된 근거는 "누구의 어떤 문제제기라 할지라도, 어떤 명분과 절차상의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작품 상영결정에 대한 논의가 한달이나 지난 시점에 와서 다시 고려해보고 상영해야 한다는 (집행위의―인용자) 발상"에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문제제기에 의한 상영유보(혹은 상영저지)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사전검열로 규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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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검열 논란과정에서 우선 쟁점이 된 것은 문제제기자의 '실체'이다. 라넷이나 평등여성도 '외부의 문제제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공개된 문건들을 검토해보면 '외부'의 그림자 즉 보이지 않는 손이 드리워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검열영화제' 게시판에 올라온 문건들에 따르면, 9월 2일 여성회 소속 프로그래머는 평등여성 소속 프로그래머에게 집행위 사무차장으로부터 들었다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밥.꽃.양>에 대해서 현장조직에서 *** 발언 뒤 ===가 하는 멘트가 나오는 장면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상영 결정을 하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9월 3일 저녁 영화제 집행위원장, 울산여성회 프로그래머, 평등여성 프로그래머, 인권운동연대 사무차장이 이 문제로 긴급하게 모인 자리에서 집행위원장은 "특히 이 영화는 문제제기가 들어왔기 때문에 보고 상영 결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외부의 문제제기'에 대한 논란이 분분해지자 영화제 집행위는 '외부'의 '실체'를 밝혀달라고 역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내내 침묵하던 김진영 메인 프로그래머가 사태가 발생한 지 한달이나 지나가면서야 '외압'은 없었고 자기자신이 최초의 문제제기자였다고 고백(?)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으며, 글 제목은 [계속되는 라넷과 평등여성의 거짓말에 치가 떨린다!!!]였다. 이미 9월 6일 울산인권운동연대 사무차장이 평등여성 사무장을 찾아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외부로부터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다. 인권영화제 메인 프로그래머 김진영씨가 집행위 회의 때 이 작품이 지역에서 상영되면 문제가 많이 야기될테니 상영을 신중히 결정하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나는 외부가 적어도 하나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이 글 전체에 녹아있는 문제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김진영 씨이다. 그는 자신이 '최초의 문제제기자'라고 밝혔다. 그는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메인 프로그래머이다. 이 선에서만 보자면 그는 영화제의 내부자이며, 따라서 자기검열에 의한 사전검열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현대자동차 노조 영상패 강사이다. 그런 점에서는 그는 영화제의 외부자이며, 따라서 '외부의 문제제기'에 의한 사전검열로 판단하도록 하는 하나의 근거를 스스로 제공해주고 있다. 그는 영화제의 외부이자 내부에 경계선없이 그 이중선분의 주체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외부'의 '실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마도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제 주관단체인 울산인권운동연대의 활동중단과 조직위 해체를 선언하고서도 암암리에 추진한 '공청회'니 '진상조사'니 하는 것들을 골백번 해도 말이다.
나는 사전검열의 '외부'가 존재했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울산지역에서 <밥.꽃.양>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그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들이 연대하는 검열분위기 혹은 감정구조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외부냐 내부냐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외부와 내부의 경계선 없는 검열기제가 선험적으로 이미 존재해오고 있었다는 것에서 문제의 핵심을 읽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메인 프로그래머가 자기검열로 고백하면서 '외압'과의 연결을 부정한다 해도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밥.꽃.양>은 98투쟁 즉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노동자투쟁 및 노조식당 여성노동자 원직복직 투쟁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또다른 주름진 표면에서는 한편으로는 지도부의 머리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현장노동자들에서 강렬하게 생성되고 있는 욕동(慾動)과 저항의 극한들 및 차이들을 섬세하게 배치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공공연한 비밀들을 쉬쉬하게 하는, 울산지역 노동운동판 및 진보운동판에 굳어지고 있는 관료주의와 침묵의 카르텔에 대한 영상적 저항을 깔고 있다.
라넷은 영화제 상영거부를 밝힌 글에서 "이 영상보고서는 노조운동 내의 성적 소수자로서 당하는 고통, 노조운동의 내면화된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고 쓰고 있다. 따라서 <밥.꽃.양>에 대한 사전검열은 침묵의 카르텔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연대행위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겠다. 울산인권영화제의 사전검열 사태도 그 하나에 불과하다. 평등여성이 게시판에 올린 경과글에 따르면, 집행위 사무차장이 평등여성 프로그래머에게 영화 상영 후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책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침묵의 카르텔에 연대하자는 것 아닌가.
<b>4</b>
'사전검열'이라는 개념을 애써 피한다 하더라도, 울산인권영화제는 제2회 집행위원회 체제에서는 인권영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 마인드가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물론 그래서 지난 10월로 예정된 제2회가 무산되고 말았겠지만(제2회 울산인권영화제는 울산인권연대가 주관하여 준비중이었으며, 울산지역 14개 단체가 조직위에 참여했다. 그중 여성부문은 울산여성회, 울산 여성의 전화, 평등세상을 여는 울산여성들 3단체가 결합했다). 게시판 문건들에 따르면, 김창원 집행위원장은 <밥.꽃.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며 <밥.꽃.양>을 미리 보고 상영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산인권운동연대 사무차장도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영화제를 책임져야 하니까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집행위 회의 때 메인 프로그래머 역시 "그 작품이 지역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으니 상영에 신중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문제제기했다. 집행위원장이나 메인 프로그래머나, 어떻게 이런 발상으로 인권영화제를 행사하려고 했는지 참으로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권영화제야말로 문제제기의 장소이자 논란의 장소여야 되지 않는가.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어야 한다. 논란 자체를 두려워 하다니, 없는 논란도 만들어내 의제화해야 할 판에. 인권영화제는 정치적 투쟁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집행위의 행보에 대해 비상식적이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 평등여성은 "'외부로부터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부문 상영작으로 결정된 지 한달이 넘은 작품의 상영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2회 울산인권영화제 집행위원회의 주장은 '인권영화제'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수차례 경고하고 집행위 입장의 철회를 요구하였지만, 집행위가 거부했다고 밝히고 있다. 울산참여연대도 입장 발표를 통해 집행위의 태도가 '인권영화제'의 정신인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회, 약자들의 목소리가 '주장'되고 '전달'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인권영화제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언제나 현재의 과제..."(제2회 인권영화제 소개글 중)를 정면으로 거스른다고 비난했다. 라넷도 "우리가 상영을 거부하는 것은 인권영화제의 본질과 핵심에 정면으로 마주서기 위한 행동이며 의지인 것입니다."고 밝혔다. 사실 '신중', '논란', '책임'이라는 단어들이 사전검열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또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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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검열 시비와 관련하여 '문제제기'의 '실체' 못지 않게 그 '내용'에 대한 논란도 중요한 점이었다. 집행위는 말하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상영료 문제, 노노갈등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 저작권 문제 등으로 언급하였고, 라넷은 이에 대해 말바꾸기로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집행위는 사전검열을 부정하기 위해 프라이버시니 저작권이니 하는 말들로 논란거리들을 둔갑시켜왔지만, 그런 논리들 자체가 바로 사전검열을 집행하는 다양한 장치들이자 다른 이름들이 아닌가.
여기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보자. 김창원 집행위원장은 "집행위에서 <밥.꽃.양>과 관련하여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고 한 문제의 내용은 식당 아주머니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문제였음을 밝힙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외압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부각시킨 것이기도 했다. 나는 <문화연대> 11월호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밥.꽃.양>은 영화가 시작되면서 현대자동차 노조 조합원이며 식당에서 근무하는 한 아줌마와의 인터뷰 장면이 길게 나온다. 남편의 성적 요구가 자신의 생존권적 삶의 문제와 비극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에 대한 고백을 토로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프라이버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검열이다! 성적 소수자로서의 그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놀라운 고백으로 제기하고 있음은 보려하지도 않고 대뜸 프라이버시라니! 그녀는 프라이버시가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서 영상 카메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얼굴까지 드러내며 그토록 절절하게 토로했을까. 프라이버시 문제라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라도 해야 하나, 아님 음성변조라도 해야 하나."
인터뷰 발언을 한 당사자는 최근, 이런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내 입으로 뱉은 말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는 요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한다. 노조식당 운영위원회는 입장발표를 통해 "우리는 이 여성노동자의 진솔한 이야기에 대하여, 우리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해준 개인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모든 여성들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장면을 가지고 인권단체에서 '프라이버시' 운운하면서 상영을 문제삼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기하도록 압박을 받아왔다고 하는데,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이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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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컨대 울산인권영화제 사태에 한정한 사전검열의 외압실체가 아니라, <밥.꽃.양> 류를 말하지 못하게 집행하려는 힘을 들춰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힘이란 다름아니라 잘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그물망으로 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는 권력의 힘으로, 때로는 압박의 힘으로, 때로는 자기검열의 힘으로, 때로는 침묵의 힘으로, 때로는 굴종의 힘으로, 때로는 포기의 힘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며 다양한 그물코들을 형성해왔고 또한 할 것이다. 그것의 최종적 목표는 상영의 봉쇄, 그리고 그것의 폐기시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작년에 제작한 서은주/이혜란 감독의 <평행선>도 그렇게 묻혔다 한다. 라넷은 사전검열의 실체가 밝혀져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폭로한 바 있다. "<밥.꽃.양> 제작팀은 8월 25일 한국여성연구소에서 영상보고서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발표회 다음날인 26일, 현자노조 현 집행부가 한국여성연구소에 '왜 어떻게 허락도 받지 않고 상영을 했냐'라고 무례한 말투로 항의전화를 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8대 집행부가 <평행선>이 상영되는 곳마다 가했던 압박행위와 똑같은 형태입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를 제기하도록 종용한 것도 이 맥락의 은유일 뿐이다. 10월 23일 울산에서 독자적으로 <밥.꽃.양>을 상영할 때, 현대자동차의 38여성회(원래 식당 노동자들이었으며, 식당조합원들의 원직복직 투쟁 후 현장으로 이전된 38명 여성노동자들의 모임)가 최종희 노조식당 운영위원장이나 라넷에 압박을 가한 것으로 판단되는 요청을 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겠는가.
이런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라넷이 애초 문제제기했듯이 표현의 자유가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연대적으로' 침해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영화제 집행위는 사태가 불거지자 일방적으로 게시판을 폐쇄해버렸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와 공론의 자유를 봉쇄해버린 기가막힌 사건이 아닌가. 라넷이 이 홈페이지를 '인권과 평화를 위한 검열영화제'(larnet.jinbo.net)라는 이름으로 재개통했다. <밥.꽃.양>의 제작자 이름은 라넷이다. 그 영문표기 larnet은 Labor Reporter's Network을 축약한 것이다. 제작자들은 <밥.꽃.양>을 '영상보고서'라고 부른다. 이 영상보고서를 촬영하는 현장, 즉 98투쟁의 현장에서부터 표현의 자유는 노조로부터도 100% 자유롭지 못한 듯 하다. <밥.꽃.양>이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애시당초 금기가 예고된 장면들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는 대체 무엇이 담겨 있길래 이 지경들일까. 사람들에게 나는, <조폭 마누라 2>를 기다리느니 이 영화를 한번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권한다. <밥.꽃.양>에는 우리가 펼쳐내야 할 희망이 있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 희망을 건져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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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부정하려고 이따위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거대노조의 권력화/체제화는 거부하지만 특정지역과 특정단체를 죽이기 위한 것도 결코 아니다. 운동판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말을 하고싶을 뿐이다. 추상적인 수준에서도 질문해야 할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자기가 위치한 바로 그 장소에서 질문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건 운동판 살리기의 희망이 아니다. 민중과 대중의 역동적이며 전복적인 힘이 살아나는 희망이다. 그 희망으로 지역의 인권영화제들이 더 많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진정한 바램이다.
(월간 인물과사상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