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꽃 ?양 사태’와 관련하여-
여성 문화동인 살류쥬 편집위원
정문순 (saluju20@hanmail.net)
"To Be Continued."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 꽃? 양의 마지막
화면에 나오는 자막이다. 비의와도 같은 이 말은 절묘하게도 맞아떨어져, 영화의 속편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다만 그 공간이 스크린에서 현실로 옮겨왔다는 점과, 등장 인물군에 다소의 변동이
생긴 것이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 중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길
꺼림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답답함을 주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 중에서 그나마 입을 열기 시작하여
그 성격의 파악이 가능해진 인권운동사랑방(http://sarangbang.or.kr)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마도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조직이 그 동안 진보운동사회 내에서도 각별한 위상을 점유해왔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권운동이라는 대의가 법과 제도의 영역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운동조직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최약자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조금 멀리는 영화 『레드헌터』의 상영 때문에 공안당국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았을 때나, 가까이는
짧지 않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과정에 각고의 노력을 바칠 때까지만 해도, 인권운동사랑방은 어느
조직 못지 않게 진보적일 수 밖에 없는 위상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과적으로 현저하게 축소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놓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내부적 갈등이 도출되고
그것이 대표의 사임으로 이어졌다는 소식이 있었을 때 이미 조짐이 보인 일이지만, 최근에 그들은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그 동안의 신뢰가 도전을 받게되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소위 ‘밥?
꽃? 양 사태’에서 보인 그들의 석연찮은 행보에 국한시켜 놓고 본다면, 사람들이 ‘인권지킴이’에게
가졌던 기왕의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여론을 무시하는가
인권운동사랑방이 안티검열영화제 라넷(http://larnet.jinbo.net) 게시판에 존재를 드러낸 것은, 라넷 측에 그들이 영화 상영거부를 결정한 울산인권영화제와, 자신들 및 자신들이 주관하는 서울인권영화제는 서로 무관함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면서부터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이런 행동이나, 울산인권영화제에 ‘인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음이 밝혀진 것 및 공개토론회 개최에 대한 의혹 건 등으로, 게시판에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인권운동단체로서 이번 사태와 거리를 두거나 사태에 몰이해적이라는 비판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사랑방이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한 바 없는 데 따른 정보의 한계 때문에, 『문화연대』에 노혜경 시인의 ‘인권운동사랑방을 보는 씁쓸함 하나’라는 글이 개재되었을 때만 해도 네티즌들의 인권운동사랑방에 대한 비판의 수위는 그리 높은 것이 아니었다. 대체로 ‘씁쓸함’이나 섭섭함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권운동사랑방이 노 시인의 글에 대한 반박문을 통해 극도로 말을 아끼던 모습에서 벗어나면서부터는, 상황이 완연히 달라져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반박문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한 인권운동단체의 ‘밥? 꽃? 양 사태’ 이후 보인 행보에 대한 많은 이들의 실망감을 증폭시켜주었으며, 행여나 불필요한 오해이기를 바랐던 그 동안의 의혹에도 근거를 갖추어주는 결과를 불러온 셈이 되었다.
반박문을 보면, 무엇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인터넷 상의 여론 형성 기능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과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서 참으로 두려움과 우려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 자유게시판이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공간이라는 말을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수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을 조금이라도 잘못 벙긋해도 온갖 억측과 왜곡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난도질당할 수가 있다는 두려움은 우리에게 말을 아낄 것을 강요합니다. 우리의 내면의 고민이 침묵을 수반할 경우 그 침묵은 ‘가해자’와의 공모로 간주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나름의 노력은 불순한 음모로 매도됩니다. 자신이 퍼부었던 매도가 사실에 대한 오해에 입각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후에도 상대편에게 사과를 하는 네티즌은 대체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이 “소수의견에 대한 일방적 비난과 공격의 장”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한다. 문맥으로 보아 ‘소수의견’은 울산인권영화제를 주관했던 울산인권연대 측이나 현대자동차노조 및 그들을 지지하는 의견, 단적으로 말해 라넷 측에 비판적인 의견을 말한다. 그렇다면 엄연히 이는 사실과 다르다. 라넷 게시판에는 영화제에서 외압이나 사전검열이 시도되었다는 라넷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이 숫적으로도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을 과연 무슨 근거에서 ‘소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터넷의 역기능을 말하자면, “온갖 억측과 왜곡”으로 그 동안 현대자동차 노조식당 아주머니들을 위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입은 상처를 덧나게 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이 대다수인 사람들이 오히려 잘 드러내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이버 상의 여론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당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고 내부적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사태 접근 방식에 우려를 표명해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정말 인터넷 상에서 소수의 의견이 탄압받거나 자신들이 매도당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들이 취해야 할 행보는,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이 받은 오해에 대해 해명하고 의견을 개진되어야 함은 지당하다. 그것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태도이거니와, 그들이 억울해 하는 공청회 개최 계획 건도, 사이버 상의 논의를 무시한 그들의 침묵이 의혹을 증폭시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왜 그들이 글 전편에 걸쳐 반복적으로 인터넷 게시판의 부정적인 면모만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인터넷 글쓰기의 악영향에 대해 곧잘 강조하는 정부당국이나 보수언론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사전검열 시비가 불거진 중차대한 반인권적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인권단체가 그 동안 이번 사태에 관한 거의 유일한 토론장인 라넷 게시판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가, 인터넷 게시판이 구조적으로 소수의 의견을 배제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실망을 넘어 허탈감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인터넷 여론에 대한 이들의 인식 수준이, 사전 검열 시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서둘러 사이트를 폐쇄시켜버리는 행태를 보인 울산인권연대 측과 동궤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참으로 서글프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소수자 의견’ 운운했을 때도 감지한 바이지만, 인권운동사랑방이 현대자동차노조나
영화제 집행위인 울산인권연대의 편에 기울어져 있다는 증거는 반박문의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밥?꽃?양 사태’와
관련해서 우리는 아직도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에게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9월 7일에 발표된 <…상영을 거부합니다>에는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어떤 문제제기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사전에 작품을 보자고 한 결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문제제기’의 성격에
따라서는 한 번 보고 결정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검열’이 안 될 수도 있는 까닭에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라넷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게 분명히 듣고 싶은 것입니다.
참으로 믿기 힘든 말이다. 영화제 집행위가 출품작에 대해 사전에 한 번 보자고 요구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어떤 ‘문제제기’의 경우에 해당될까? 아마도 개인의 사생활이나 저작권 침해 같은
법적 문제를 제외하고 무엇이 있겠는가? 실제로 이 두 가지 문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영화제
주최 측이나 외압 당사자로부터 제기된 바 있다니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작품에 대해 출처도 모르는 문제 제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관행에도 없는
일인데다 다른 작품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사전 시사를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검열’이 아닐
수 있다고 인권단체의 입에서 쉽게 단언할 수 있을까? 게다가 영화제 집행위가 답변한 사전 시사
요구의 근거는 전혀 일관성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실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과연 누구를 감싸고 있는지는 다음의 글에도 드러난다.
“또한 이번 사태는
서울에서 살며 일하는 우리 상식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음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울산의 운동’을 이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감각’을 도외시하고 행동으로
나서는 일이 두려운 것입니다.”
참으로 “상식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말하는 ‘상식’은 도대체 어떤 상식일까? 그들이 말하는 상식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을 말함인가, 아니면 때때로 일반적인 상식과 배치되기 마련인, 인권을 존중하는 사고체계 내에서의 상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둘 중 어떤 경우의 상식에 의존하더라도 외압 시비나 사전 검열 시도를 ‘울산의 운동’이나 울산적 특수성으로 이해하게끔 만드는 상식이 있다고 말한다면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들이나 울산인권연대로서는 참으로 감읍할 말일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발언은 명백히 울산의 수많은 운동단체와 활동가들을 매도하는 발언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이번 사태에 궁극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할 일방을 이렇게까지 표나게 편들어주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이들이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소수자로 보인다는 말인지? 아마 그들이 이해하고 싶은 것은, 지역사회에서
거대노조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울산인권연대의 처지일지 모른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전 대표인
서준식 씨는 ‘100인위
사건’을 옹호하면서,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진보는 당대의 보편적 상식을
폭력적으로 도전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권 운동이야말로 보편적 상식과 합리적 사고의
적용이 보호하지 못하기 일쑤인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새로운 사고가 필요한 곳이 아닌가? 그러나
낡은 상식과 통념을 급진적으로 극복하며 새로운 사고체계를 만들어가기는커녕, 정치적 다수자를 옹호하기
위해 보편적 상식에도 못 미치는 패거리식 사고까지 서슴지 않는 인권단체의 모습은 차라리 비애스럽기까지
하다.
그 과정에서 투쟁 당시에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은 자신들의 절규를 여전히 봉쇄하려는 움직임에
재차 상처를 입었을 현대자동차 노조 식당 아주머니들, 그녀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그 목소리를 어떻게든
공론화시키려고 했던 라넷, 그리고 밥 ?꽃? 양을 보고 눈물지으며 그 사건에 무지했던 자신들을
한동안 책망했을 많은 이들은, ‘울산의 운동’을 주도하는 누군가에 의해 희생되어도 좋을 존재들인가?
자본가들이 자신들에게 하던 말본새를 본받아, 단식하는 아주머니들을 향해 “당신들 배후에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는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던 노조 집행부의 행태가 울산의 ‘감각’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번 사태에 인권 단체로서 무언가 의미 있는 발언을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보기에는,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다 못해 참으로 나태와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침묵의 말에 귀 기울이기
이번 사태에 인권운동사랑방이 보인 실망스런 행보는 인권 운동의 대의라 할 수 있는 약자 우선의 원칙이 소홀히 다루어진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이 공장을 나가야 한다고 강변하는 노조 집행부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수용하던 노조식당 아주머니들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젊고 혈기방장한 남성 노동자들의 노동에 비해 주야로 불가마 옆에서 더운 밥 지어내는 자신들의 노동은 하찮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아주머니들이 미처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삭힌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 모두 그 말들이 더 이상 반향 없는 공장 안을, 천막 안 농성장을 맴돌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공기 속에 퍼뜨려 그 말에 공적 지위를 매겨줄 의무가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자신들이 그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달라고 하기에 앞서, 아주머니들이 침묵으로 쟁여두고 있는 말들에 함께 귀 기울여야 할 일이다. 인터넷 공간의 말들을 소음으로 치부하지 말고 절실한 언어들을 들어보려고 노력할 일이다. 상처 입은 이들의 말은 그것만으로도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인권단체들이 더 이상 실망을 안겨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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